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보세요
어제는 멋진 남자와 함께 있는 꿈을 꿨다. 아주 오랜만에 음부가 간질거렸다. 난 두세 번 아래를 조였다 폈다 하며 기분 좋게 잠이 깼었다. 옆에 자는 남편을 잠시 바라보았는데 그것만으로 불쾌한 감정이 올라왔다. 남편에게 불만이 많았다. 오늘은 바닷가 마을에 창이 넓은 집에서 혼자 사는 꿈을 꿨다. 갑자기 남편이 나타나 훼방질을 놓았는데 사고로 그가 다쳤다. 그리고 예쁜 아기를 떠나올까 하는 고민을 남긴 채로 잠이 깼다. 희나의 병이 이 주째다. 어제는 벌이나 모기에 심하게 물린 사람처럼 눈이 탱탱 부은 채로 일어났는데 두려웠다. 응급실에 가야 하나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희나는 잘 웃고 잘 먹고 잘 놀았다. 병원에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안심했었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바뀌어 버린 희나 얼굴을 하루 종일 바라보는 것은 곤욕이었다. 남편은 또 회사 일이 스트레스였는지 어두운 얼굴을 하고 퇴근했다. 불안을 잠재워 달라고 떼쓰기엔 그가 너무 버거워 보였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는지 난 잠을 못 이뤘다. 잠깐 잠이 들었을 때도 참 난감한 꿈을 꿨다.
“바로 이거야. 제발 나에게도 이렇게 해줘. 안부를 물어줘.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어줘. 똑같이.”
남편이 쇼핑몰을 가며 희나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부러워서 내가 남편에게 간절히 말했다.
그러자 대충 내 앞머리를 쓰레기 쓸듯 두세 번 만졌다.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최선을 다했겠지만, 도대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그냥 나랑 존재를 사랑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쪽 조심해”
남편이 갑자기 말했다. 깨진 도로를 조심해서 유모차를 밀라는 얘기였다.
“오빠가 밀어. 그럼”
했더니
“이게 뭐라고. 네가 좋아서 미는 줄 알았지”
했다. 어디를 가나 유모차 담당은 나였다. 그가 하지 않아서 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육체적으로 피곤함을 쉽게 느끼는 남편을 배려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배려하는 내 입장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남편이었다. 맛있는 사탕을 먼저 먹어 버린 사람처럼 좋아서 유모차를 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유모차를 밀었다. 그리고 쉽게 지쳐갔다. 쇼핑몰에 가면 윗옷과 양말을 사야겠다고 했다.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해서 입어보려고 했다. 남편이 지루할까 쇼핑하고 있으라고 했다. 오래 방치해 두면 화낼 것 같아 후다닥 입어보고 재빠르게 결제했다.
“어디야? 나 다 샀어.”
“음… 끝 쪽으로 걸어왔어.”
“어디 끝?”
“정문 쪽”
“정문이라고 말하면 난 몰라. 상호를 말해줄래?”
“넌 어딘데?”
“카페테리아 쪽이야.”
“아. 거기 지나왔어. 내가 그곳으로 갈게”
했다. 마침, 양말 가게가 있었다. 노란색, 하늘색, 초록색 양말 세 켤레를 골라 만원만 지불하면 되었다. 전화할까 하다 1분도 안 걸리는 일이고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보이는 장소라 전화해 주지 않았다.
“어디야?”
“양말 가게인데”
하자마자 남편은 짜증을 냈다. 양말 가게에 걸어오는 남편에게 말했다.
