찡찡댄다고 졸업이 되지 않아

Day 13. 불안.

by honggsungg labnote

나는 24년 내내 연구에 번아웃 상태였다. 국가적 R&D 삭감으로 연구비는 부족했고, 그에 따라 인건비도 감축되었다. 연구비가 부족하니, 해야하는 실험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실험장비는 늘 말썽이었지만 24년에는 특히나 심하게 고장이 많이 났다. 24년 동안에는 실험을 하지 않고, 컴퓨터로만 수행하는, 단백질 데이터베이스 분석 정도만을 해볼 수 있었다.


24년에는 연구가 재미있던 날이 10일도 채 되지 않은 것 같다. 24년의 연구 시작은 중차대한 분석 실수부터 시작했다. 그 실수는 2달 이내로 커버하기는 했지만, 그 분석은 1.5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분석은 마무리가 된 것 같은데도 논문은 절대로 출간될 생각이 없어보인다. 논문에 진척이 없으니 열의도 없고, 분석 실수를 줄인다고 줄였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실수를 했다. 실수를 해도 큰 상관은 없다. 왜냐하면 실수를 하던, 안 하던 논문은 출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가 재미있던 날들을 꼽아보자면, 단백질 데이터베이스를 처음 시도했을 때, 새로운 실험을 도입해서 성공했을 때, 이상한 이유로 되지 않던 클로닝이 되었을 때였다. 논문과 직접적으로는 상관 없는 일, 또는 처음 시도하고 배우는 일만 즐거웠다.




일을 해서 논문이 나올거라는 기대가 있으면 일을 하겠다. 아니, 논문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성취감과 성장을 얻을 수 있는 학회 발표나, 연구비 제안서 같은 경험치 이벤트도 거의 없다. 일을 해도 논문은 나오지 않고, 일을 안 해도 논문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 달에 두 번 정도만 주말 출근을 했다. 야근도 적당히만하고 퇴근했다. 지금도 연구실에서 많이 일하는 축에 속하기는 하지만, 일에 미쳐있던 과거의 나만큼 일을 많이 하지 않는다.


성장은 계단식이라고 말한다. 급격한 실력 향상을 위해 재미 없고 지루한 시간을 버텨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 버티다보면 언젠가 빛을 발할 수 있다는 말도 한다. 끝도 없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하염없이 버티고 기다려야만 언젠가 세상이 나를 알아봐준다고 한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버텨야 하는 열정과 시간과 마음과 금전은 무한정이 아니기 때문에 버틸 수가 없다. 아무리 위대한 연구를 하면 무엇하나, 살아있어야 노벨상을 받는다. 굶어 죽지 않도록 연구비가 들어온다던가. 마음 맞는 사람에게 응원을 받는다던가. 작은 성장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같은 게 있어야 한다. 조금씩은 연료를 넣어주어야 버틸 수 있다.




일 자체에 너무 재미가 없어서 의욕이 떨어졌다. 나도 연구라는 일에 재미를 붙여보려고 엄청 애를 썼다. 풀리지 않던 논리적인 연결고리를 풀어서 해결하는 즐거움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논리 퍼즐을 푸는 고뇌와 그 해결의 즐거움은 교수님이 모두 가져가버렸다. 나는 그냥 교수님이 퍼즐풀이를 쉽게 하기 위한 노가다꾼같은 역할이다. 스도쿠 퍼즐에서 각 칸에 가능한 숫자들을 작게 채워넣는 그런 노가다말이다. 스도쿠에서 가장 귀찮지만 필요한 일, 하지만 재미없는 일. 그런 노가다를 하면서 2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노가다만 하더라도 시간과 노력이 정말로 많이 소모되어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내가 퍼즐풀이에 관심을 가질 기회와 시간을 주지 않으면서, 왜 퍼즐풀이에 같이 참여하지 않느냐고 교수님이 나를 혼내고는 한다. 내가 그 퍼즐에 대해서 열심히 고민하고 있으면, 그 동안 교수는 이미 그 퍼즐은 다 풀고서 다음 퍼즐로 넘어가버린다. 나는 교수에게 퍼즐을 해결할 즐거움을 다 빼앗겨버린다.


