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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이 Aug 09. 2024

외모 콤플렉스

그건 내가 스스로 내게 한 말일 뿐이다

54킬로그램이 되었다. 3년 동안 그 숫자가 되지 않으려고 강박적으로 매달렸다. 50킬로그램을 유지하기 위해 다이어트약을 먹었고, 중독이 되자 PMS 치료제로 전환했다. 정신과 약의 부작용으로 더 이상 복용할 수 없게 되자, 살이 무섭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란 의사 아저씨를 떠올리고 싶다. 여자를 물건 취급하는 남자. 결국 50킬로그램이라는 숫자를 유지하려는 강박이 별 가치 없는 남자들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내가 50킬로그램이 되거나 60킬로그램이 되거나 섹스를 하자고 할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상담 치료가 잘 되고 있는가 싶더니, 남편이 감기에 걸려 섹스는 커녕 인사조차 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내 몸을 사랑해 주지 않는다. 마치 섹스가 싫어지고 질병에 취약한 사람이 된 듯하다. 감기나 복통으로 숨어 있으면 오히려 당당한 것처럼 보인다. 이번 생은 숫자보다는 적당히 건강한 몸으로, 내가 나를 사랑해 주는 수밖에 없다. 내장 지방이 쌓이고 체질량이 급격히 높아져서, 건강한 삶의 습관을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운동과 식습관, 그리고 삶의 질을 향상시킬 취미를 기록하는 프로젝트. 나를 사랑하는 프로젝트.


외모 콤플렉스와의 관계는 지독하다. 지석이와 헤어지기 전까지는 외모에 자신감이 있었다. 버림받음의 이유를 내 못난 외모에서 찾았다. 태어나서 언니의 외모에 밀렸고, 대학 입학 후에도 많은 이들에게 뒤처졌다. 존재를 드러낼 방법을 찾지 못했는데, 누군가 나를 배척한다면 그 원인은 내 외모에 있다고 여겼다. 인정받는 주변인들은 모두 예쁘고 잘생겼으니까. 상담사는 언젠가 이렇게 물었다.


“누가 제이씨가 못생겼다고 했죠? 못생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나요?”


지석이를 포함한 누구도 나를 못생겼다고 한 적은 없다. 그건 내가 스스로 내게 한 말일 뿐이다.


5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유학에 성공하지도 못했고, 정신적으로 성장한 것도 아니었다. 구치소 경험으로 도덕적 깨달음을 얻었던 것도 아니고, 백마 탄 왕자 신드롬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여전히 불안하고 자신이 없었다. 내 외모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던 때는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후였다. 고등학생 시절까지는 인기가 꽤 있었으므로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쌍꺼풀도 없고 밋밋한 내 얼굴은 평범했다. 미국에서도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없었다. 남자 친구에게 차였을 때도 외모 때문이라고 믿었고, 미국에서 제대로 된 남자 친구를 만나지 못한 것도 외모 때문이라고 여겼다. 호주에서 베이비시터 일을 하던 시절, 세라 엄마는 지금도 잊지 못할 굉장한 미인이었다. 팔등신의 모델 같은 몸매에 앵두 같은 입술, 커다란 방울 같은 눈을 가진 그녀는 호주에서 백만장자와 결혼하고 이혼한 후, 부자들과 데이트를 나갔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 외모에 대한 중요성을 큰 영향을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성형수술을 하겠다고 하면 집이 발칵 뒤집힐 게 뻔했다. 귀국 소식을 알리지 말고 친구 수아 집에 갈까, 아니면 병원에 입원할까 고민했다. 내 몸을 다 바꿔서 새로 태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자존감도 높아지고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 나 인생에서 정말로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말하면 엄마가 안 된다고 할 것 같아서… 몰래 하려고… 귀국한다는 거 안 알리고… 친구네에 갈까… 그냥 병원으로 갈까… 했는데…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나 성형수술 하고 싶어…”


“집으로 와… 네 마음이 그러면 해야지. 어서 와”


엄마의 따스한 품으로 달려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성형 수술을 하고 언니가 날 데리러 왔을 때, 언니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동생 잘못된 거 아니에요? 얼굴이 왜 저래요?”


성형수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언니는 괴물처럼 변해버린 내 얼굴을 보고 놀라 성형외과 상담사와 싸움이 붙었고, 나는 당황스럽고 창피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동그랗고 큰 눈을 가진 언니와 외모가 달랐다. 다행히 예뻐지긴 했지만, 자존감은 생각만큼 높아지지 않았다.


가끔 나는 궁금하다. 몸무게를 걱정하는 일 외에 진짜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남편에게 사랑받으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지만, 그 길은 앞이 깜깜하므로 그 문제를 일단 내려놓는다.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 될 것 같다. 더 멋진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며 여행을 다니고, 영어를 가르치며 살고 싶다. 그러다 돈을 차곡차곡 모아 날씨가 좋은 바닷가 마을에 집을 하나 사서 창문을 크게 뚫어야겠다. 그곳에서 가족들과 친구들을 초대하여 즐거운 날을 보내고 싶다. 남편에게 받을 수 없는 사랑에 목매는 일만 그만두면 인생이 한결 나아질 것임을 깨닫는다. 유학에 성공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음악 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교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한때 바랬던 꿈을 그들은 실제로 이루었다. 그들은 시간이 나면 재즈바에서 공연을 했다. 언젠가 내가 가진 곡으로 무대에 설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을 때, 별스럽지 않게 바램이 이루어졌다. 나는 오줌 병아리처럼 떨리며 작은 목소리로 내가 만든 노래를 불렀다. 신사동 작은 재즈바에서 노래를 끝내고 와인으로 목을 축일 때, 버킷 리스트에서 한 줄을 영광 없이 지우는구나. 꿈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이루는가가 중요한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꿈을 꾸어야겠다. 남편에게 목매는 일을 그만두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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