“왜 그렇게 화를 내? 바로 앞인데. 오빠 오는 동안 다 살 줄 알았어. 그리고 몇 걸음 안 되는 곳이잖아”
쇼핑몰에 들어서 10분이란 시간도 채 안 돼서 우린 싸웠다. 난 화가 올라왔다. 내가 초라해 보였다. 난쟁이만큼이나 줄어든 인색한 마음으로
“기분이 안 풀리네. 왜 그렇게 화를 낸 거야. 오늘 오빠가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또 이렇게 화를 내버리니 기분이 안 좋아. 나 좀 어떻게 해줘. 달래줘”
하자
“잘 좀 조절해 봐”
라고 다그쳤다. ‘사람도 많고 갑자기 피곤해졌나 봐. 희나를 데리고 있는 것도 벅차고. 감정을 조절해야 했는데 미안해. 쇼핑은 나중에 하고 같이 다니자’라는 말을 원했다. 하지만 저런 말을 할 리가 없었다. 결국 난 화가 나서
“서로 잘해보기로 한 게 어젯밤이고, 쇼핑몰에 들어온 지 10분 만에 우린 이렇게 싸우네. 우린 파멸이야.”
남편의 얼굴이 굳어졌다. 희나가 계속해서 내가 사주겠다던 젤리 가게를 가자고 졸라댔다.
“나 너무 기분이 나빠서 안 되겠어. 따로 다니자”
하자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야… 제이야. 힘내보자. 우리 좀 더 노력해 보자’라고 했다면 우리 가족이 헤어질 일은 없었을 텐데. 난 인파를 뚫고 이리저리 다니며 희나를 걱정했다. 사주겠다던 젤리를 못 사줘서 미안하고 우리 부부가 또 싸워서 미안했다. 그러고 나니 슬픔이 밀려왔다. 떨쳐내려 할수록 마구 밀려왔다. 이대로 주저앉아 펑펑 울고 싶었다. 양말도 한 켤레 사지 못하는 인생이라니. 정말 난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내 존재가 거부받는 느낌을 받았다. 그럴 때면 한없이 슬퍼진다. 언니가 필요하다고 전화했다. 오랜만에 사람이 많은 전철을 탔다. 전철을 기다리고 환승하고 인파에 부딪히며 어느새 슬픔이 사라졌다. 피곤함이 밀려왔다. 한 시간이나 걸려 언니를 만났다. 언니는 남편이 우울증 약을 먹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환절기라 옷을 얇게 입고 나갔는데 날씨가 추워져 오들오들 떨었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나 걸려 집에 도착했다. 대중교통을 타는 것도 추위에 떤 것도 오랜만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에게 남편이 어색한 투로 말했다.
“기분 좀 나아졌어?”
얼굴엔 독기와 불만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웃고 있었다.
“희나는 잘 놀았어. 잘 먹고.”
다행이었다. 희나가 날 찾지 않는 게 좋았다. 한편으론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희나는 나 없이도 잘 있구나’ 남편 손엔 얄미운 게임 컨트롤러가 파란색 스포츠카 마냥 부릉부릉 하는 소리를 내는 듯했다.
“보통 그렇게 웃으며 내게 말할 때는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하지 않나? 난 여전히 풀리지 않았는데”
그러자 그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 그리고 몇 차례 같은 말들을 서로 반복했다.
“내가 이렇게 진중한 얘기를 할 때는 컨트롤러는 제발 내려놓아 달라 몇 번이나 말했었는데…”
혼잣말로 불평하며 난 안방에 들어갔다. 대화하는 동안도 재깍재깍 화면을 보며 컨트롤러를 눌러대는 남편이 꼴 보기 싫었다.
“자신을 보세요!”
