마음대로 해도 괜찮아. 내가 있는 그대로의 널 사랑해 줄게. 넌 충분해
상담은 내 어린 시절 상처로 시작했다. 어릴 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갖고 있는 아이가 내 안에 살고 있단다. 그 아이는 시시때때로 삶에 문제를 만드는데 그걸 ‘내면 아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상담사는 부모님과 나의 관계를 물었다. 엄마는 내 안의 보석 같은 재능이었던 목소리를 발굴해 준 사람이었다. 엄마는 우리 삼 남매가 어렸을 적 우리를 카세트 플레이어 주위에 빙 둘러앉게 했다. 엄마가 묵직한 기계 위에 두 개의 버튼을 동시에 꾹 누르면 녹음이 되었고 공테이프가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다. 언니는 매번 노래를 조금 부르다 ‘몰라’ 하며 장난을 쳤다. 남동생은 옹알이 수준이었고 나는 곱고 앙칼진 목소리로 멋지게 노래를 끝냈다. 엄마는 그 녹음테이프를 우리가 다 큰 어른이 되도록 간직하고 있었다. CD 재생기 시대를 지나 MP3 시대를 훌쩍 넘은 유튜브 스트리밍 시대였다. 지금은 무용지물이 된 테이프지만 다행히 난 중, 고등학생 시절에 틈틈이 그 테이프를 듣고 또 들었다. 나는 녹음테이프에 담긴 나의 목소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간간이 들어가 있는 솜털같이 부드러운 젊은 엄마의 목소리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엄마는 초등학교 단체 소풍 장기 자랑 시간에 내게 노래를 해보라고 했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단발머리를 하고 샛노란 원피스에 하얀색 스타킹을 신고 내 두 손을 곱게 맞잡고 노래를 하는 사진을 보노라면 분명 이 일은 벌어진 것이다. 나는 자라면서 피아노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악보를 보며 코드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성악 입시를 준비하다 뮤지컬 음악이 더 좋아 연극 영화과 입시로 방향을 바꿨다.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을 때마다 난 주저 없이 대학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라고 말한다. 열정을 다해 오디션 준비를 했고 그만큼 성취감이 대단했었다. 휴학하고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다. 그곳에서 영어는 내게 음악과도 같았다. 말의 높낮이는 멜로디 같았고 말의 속도는 박자 같았다. 엄마가 일찍 발견해서 가꿔 준 재능 덕에 난 호주에서 3개월 만에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게 되었다. 귀국하여 학교로 돌아와 영어과로 전과했고 연극영화과를, 복수전공을 하여 졸업했다. 아빠는 생애 최초로 만나 세상에 대한 불신을 심어준 첫 번째 남자다. 아빠는 30년 전, 술을 먹는 날이면 날마다 집안 물건을 박살 냈다. 엄마는 무서움에 벌벌 떨었다. 어느 날은 엄마가 어딘가에 맞았는지 그냥 쓰러졌는지 마룻바닥에 철퍼덕 엎어져 있었는데, 그 모양이 상처투성이 혹등고래 같아 뇌리에 박혀 잊히질 않는다. 부성애의 부재 속에서 성장한 나는 결핍을 채우고자 날 영원히 사랑해 줄 완벽한 남자를 찾아 헤맸다.
“아빠는 그냥 무지한 거예요. 배운 게 술 마시고 주정하는 건데 어쩌겠어요? 대화도 안 통해서 아빠랑 말 안 해요”
아빠에게 지금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이냐는 상담사에게 말해 내가 대답했다. 아빠랑 대화하다 보면 말문이 탁 막혀 숨통이 조여 온다. 한 문장에 두 개의 단어는 못 들으시거나 그 의미를 모르시는 것 같다. 그래서 난 아빠를 노인네 취급을 해버린다. 그리고 이제는 술을 안 드시니 그거야말로 다행이란 생각이다.
“엄마요? 엄마한테 섭섭한 것은 없어요. 엄마가 절 키울 때 제정신이었겠어요? 정신 줄 놓지 않았을까요? 반쯤 정신 나간 상태로 살면서 저희 세 남매를 키워 내신 것으로도 감사할 뿐이에요”
상담사는 내 대답에 만족하지 않고 집요하게 엄마에게 서운했던 점을 캐물었다.
“글쎄요… 지독하게 절 못살게 구는 언니로부터 잔인하게 평등했던 점이요? 전 언제나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했어요. 착한 딸이었죠. 하지만 언니는 자기 멋대로 구는 아이였어요. 언니가 이유 없이 절 괴롭혀서 싸운 날에도 엄마는 절대 제 편이 되어준 적이 없어요. 전 그게 평생 한이 되었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엄마의 편애. 늘 엄마와 언니는 잘 맞는 사람 같았다. 대화가 통하고 서로의 행동을 이해하는 관계. 하지만 그 둘은 나의 사고와 행동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 곁을 겉돌며 언제나 난 그들의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옷이 너무 이상하다. 노출이 심하다. 그 생각은 이해가 안 간다.
“엄마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았어요. 전 엄마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했죠. 하지만 언제나 노력해도 사랑을 더 받는 일은 없었어요”
상담사는 타인의 인정에 목마른 나의 문제를 어린 시절의 문제와 연결했다.
“적정 몸무게를 유지해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그대로 제이를 사랑하지 않는 엄마와 닮아있네요.”
상담 후에 있는 그대로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특히 희나가 말을 안 들을 때 꼭 껴안으며 널 조건 없이 사랑하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내 안의 어린 제이에도 속삭였다.
‘마음대로 해도 괜찮아. 내가 있는 그대로의 널 사랑해 줄게. 넌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