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고 입시썰: 지식 밖의 이야기

Day 12. 변화.

by honggsungg labnote

과학영재고등학교로의 진학은 나를 변화시킨 큰 사건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지만, 나를 둘러싼 주위 환경이 격변했다. 과학영재고등학교라는 환경을 졸업하고서 나는 생명과학 대학생이 되었고, 그 흐름 그대로 생물물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내가 겪은 영재고 입시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자 한다. 다만 입시했던 시절이 굉장히 오래되었고, 기억에만 의존하면서 글을 작성하기 때문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왕왕 있을 수 있다.


과학고등학교는 사실 두 종류, 일반 과학고와 과학영재고등학교로 나뉜다. 두 학교 모두 수학과 과학에 우수한 인재들을 가르치는 학교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차이점이 있다면, 과학영재학교는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하고, 여름에 입시를 치러서 학생들을 먼저 선발한다. 과학영재학교는 지원금도 생각보다 크고, 실험 장비도 잘 구비되어있어, 학생들에게 매우 좋은 학습환경을 제공한다. 일반적으로는 과학영재학교에 더 입학하고 싶어한다. (나는 그랬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엄마가 담임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초딩이었던 나를 수학학원에 보냈다. 6학년이 되었을 무렵, 수학학원에서는 어찌저찌 중학교 수학을 모두 선행했다.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 나는 수학과학 전문학원에서 고1과정의 수학과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수학과학 전문학원은 학생들을 과학고등학교로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하기에, 나도 그냥 자연스레 과학고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제대로 과학영재학교 입시를 치렀다. 그 때 당시 영재학교는 부산에 있는 한국과학영재학교(한과영), 서울영재고, 경기영재고, 대구영재고 총 4군데가 있어서, 4개 학교에 모두 원서를 넣었다. 4개 학교 모두 입학 프로세스는 동일했다. 1차는 자기소개서 및 서류 전형, 2차는 객관식 수학과학 시험, 3차는 서술형 수학과학 시험, 4차는 2박3일 입학캠프였다. 한과영만 1차 서류를 빡세게 검토하고, 나머지 3개 학교는 1차 서류에 큰 영향이 없었던 것 같다. 심지어는 내가 자소서에 지원 고등학교명을 잘못 기입했는데도 불구하고 1차를 붙었으니 말이다. 나는 자소서에 고등학교명을 잘못 기입했다는 것을 2차 시험을 치르고나서야 알았다.


2차와 3차 시험에 대해서 뭔가 글을 쓰고 싶은데, 2차와 3차 시험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나는 게 없다... 그 당시에는 덜덜 떨면서 시험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난하게 시험을 잘 치렀던 것 같다. 기억나는 건 3차 시험의 물리 문제 하나 정도이다.


물리 문제: 두 물체가 있는데, 두 물체가 서로 밀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무슨 상황일까?

나의 답변: 일반적인 물리 법칙의 상황에서는 두 물체 사이에서는 중력이 작용한다. 중력은 두 물체의 질량에 비례하고, 두 물체 사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크기의 힘으로 서로 잡아당기는, 인력으로 작용한다. 두 물체가 서로 밀어내는 척력도 당연히 존재하는데, 이 때는 질량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정전기적 성질이나, 자기적 성질에 의존하는 전자기력이다. 서로 같은 전하를 띠고 있거나, 서로 같은 방향의 자성을 띄고 있는 두 물체 사이에는 서로 밀어내는 척력이 작용한다. (이 시절의 나는 삘이 꽃혔는지 뒤의 문장을 추가하는데...) 중력도 전자기력처럼 척력이 가능한데, 그 물질이 암흑물질인 경우에 가능하다. 이 경우에는 중력이 척력으로 작용한다. 그 예시는 현재 우주가 가속팽창하는, 서로 밀어내는 현상으로 알 수 있다.