상담사는 평소보다 소리를 높였다. 언제나 내 시선은 남편을 향하고 있었다. 남편의 기분과 행동에 나의 365일, 그러니까 내 전부가 흔들렸다. 부모와 형성된 불안 애착의 관계가 남편과 이어지고 있었다. 남편에게 집착하고 통제 아래 두려 하고 사랑을 확인하고 의심하고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체크하고 버림받지 않기 위해 불안해했다. 남편과 나는 결혼 준비를 할 때 유산 소식을 접했었다. 우린 파혼하지 않고 결혼을 진행했고 남편이 유산 전이나 후나 그의 두 번째 결혼 행사엔 관심이 없는 것은 여전했다. 결혼식장을 둘러볼 때마다 그는 꼭 벙어리의 이방인처럼 굴었다. 남편은 친구들에게도 두 번째 결혼 소식을 알리지 않았었다. 하지만 웨딩드레스는 바보 같은 남편의 단점을 잊어버릴 만큼 아름다웠다. 결혼반지와 가정. 난 그게 더 중요했다. 불안이 종식되는 것 같았다. 결혼으로 들어가면 모든 문제가 사라질 것 같았다. 남편과 신혼여행으로 함께 간 몰디브는 환상적이었다. 완벽한 바람과 풍경이 있는 곳. 바다 위 그물 해먹에 누워 해 질 녘을 감상하다 다시 못 느낄 평온함을 느꼈다.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하다 아주 조그마한 핏덩어리 같은 것이 나왔는데 그게 아주 작은 사람 머리 모양 같기도 했는데 아마 우리 첫애가 될지도 몰랐던 자라고 있던 태아였던 것 같다. 눈물이 나지 않았다. 신기했다. 오히려 입가가 찢어지도록 미소를 한껏 지으며 불타는 노을로 달려갔다. 남편은 내게 복잡한 존재다. 내가 영원토록 귀속되고 싶은 존재이기도 하고 내가 감옥처럼 답답함을 느끼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를 생각한다. 남편을 사랑하는 건지 남편이란 환상을 사랑하는 건지. 자폐적 성향을 보이는 남편에게 봉사하는 삶. 안전한 울타리와 그곳에서 따스한 음식을 먹는다. 내가 내 불안을 잘 다스리고 자존감을 회복하면 난 어떻게 될까. 제이야 안녕하니? 안녕할래? 결혼 생활을 힘들어하는 내게 누군가 성인 아스퍼거 증후군 정보를 주었는데 증상이 남편과 똑같아서 놀랐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매우 부족하고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으며 사회성에 문제를 보인다. 타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대화,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에 대한 부재, 대화 중엔 다른 사람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만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표정이 거의 없단다. 남편과 일치했다. 그런데도 자신을 가장하는 법을 잘 알아서 직장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경제력 있고 성실한 남편을 문제 삼으면 주위에서 이해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감정 박탈을 경험하는 배우자가 겪는 고통을 카산드라 증후군이라고 한다. 정신적으로는 자존감 저하에, 불안감, 우울증, 자기 정체성 사실, 사회 공포증이 있고 신체적으로 극심한 피로감에 급격한 체중 변화 등이 있다. 하루 종일 음식 생각을 한 이유는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허기가 지는 바람에 헉헉거릴 정도로, 배가 터지도록 매운 떡볶이며,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며 주걱으로 퍼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탄산음료를 벌컥벌컥 마시면 짜릿했다. 초콜릿 덩어리를 한 조각 떼어내서 녹여 먹고, 다시 주방으로 달려가 또 떼어먹다가 안 되겠다 싶어 다 입에 구겨 넣으면 배가 찢어질 듯 아파졌다. 하지만 달콤한 오르가슴을 느꼈다. ‘나는 날 파괴할 권리가 있다.’ 당당하게 외치고 나면 내가 몇천 배 더 싫어했다. 이런 의식을 매일 치르고 나면 지옥 같은 현실을 잊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마법 같은 다이어트약을 먹어버리면 체중은 돌아오니까. 약 한 알이면 처벌의 시간을 가지며 금식하면 그만이었다.