교수님이 인격적으로 좋고, 말이 통하고, 정말 명석한 분이니까 이런 배부른 생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 교수님이니까 계속 믿었고, 현재는 잘 안 되더라도 미래에는 뭔가 되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과거의 내가 예상했던 미래는 이 시점이었다. 이 시점에는 뭐라도 했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인격이 쓰레기이거나, 불통이었으면 바로 석사로 전환하고 때려쳤을 것이다. 하지만 교수님의 그 좋은 인격 때문에 더 돌아갈 수 없이, 무용한 박사 6년차까지 와버렸다. 내가 지도교수라는 직책에 너무 많은 걸 바라고 믿었던 것 같다. 지금은 교수님을 믿기보다는 나를 믿는다.




교수님은 인더스트리를 희망하는 나의 진로에 관련해서 이런 말을 자주했다.

인더스트리에 가면 불안이 덜어지고, 안정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가요? 어차피 50살이 넘어가면 회사에서 나가야할텐데, 인더스트리 또한 그 불안감이 있을 것입니다.


교수, 당신은 이미 결혼을 하고 심적인 안정성을 가지고서 박사와 포닥을 했을지는 몰라도. 나의 옆에는 아무도 없고, 심적으로 너무 불안해서 미쳐버리겠다. 그런데 이 불안감을 더 극대화하는 해외 포닥은 절대 가지 않을 것이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너무 불안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 심리상담도 받았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쪽으로의 선택은 절대로 더 하지 않겠다. 불안을 담보로 자유를 얻고 싶지도 않고, 그런 자유를 바란 적도 없다. 나는 하루 빨리라도 조금의 안정을 찾고 싶은 마음 뿐이다.


어차피 50되면 회사에서 나가야한다는 말에는 동감한다. 그렇다고 아카데미는 안정적인가? 학계는 45에도 미친 고용 불안정성에 덜덜 떨면서 '교수'라는 직장을 구해야 한다. 교수 자리가 쉽게 나는 것도 아닐 뿐더러 테뉴어(정년보장) 또한 쉽지 않다. 학계에서 안정적인 노후를 바라보기 위해 불안한 청년기를 다 허비할 수는 없다. 젊음은 짧고, 노후는 길다. 짧은 젊음을 조금이라도 더 누리기 위해서는 아카데미를 나가야 한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젊은 나이에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하고 싶다.




위 글은 24년 말에 작성한 초고를 기반으로 작성했다. 불안정, 불안감, 불만, 불신임, 모든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작성했던 글이다. 지금은 이 때와 달라진 점도 있고, 여전한 점도 있다. 차이점과 공통점을 떠올리면서 이 글을 퇴고했다. 그러고 25년 말, 나는 두 가지의 다짐을 한다.


1. 불안감을 지우려면 바쁘게 살아야 한다. 작년과는 다르게, 요즘에는 바빠서 그런지 크게 불안감이 들지 않았다. 불안함을 직시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는 편이 가장 간편한 방법이다. 게다가 올해는 교수가 시키는 일 때문에 바쁜 게 아니다. 연구재단/스터디/미팅 등등 내가 마감일자를 설정하고, 내가 그 마감일자마다 어찌저찌 일을 끝내기 위해 분주했다. 교수님은 마감일자를 지시하지 않으니 내가 스스로 마감고, 스스로 성취했다.


2. 졸업 논문과 디펜스를 일순위로 해서 살아야 겠다. 다른 실험/분석/발표/지도/리딩 등등은 다 때려치우고, 대학교에 제출할 내 졸업 논문만 챙긴다. 우리 연구실 학생 중에서 졸업을 위한 1차 발표, 2차 발표, 포스터 발표 모두 내가 처음 했으니, 졸업도 내가 처음할 것이다. 학계에 제출할 논문같은 건 신경쓰지 않는다. 어차피 나는 학계에 남아있을 생각 따위는 없으니, 박사 졸업논문만 작성하면 된다. 내 졸업에는 나만 관심 있다.


졸업은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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