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해. 난 못한다고
집 앞 허름한 술집의 이름은 써니펍이었다. 노란색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어두운 술집엔 매력적인 주인장이 있었다. 마치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에 나오는 마스터와 닮고 있었다. 훤칠한 키에 허리춤에 행주를 걸치고 있었는데 법륜스님 뺨치게 소통 능력이 탁월했다. 난 써니 술집을 사랑했다. 일이 끝나면 꼭 술집을 들렀다. 그곳에서 홀로 오는 손님들과 말벗 삼아 이야기하는 게 즐거웠다. 기분이 나면 함께 노래를 불렀다. 주말엔 함께 주인장의 낡은 차를 타고 산에 오르기도 했다.
“저는요, 노래하고 싶기도 하고요, 미국에 다시 가고 싶기도 해요.”
“다 해 ~”
주인장의 해결안이었다. 고민하면 언제나 명쾌한 대답을 해주었다. 써니펍에서 만난 이삭 씨는 피터 팬 같은 사람이었다. 영원히 늙을 것 같지 않은 어린아이가 마음속에 들어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과대망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신에 대한 꿈이 원대했고 포부를 말할 때 그의 안경 끝자락이 유독 반짝거렸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정작 헷갈리기만 했다. 도통 갈피를 못 잡는 얘기뿐이었다. 나는 그때 신촌에서 대학생들에게 토플을 가리키고 있었다. 단어집을 제작하는 것뿐만 아니라 수업 준비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이삭 씨는 자기가 제일 잘하는 것이 컴퓨터라길래 토플 단어를 좀 정리해 주겠냐고 했더니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내 컴퓨터를 내어주고 난 잠을 잤는데, 이삭 씨는 며칠 밤을 새우고도 제대로 일을 끝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고마웠다. 강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었는데, 이삭 씨는 진정으로 날 도와주는 친구 같았다. 마음의 위로를 받았다. 이삭 씨가 날 어루만지면 온 우주와 화해하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붕 떠오르는 기분. 하늘을 날아 올라 종일 파도타기를 하며 그와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먹을 것을 사 오고 이삭 씨는 날 어루만져주면 그걸로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지 않았다. 섹스가 훌륭해도, 이삭 씨는 나와 결혼하려면 그가 직업이 있으면 했다. 백수와 남은 평생을 함께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떤 직업이든 좋으니, 직업을 구하라고 했다. 대리운전기사 일이나 대리주차 요원 일을 했다. 나는 그와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며 꽤 오래했다. 그는 마침내 피시방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기를 당했다. 그는 내가 직업을 구하라고 조르는 바람에 바빠지고 내게 사랑을 나눠 줄 여유가 없어졌다고 했다. 우린 자연스럽게 만나지 않았다. 헷갈리긴 했다. 섹스가 그토록 훌륭하고 성품이 인자한 남자라면 돈은 내가 벌어도 되지 않았을까? 돈. 그게 뭐라고. 이삭 씨는 보트를 하나 사서 세계여행을 하며 생을 살자고 했었다. 지금 남편이 아닌 이삭 씨가 내 곁에 있다면 난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정말 보트 하나를 구해 바다를 둥둥 떠다니며 전 세계를 떠돌고 있었을까? 이삭 씨를 만날 때는 몸무게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뚱보가 되어있었으려나? 내가 하도 의존하고 의지해서 이삭 씨가 지쳐 도망갔으려나?
무미건조한 삶을 살다 보니 돈키호테 같은 이삭 씨가 그립다. 결혼은 마치 돈 벌어오는 사람이 육체적으로 서비스를 받기로 은밀한 약속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밖에 나가 고생했으니 애무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나가서 돈을 벌어오면 남편이 정성스럽게 내 몸에 키스해 줄까 생각해보았다.
“저거 파란 컨트롤러 좀 가져다줄래?”
남편이 축구게임을 하려고 내게 부탁했다.
“오빠… 회피형 성격에 대한 자료 하나씩만 보자. 그리고 해”
남편이 내게 화를 버럭버럭하고 감기에 걸렸다는 이유로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간 지 일주일이 넘었다. 오늘은 화해의 시도인지 내게 사랑 표현도 하는 둥 어색하게 굴었다. 남편이 살짝 내 몸을 만질 때 소스라치게 놀라 피했다. 마치 술주정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구는 사람 같았다. 함께 회피형에 대한 자료를 보면서 남편은 수없이 부정했다. 자기는 아니라고. 남편이 말수가 많아져서 난 놀랐다. 클립을 멈추고 남편에게 말했다.
“상담받으며 우리가 아주 좋아진 줄 알았어. 하지만 저번에 희나 아팠을 때 오빠가 내게 버럭 소리를 지를 때 나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아.”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줄곧 하지 않은 사과를 이미 내게 했다거나 자기만의 변명을 잔뜩 늘어놓다 끝난다.
