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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이 Aug 10. 2024

감옥

엄마 내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는데 천만 원만 붙여줘

학교에 다니며 파트타임 일도 열심히 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곧 배우가 되리라는 상상을 할 때는 말이다. 실상 오디션과 트레이닝이란 현실 과제를 직면하면 늘 피해 다닐 것이 뻔한데. 그저 노래하고 춤추고 배우가 된다는 상상을 한다는 것 자체만 즐거워했다. 집에서의 생활도 편했다. 내 방 맞은편에는 베트남계 미국인 비비안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배운 것 중에는 계란요리가 일품이었다. 계란을 프라이하다 노른자는 덜 익혀 간장을 조금 붓고 마늘을 익혀 토스트란 식빵 위에 얹어 먹는 것이었는데 참 맛있었다. 비비안은 종종 나랑 함께 영화를 보러 가거나 산책했다. 그리고 데이트 웹 사이트인 매치닷컴을 알려줬다. 


나는 쇼핑몰에서 일을 했다. 파티 의상을 파는 일부터 주스를 파는 일까지 다양한 일을 했다. 쉬는 날에는 몰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슬쩍 가방에 집어넣는 버릇이 생겼다. 특히 피팅룸에 들어가 사고 싶은 옷을 입어보다 그대로 나와 집에 가 버리는 일을 버릇처럼 했다. 처음에는 도둑질이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무섭더니 계속해도 아무도 잡지 않으니 오히려 안 하면 좀이 쑤시게 되어 버렸다. 난 진주색 귀걸이를 하나 훔쳐 내 오른쪽 코에 마구 쑤셔 넣었다. 인정사정없이 콧구멍을 뚫어 넣어 코걸이를 했다. 지독하게 내 자신을 고문하는 동안 미국 사람들은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았다. 작은 이방인이 스스로를 벌하든 말든 아무 관심이 없었다. 몰에서 일을 끝내고 1층 쥬어리 샵으로 갔다. 40달러짜리 귀걸이를 주머니에 넣는 순간 두 명의 거인 같은 경비원이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날 데려가서 경찰이 올 때까지 가두었다. 40달러 이하였다면 경찰을 부르지 않았겠지만 40달러 이상이고, 날 주의 깊게 보고 있었다고 했다. 구치소에 짐을 맡기고 지문을 찍고 사진을 찍고 철장 안에 갇혀있으며 긴긴 시간이 흘렀지만, 눈앞에 펼쳐진 상황이 하도 신기하여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듯하였다. 흑인들과 라틴계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난 그들이 정해놓은 색깔의 죄수복을 입었다. 주황색이었는지 남색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장발장은 배가 고파 훔쳐먹은 빵 때문에, 감옥에 갔다지만 내가 잡혀있는 죗값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난일까 욕심일까 불안일까. 밀려오는 수치심에 숨이 턱 막혔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입 다물고 싶은 나만의 비밀로 지키고 싶었다. 


“엄마 내가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는데 천만 원만 붙여줘” 


엄마는 홀로 유학길에 오른 딸에게 내심 미안한 마음과 경제적으로 지원하지 못한 죄책감을 껴안고 살고 있던 터라 나의 정체 모를 부탁에 기뻐했다. 어렸을 때부터 착한 딸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터라 나의 악한 본성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엄마가 붙여준 천만 원, 내가 갖고 있던 천만 원을 더해 이천만 원의 보석금을 내고 감옥 밖이 나온 시간은 밤 10시. 집에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비비안에 전화를 하자니 너무 창피했고 그녀가 나와 관계를 끊을까 두려웠다. 걱정하던 중 빵빵 하며 경적을 울리던 흑인 여자애들 세 명이 있었다. 나 보러 타라 했다.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정말 고마웠다. 구치소 동기들이라니… 트럭 뒷자리에서 앉은 내게 선선한 여름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세운 무릎에 손을 철퍼덕 얹어놓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휴… 이천만 원. 얼추 그동안 내가 도둑질한 값과 같았다. 세상엔 정말 공짜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비비안에 쇼핑몰까지 태워달라고 부탁했는데 뚜껑이 열린 채 밤새도록 비를 맞은 스포츠카, 혼자 데 솔이 처량하게 서 있었다. 이후로 수백 건의 변호사 우편물이 집으로 왔다. 집주인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난 몇 달 후 변호사 없이 재판에 섰고 


"I am guilty"


잘못했어요. 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쓰레기를 몇 시간 줍고는 죄를 사했다. 그리고 이사를 했다. 크레이그리스트란 웹사이트는 지역 게시판 정보를 주고받는데 용이했다. 그곳에서 알게 된 집주인이었는데 청소를 대가로 방을 내어주는 조건이었다. 주인아줌마와 고등학생 딸은 내성적인 미국인이었는데 정말 착했다. 청소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서 매일 미안한 마음으로 거주했다. 웃겼던 점은 아줌마가 일을 한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읽고 있었던 책인 ‘왜 늘 사람들은 거짓말을 할까?’라는 책이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내가 학교에서 공연을 하면 아줌마와 그 딸이 친히 와서 공연을 봐줬다는 점이다. 아줌마는 요새 딸이 하나 더 생긴 느낌이라고까지 하셨다. 아줌마는 곧 남자 친구가 생겼는데 남자 친구가 생기고 나서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살찐 고양이 세 마리와 큰 강아지 한 마리가 언제나 내 곁을 머물렀다. 그리고 히끼 고모리 같은 딸은 언제나 방에서 뭘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이천만 원을 다시 찾고 싶었다. 그래서 한인타운에 있는 한국 술집에서 일을 했다. 재밌었다. 함께 일하는 아줌마도 착하고 손님들도 괜찮았다. 난 주문을 받고 술과 안주를 서빙하는 일을 했고 칵테일을 만들기도 했다. 시간이 나면 매치닷컴에 들어갔다. 비비안이 알려준 대로 나만의 연인을 찾고 싶었다. 이란 의사가 나왔다. 그 아저씨는 아들이 있는 이혼남이었는데 참 재밌는 사람이었다. 다른 것은 마음에 들었지만, 그 아저씨는 시체와의 섹스를 좋아했다. 사랑을 나눌 때면 나 보러 죽은 시늉하라 했다. 연기를 좋아해서 몇 번 그렇게 하며 사랑을 이어 나갔다. 그러더니 이번에 내게 가슴 확대 수술을 시켜줘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난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옛날 남자 친구가 반해버린 8살 연상녀의 풍만한 가슴을 생각하니 내 부족한 가슴을 여기서 채워야겠다고 여겼다. 아저씨는 수술 상담을 끝낸 며칠 뒤 종적을 감춰 버렸다. 그냥 날 버린 것 같았다. 시체와 즐기는 늙은 이혼남에게도 까이는 신세였다. 이천만 원을 다시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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