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 커리어.
나는 연구가 전혀 재미있지 않다. SNS에도 몇 번 작성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자주 말했던 얘기다.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부터 스스로도 알고 있던 부분이었고,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지금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앞으로 교수는 물론이고, 박사후연구원을 할 생각도 전혀 없다. (아, 연구비를 제외하고 1년에 10억씩 받으면 교수가 하고 싶을 수도 있다.) 나에게 연구는 먹고 살기 위해서 잘해야 하는 돈벌이 용도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서 과학 연구에 대해서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있을테니까, 과학 연구가 무엇인지부터 적어보자. 과학 연구는 지적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하여 금전적으로 거래되지 않는, 새로운 과학 법칙을 발견하는 일이다. 과학 연구자는 플라스크와 비커가 가득한 화학 실험이나, 질병을 가진 쥐를 가지고 하는 생물 실험 등의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얻어낸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논리적인 추론을 하여, 인류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세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한다. 그리고 그 발견을 논문을 통해 모든 인류에게 알린다. 위 모든 과정이 연구지만, 그 중에서도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인류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새로운 발견을 하는 일이다.
나는 돈 받은 만큼 일하는 프로 연구자는 될 수 있어도, 돈 없이도 일하는 아마추어 연구자는 절대로 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프로(페서널)은 전문성을 기반으로 특정 일을 직업으로 수행하는 사람을 말하며, 아마추어는 애호를 기반으로 특정 일을 취미로 수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마추어는 특정 일을 수행할 때 애호로만 남겨두니까 전문적이지 않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박혀있고는 한다. 하지만, 나는 아마추어가 더 긍정적인 개념이라고 본다.
예전에 독서모임에서 나눴던 이야기가 있다. 일하기 싫을 때, 어떻게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모임멤버 중 한 분은 "나는 프로다!" 라고 다짐하며 다시 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본 아마추어 노교수님에 대한 일화도 있다. 한 젊은 학생이 노교수에게 어떻게 70이 넘은 나이까지 좋은 연구를 꾸준히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노교수는 나는 아직도 아마추어라고 답했다. 아마추어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amator,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기원했다. 그래서 노교수는 자신이 아직도 이 분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대답을 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아마추어는 프로와 다르다. 프로는 그 일이 "싫어도" 해야하는 사람인 반면에, 아마추어는 그 일을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 없는, "좋아하는" 사람이다.
프로이면서 아마추어인 연구자가 정말 위대한 연구자다. 이런 연구자들은 당연히 일상 속에서도 실험 아이디어를 얻으면서 생활을 한다. 왜냐면 연구가 즐거우니까, 연구실 밖에서도 연구 생각을 해도 기분이 나쁘지가 않는 것이다. 남들은 일하는 8시간만 연구할 때, 이런 연구자들은 눈 떠있는 16시간 내내 연구하고 있으니, 더 훌륭하고 많은 연구를 수행한다.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겹치는 사람. 워크가 라이프고, 라이프가 곧 워크인 사람. 덕업일치 연구자가 최고의 연구 퍼포먼스를 낸다.
나는 덕업일치 연구자는 못 된다. 대신, 나는 프로 연구자는 가능하다. 대학원 과정동안 연구를 열심히 했고, 어디 나가서 생명과학, 생물물리학, 구조생물학, 유전자조절 분야에 대해 멍청하다는 소리를 안 들을 자신이 있다. 생명 현상의 열역학적 분석이라는 분야에서 나는 한국에서는 2인자의 위치에 있다고 스스로 여긴다. 1인자는 교수님이다.^^ 대학원에 입학한 이유는 이거다. 내가 잘하는 게 분석적 사고니까, 이걸로 전문성을 더 키우기 위해서는 대학원 과정 및 박사 학위를 받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중에서 직업으로 잘하는 일을 선택했을 뿐이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지도교수는 내가 연구를 좋아한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연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연구를 열심히 하고, 잘 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교수님과 가끔 진로 얘기를 할 때면, 교수님은 포닥(포스트닥터, 박사후 연구원)을 제안하고, 나는 포ㄷ 까지 듣고서 절대로 포닥 안 할거라고 반박한다. 이 때마다 교수님은 내가 연구자로서 의기소침해있기 때문에 포닥을 안 한다고 착각하고 있다. 그리고 교수님은 졸업할 때 쯤이면 연구가 재미있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연구자로서 의기소침하지도 않고, 아직도 연구에 흥미가 없다. (연구에 재미를 붙일 때까지 졸업을 안 시킬 거라는 의도인가...)
그러면 연구가 재미 없는데, 왜 실험을 열심히 하고, 분석을 열심히 하고, 논문을 열심히 쓰고 있느냐? 연구를 얼른 끝내버리기 위해서 열심히 하고 있다. 이 연구들을 얼른 해치우고 다시는 보지 않으려고. 다시는 학계에 발 담그지 않으려고.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싫어하는 일을 열심히 한다.
나는 실험하는 게 너무 귀찮아요.
내가 자주 하는 말이다. 노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로 노동을 좋아하지 않고, 연구자인 나는 실험이 곧 노동이기 때문에 많은 실험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실험을 또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까 실험을 할 때, 실수 없이 제대로 해야 다시 이 실험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리고 애초에 X 조건, Y 조건을 모두 테스트하는 실험을 디자인하면, 그 다음에 최적화된 조건으로 실험을 할 수 있다.
질문. 왜 실험을 A 방식으로 하고 있나요? B 방식으로 하면 덜 귀찮지 않나요?
답변. 좋은 질문입니다. 네, 저도 B 방식이 더 편할 거라 예상하고, 그 방식을 시도해봤는데요. B 방식은 또 다른 귀찮은 일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A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A 방식이 돈을 가장 아끼면서 일을 가장 덜하는 방식입니다. 실험을 덜 할 수 있는 꼼수는 제가 이미 다 시도해봤고, 지금은 그 최적화의 결과입니다.
아무튼 이유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는 열심히 실험을 하고 있다. 실험하기가 너무 싫어서, 다시 실험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실수없고 정확한 실험을 해야 한다.
대학원의 모든 업무를 싫어하면 일과시간이 너무 우울하고 힘들다. 업무의 대부분의 과정을 싫어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을 끝내는 건 좋아한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일을 벌리고 시작하는 마음보다도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결국 그 일의 마침표를 찍는 행위를 더 좋아한다. 30분 간의 세미나 발표를 끝내고 감사 인사를 할 때, 2시간의 러닝을 거쳐 결승선에 도달할 때, 일주일 간 붙잡고있던 이 글을 업로드할 때, 두 달동안 영어 공부를 해서 텝스 500점을 달성할 때. 이 때 느껴지는 해방감, 후련함, 성취감, 성장감이 나를 살아가게 한다.
내가 연구를 싫어하는 이유는, 특히나 지금 연구실에서의 연구를 싫어하는 이유는 연구가 절대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Day 4. 달리기 편에서 말했듯, 나는 연구의 결승선에 절대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연구를 좋아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