이 글을 쓰면서 찾아봤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위 답변의 뒷 부분은 틀렸다. 암흑물질이 있더라도 중력으로 척력이 발생하기는 어렵다. 암흑물질이 아니라, 암흑에너지가 있어야 중력이 척력처럼 보인다. 애초에 암흑에너지의 정의부터가 우주의 팽창을 가속시키는, 감지되지 않는 에너지 성분이다. 만약의 우주의 모든 구성성분이 우리가 인지하는 "물질"이라면, 우주는 중력에 의해서 수축될 것이다. 또는, 원운동처럼 일정한 주기를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힘이 0이라고 하더라도 등속 팽창/수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관측해도 우주는 가속팽창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 가속팽창하는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서 암흑에너지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나는 그 당시에 과학교양서적에서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에 관련된 내용을 흥미롭게 읽고서 위와 같은 답변을 적었다. 하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를 혼동하여 적었으니 점수는 높게 못 받았을 것이다. 창의성 점수나 조금 받았으려나 모르겠다.




4차 2박3일 입학캠프 시험이 (그나마) 기억난다. 4차 캠프에서는 수학 문제 구술 시험, 과학 실험 수행 및, 그 결과를 분석하는 서술형 시험, 그리고 조별 프로젝트였다. 수학 문제 구술 시험은 수박을 더운 곳에 두어, 과일의 수분이 모두 증발되었다는 문제였다. 수박의 수분 중 98%가 증발되었을 때의 무게를 쟀더니 x g 이었고, 수박의 수분 중 99%가 증발되었을 때의 무게를 쟀더니 y g 이었다. 원래 수박의 무게를 계산하라는 문제였다. 이 문제의 키포인트은 수박의 "수분" 이 증발되었다는 점이었다. 수박의 수분이 아닌 부분이 z g이 있고, 이 부분은 증발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원래의 수분 무게를 w g 이라고 하면, w*0.02 + z = x , w*0.01 + z = y 라는 이원연립방정식이 만들어진다. 이런 문제를 30분 정도 전에 미리 읽고, 선생님들 앞에서 구술하는 시험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고, 훨씬 더 헷갈리고 어려웠던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하다... 내가 기억하는 수학 구술 면접은, 주변 친구들에게 수학 면접이 어땠는지 복기하던 중에 내가 문제를 완전 잘못 이해하고 풀어서 조졌다는 기억이다. 흐음... 어찌됐든 말은 잘 했나보다.


과학 실험 문제는 렌즈와 굴절률에 관련된 실험이었다. 나를 포함한 지원 학생들은 칸막이로 막힌 개별 실험대에 앉았고, 실험대 위에 있는 레이저 포인터 2개, 호 모양 볼록렌즈와 오목렌즈 하나씩, 수조, 그리고 레이저의 이동경로를 볼 수 있는 모눈격자가 눈에 보였다. 그 후로 어떤 시험 문제가 나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이런 문제들이 나왔을 것이다. 특정 위치에 막대를 그리고 그 막대가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통과하면 상이 어떻게 나오는 지에 대한 문제. 공기 중에서 수조로 비스듬히 레이저를 쏘았을 때, 레이저의 이동 경로에 대한 문제. 그리고 물 안에 렌즈를 넣었을 때, 렌즈에 의해서 레이저는 어떻게 투과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 이런 것들이 나왔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일반적으로 렌즈 공식은 1/a + 1/b = 1/f 이다. 즉, 물체부터 렌즈까지의 거리 a, 상부터 렌즈까지의 거리 b, 렌즈 자체의 초점 거리 f 사이에는 위와 같은 관계식이 성립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굴절률 공식은 n1*sin(theta1) = n2*sin(theta2) 이다. 입사각 theta1, 입사하는 공간의 굴절률 n1, 굴절각 theta2, 굴절하는 공간의 굴절률 n2 사이에는 위와 같은 관계식이 성립한다. 위 2 개의 관계식을 잘 조합하는 물리 문제 풀이가 중요한 포인트였을 것이다.