“저번에 미안하다고 했잖아. 네가 자꾸 한번 실수 한 걸 파고들잖아.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난 그냥 오빠가 그 당시 내 불안을 읽어 줬으면 하는 거야. 희나는 너무 아프고 오빠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을 때 난 불안해. 그 불안과 나라는 사람을 분리해서 그 불안을 다스릴 수 있게 도와줘. 옆에 와서 날 잡아주며 귓가에 걱정하지 말라고 함께 병원에 가자고 해주며 되잖아”
상담사는 불안이 죄지 내가 죄는 아니라는 말을 남편에게 했다고 했다. 나 역시 회피 문제가 이슈이지 남편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배웠으니까. 그제야 남편은 잠잠해졌다.
“오빠. 난 그날 상처받고, 오빠가 차갑게 군지 일주일이 넘었어. 그리고 오늘이야 괜찮아진 것 같은데, 난 여전히 마음이 아파.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날 잡고 내 마음을 어루만져줄래?”
하자 남편은
“못해. 난 못한다고”
“아니야 오빠 해야 해. 지금 내 손을 잡고 내 눈 좀 봐줘. 제발. 그리고 날 위로해 줘”
난 눈물을 글썽이며 호소했다. 남편은 마지못해 내 손을 잡고 날 조금 쳐다보다 시선을 돌렸다.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어”
라고 몇 마디 했다. 남편도 진심이었다. 상담사는 ‘내면 아이’ 치료법을 사용했다. ‘내면 아이’는 한 개인의 정신 속에서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처럼 존재하는 아이의 모습이다. ‘내면 아이’를 치료를 통해 내가 자존감이 낮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언니의 지속적인 비난이 큰 문제였다. 언니는 내 무지함을 밝히고 당당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었지만, 자존감을 뺏어가기도 했다. 지속적인 가스라이팅 대상자였다. 상담사는 어린 제이에 편지를 쓰게도 했고 어린 제이가 지금의 나에게 편지를 쓰게도 했다. 엄마, 아빠에게 섭섭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난 엄마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을 찾아내는 게 어려웠다.
“엄마 괜찮아. 엄마가 힘들 땐 날 돌봐주지 마, 엄마는 충분히 했어.”
상담사는 ‘내면 아이’ 치료를 어려워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잠시 멈추었다. 특히 나는 나를 사랑하라고 강요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사랑할 수 없는데 왜 자꾸 시키냐고 납득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런 건 내게 도움이 안 되니 실질적인 팁을 달라고 했다. 폭식하지 않는 방법이나 다이어트약을 끊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상담을 통해서 남편이 ‘회피성 애착형’ 그리고 내가’ 불안정 애창 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착유형은 생애 초기 부모와 형성되는 것으로 ‘안정 애착형’은 태어나서 양육자로 충분한 보호와 사랑을 받은 유형이다. 회피형은 부모에게 아무리 필요를 요구해도 그들이 응답을 주지 않아 애착을 포기해 버린 유형이다. 회피형인 남편은 타인에게 애정을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할 뿐 아니라 자신의 감정조차 읽지 못한다. 연애 때는 남편의 회피성 성향은 내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보통 내가 애정을 구걸하는 방식은 연애의 감정이 최고조일 때 헤어지자고 하는 건데 남자들은 백이면 백, 특히 날 더없이 사랑하는 경우, 울고불고 매달렸다. 하지만 내 남편은 그러지 않았다. 헤어지자고 하면 알겠다고 했다. 분명 내게 깊이 빠져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남편이 멋있었다. 안정적인 사람인 줄로 알았다. 가는 사람을 잡지 않고 새로운 사랑을 희망하는 건강한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게 사랑을 유지해 나가는 게 두려워 날 미리 차단해 버린 그의 문제라니. 남편은 줄곧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방식으로 날 화나게 했다. 싸우는 중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큰일이 터지면 내 뒤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제일 곤욕스러웠던 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었지만, 해결할 의지도 없다는 것이었다. 갈등은 반복되었고 난 지쳐갔지만, 남편은 내게 아무런 불만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왜 그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냐고 했다. 난 결혼 전 임신을 했다. 낙태와 결혼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그때는 회피형이란 단어는 몰랐지만, 남편이 매우 차가운 사람이라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성적인 힘이라고 생각했다. 책임감 있고 믿음직스럽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내게 바라는 것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타인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기인했다는 것을 알 리 없었다. 살면서 그가 타인에게 의존하는 대신에 스스로 위로하는 방법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게임에 몰두하는 거나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다. 가족 모임이 있으면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핸드폰만 하거나 게임기를 가져가 게임을 했다. 나는 불안 애착 유형이었다. 끊임없이 사랑을 타인으로부터 갈구하는 유형이다. 양육자가 비일관적인 태도를 보일 때 주로 나타난다고 한다. 엄마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 세 남매가 싸우면 설거지하며 우릴 혼냈는데 늘 말하다 울컥울컥 눈물을 쏟아냈다. 감정이 복받쳐 오르면 화를 내며 혼잣말로 신세 한탄을 했다. 난 그런 엄마를 처량하게 생각했다. 엄마는 걱정이 남달랐다. 이것저것 조심하라는 당부를 자주 했다. 다정하진 않았지만 바르게 자식을 키웠다고 생각한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엄마를 짓누르는 우울감 사이에서 힘들어했었을지도 모르겠다. 난 그런 엄마 옆에서 엄마 기분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엄마는 우울해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사랑을 나눠주었다가, 다시 침울해 있다가 다시 원기를 회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