다이어트약은 4단계까지 있었다. 다이어트약에 한참 중독이었을 때는 4단계까지 간 적이 있었다. 2년 전 봄. 나는 내 딸을 데리고 조카네 집에 간 적이 있었다. 조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딸과 함께 조카와 시간을 보내고 밤늦게 집에 돌아왔었다. 괜히 남편에게 히스테리를 부렸는데, 불현듯 언니네 집에 갔다가 오던 날 남편이 자위하다 들켰던 날이 생각이 났다. 남편이 내가 없는 동안 그날처럼 검은 양말만 신고서 모니터 속에 여자들을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상상을 했다. 그래서
“뭐 하고 있었어?”
라고 물었다.
“컴퓨터 하다 축구 게임 하고 있었어”
게다가 축구 게임에 한창 중인 남편이 내가 들어와도 반기지 않자, 울화가 치밀었다.
“그러니까 컴퓨터로 뭐 하고 있었어?”
“그냥 이것저것 보고 있었어.”
“그때처럼 야한 것 보고 있진 않았어?”
“진짜 왜 그래? 이젠 안 본다고…”
시답잖고 짜증스럽고 소모적인 대화를 주고받다 한 번도 나를 보지 않고 티브이 모니터를 향한 남편이 나를 노려보았다.
“게임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하고 한마디 더 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미친 사람처럼 남편을 괴롭혔다. 어릴 적 언니가 나를 괴롭혔던 그 모습 그대로 남편의 피를 말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게임을 껐다. 그리고 나랑 좀 더 싸우다 숨을 거칠게 몇 번 내쉬었다.
“그래서… 넌… 앞으로도 날 믿지 못할 것 같아?”
“응”…
"그럼, 이 집과 딸 모두 네게 줄 테니 헤어지자”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난 유기의 공포가 있는 사람이라 남편과 살 때, 남편이 ‘제이야’라고 부를 때마다 늘 긴장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은 별것 아닌 말 그러니까 ‘우리 샴푸 사놓은 거 어딨 지?’ 라던지 ‘우리 점심 먹으러 나갈까?’ 이런 종류의 말을 해서 긴장한 심장을 언제나 안심시켜 놓았다. 아… 이제야 하는구나. 이제야 버리기로 하는구나. 가슴에 난 상처가 두꺼워진 덕분에 생각만큼 아프진 않았다. 오히려 이 집에서 딸과 어떻게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지 계획을 조금 세워보기까지 했다. 17개월 된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하러 나갔다. 퉁퉁 부은 눈을 치켜뜨니 봄 햇살이 번거로웠다. 나무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있으니 딸아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꼈다. 그리고 딸이 전에는 보지 못한 환한 미소를 내게 보냈다.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힘내라고. 우리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대지의 기운이 발끝에 전해졌다. 엄마 제이는 할 수 있다고 마음먹었다. 딸 희나를 위해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아빠의 사랑이 부족한 둘째 딸도 아닌, 남자들의 성적 대상물도 아닌, 피상적인 꿈을 좇은 실패자도 아닌,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린 공주도 아닌, 물건을 훔친 도둑도 아닌, 결혼에 실패한 주부도 아닌, 희나 엄마로 충분했다. 희나 엄마로서 희나에게 넘치는 사랑을 줄 것이며 변하지 않는 희나를 향한 견고한 마음을 지키리라. 강인한 힘이 솟구쳤다. 생애 처음으로 삶을 시작하는 기분.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온몸을 던져 노동하는 삶을 살 생각에 의지가 불타올랐다. 안전한 새장 속에서 시체처럼 사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여정이 펼쳐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그렇지만 남편이 없는 집을 상상하면 모든 장기가 빠져나간 것처럼 휑한 기분이 들어 밤낮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남편은 헤어지자고 말해 놓고 집을 나가지 않았다. 집안을 어슬렁거리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스며들어 부유했다. 나도 내 편집증적 망상이 자랑스러웠던 것은 아니었고 남편이 떠나는 것은 원치 않았으므로 그가 있는 편이 다행이라 여겼다. 다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라는 영화 속 주인공 여자처럼 흙 한 줌을 쥐고 불사르던 희나 엄마의 다짐이 무색하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