제대로 실험값을 작성했는지가 두번째 포인트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렌즈 공식은 얇은 렌즈에서만 근사되고, 두께가 있으면 수차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즉, a=6, f=2 인 경우에 위 수식에 따르면 b=3 이 나와야 한다. 그런데 b를 실험적으로 계산하면 절대로 3.00 이라는 값으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 3.1 같이 3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른 곳에 위치할 것이다. 그리고 물의 굴절률은 1.33 정도인데, 이 또한 각도의 비율이 정확히 1.33배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상한 점은 이상하다고 오차를 제대로 기입했는지, 그리고 그 오차의 원인을 고민하는 점도 평가의 중요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캠프의 가장 메인 테스트는 팀 프로젝트였다. 첫째날 저녁식사 이후 시간에 프로젝트에 대한 공지를 받고, 그 프로젝트를 같이 수행할 팀 또한 배정받았다. 프로젝트는 각 팀마다 가장 느리게 떨어지는 종이 낙하산을 비롯해서 총 3가지의 종이접기 결과물을 제작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첫째날 저녁부터 잠에 들기 직전까지 어떻게 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종이접기를 만들 수 있을지 골똘히 머리를 굴리다가 잠에 들었다. 같은 팀끼리 기숙사도 같은 방으로 배정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해서, 우리 팀끼리 얘기하다가 밤늦게 잠들었던 것 같다. 둘째날 저녁에는 각 팀별로 만든 종이 결과물을 상대 팀에게 선보였다. 그러고는 우리의 종이접기 전략에 대해 설명 및 주장하고, 상대팀의 종이접기 전략을 공격하 토론이 이어졌다. 셋째날 아침에는 종이접기 결과물을 활용하는 촌극을 선보이면서 얼마나 그 종이접기 결과물이 효과적이었는지를 테스트했다. 그러고는 가장 높은 연기 점수를 받은 촌극은 해산하기 전에 앵콜공연을 선보였다. 이 일련의 팀 프로젝트가 입학캠프의 메인 테스트였고, 채점관들은 종이접기 디자인, 토론, 제작, 촌극까지의 모든 팀 프로젝트 과정을 채점했다.


이전에 복기한 시험들과 마찬가지로 팀 프로젝트의 종이접기 목표는 어떤 것이었는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무슨 전략을 떠올렸는지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 프로젝트 관련해서 기억나는 고민은 한 가지였다. 매 시간마다 주어진 목표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점수를 잘 받는 최선인걸까? 종이접기의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이 중요했을까? 아니면 타인이 떠올린 아이디어를 내가 실현시키는 것이 중요했을까? / 여러 아이디어를 조율하는 것이 중요했을까? 아니면 뛰어난 하나의 아이디어를 밀고나가는 게 중요했을까? / 상대팀의 아이디어는 어느 정도로 크리티컬하게 공격해야 할까? / 등등등... 당시의 채점관들은 어떻게 채점을 했는지가 궁금하고, 당연히도 팀워크라는 이름 하에 있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아직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찌저찌 운이 좋게 모 영재학교에 입학했다. 입시 당시의 이야기를 작성하고 보니, 분명히 수학과학 문제를 잘 푸는 것도 중요했겠지만, 그 문제들을 대하는 태도 역시 중요했으리라고 여겨진다. 전혀 본 적도 없는 암흑에너지 이야기를 한다던가, 실험 데이터를 얼마나 양심적으로 대하는지 라던가, 좋은 팀워크를 발휘하는 방법같은 것들 말이다.


학교의 입학본부는 아마도 나와 비슷한 태도를 가지는 학생들을 선발한 것 같다. 즉, 중학교 때 친구들의 다양성보다 고등학교 친구들의 다양성이 더 줄어든 느낌이었다. 나는 멋지고 대단한 친구들 사이에 속해있었고, 그 친구들 안에 내가 있다는 점은 나의 절대적인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그 안에서 서로 경쟁하는 상대적인 자존감은 들쭉날쭉했지만 말이다.)


10년 넘은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복기하면서 주르륵 적어뒀는데, 별로 재미 없다... Day 12는 대학교 입시에 대해서 한 편 더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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