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대학 입시썰: 기대하면 불합격

Day 12. 변화.

by honggsungg labnote

대부분의 과학고 학생들은 수시로 대학교에 지원한다. 내가 지원했던 6개 모든 학교의 수시전형은 자기소개서, 생활기록부, 각종 서류를 제출하는 1차 서류 평가와, 수학과학 문제를 풀고서 구술 또는 논술하는 2차 평가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부 생명과학 관련된 학과를 지원했는데, P대학만 융합 IT 뭐시기 학과를 지원했다. 지원할 수 있는 카드가 남아서 그냥 하나 써본 게 아니라, 나는 애초에 P가 1순위였다. P대학 입시에서 치렀던 수학과학 문제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자기소개서 기반 면접을 했다는 건 기억이 난다.




자기소개서는 개미 이야기로 시작했다. 개미는 집단행동을 한다. 개미 개체 한 마리 수준에서는 의미가 없어 보이는 행동도, 수 만 마리의 개미로 구성된 개미 집단 수준에서 관찰하면 그 행동에 의미가 생긴다. 이를 테면, 개미 개체 수준에서는 그냥 단순하게 앞에 있는 또 다른 개미의 페로몬을 따라가는 단순한 현상이 있다. 이 개미는 앞선 페로몬을 따라가면서 자신도 페로몬을 내뿜는다. 이러한 단순한 행동을 하는 개미가 10마리, 100마리 이상 다수 모이게 되면, 101번째 개미는 가야 하는 위치까지 최적의 경로로 이동한다. 즉, 하나의 개미 수준에서는 단순한 알고리즘이 다수의 개미 집단 수준에서 최적의 경로탐색으로 재탄생한다.


아메바의 일종인 점균류도 재미있는 창발적인 특성이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점균류는 단세포로 생존한다. 그런데 일정 수준 단세포 점균류가 너무 높은 밀도로 자라고 있으면, 즉,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 단세포 점균류들은 서로 모여서 다세포 생명체가 된다. 다세포 점균류는 포자를 만드는 기관을 형성하고, 현재 위치에서 먼 곳으로 포자를 퍼뜨린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 정착한 포자는 다시 단세포 점균류가 되어 살아가기 시작한다.


개미는 개체 수준에서 집단 수준으로 규모가 커지면서 로운 특징이 생기고. 점균류는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규모가 커지면서 뭉치는 새로운 특징이 생긴다. 이처럼, 작은 수준에서 나타나지 않는 형질이 큰 수준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창발성이라고 한다. 고3 시절의 나는 창발주의에 굉장히 큰 관심이 있었고, 현재도 관심이 있다. 그때 작성했던 자소서에는 뉴런 하나하나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하여, 뇌와 의식을 미믹하겠다는 이야기를 작성했다. 뉴런과 전기신호 수준에서는 의식이 나타나지 않지만, 뇌 수준에서는 의식이 드러나는 창발성을 보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예쁜꼬마선충의 뉴런의 연결형태를 모두 컴퓨터로 옮겨서,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예쁜꼬마선충 시뮬레이션을 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다.)


면접관: 기소개서에 작성한 내용을 보면, 우리 학과보다는 K대학의 이오뇌공학과를 지원하는 게 더 맞지 않나요?

나의 답변: ...(앗 그런가? 흐음 근데 여기가 장학금이나 커리큘럼 더 좋은 거 같은데... 하면서 10초 정도는 아무 말 못 하고 있었다.) 제가 자기소개서에 작성했던 내용대로, 저는 창발성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뉴런과 의식에 대한 부분에 특히 관심이 있습니다. 생명과학적인 측면을 충분히 다루면서 이를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 학과의 융합적인 커리큘럼과 사고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 학과에 지원했습니다.


개떡같이 답변했기 때문에 P대학 융합 IT학과는 떨어졌다. 이 질문에서 머리를 띵 맞은 것 같은 충격으로, 이후 질문들에도 어버버 하고 제대로 답변을 못했던 기억이 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바이오뇌공학과에 이런 연구하는 데가 왕왕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런데 그 자리에서 "여기 학과가 장학금도 더 많이 주고, 석박사 졸업도 더 빨리 시켜주잖아요!"라고 말할 용기나 뻔뻔함이 없었다. 후... 이렇게 솔직하게 말했으면 붙여줬으려나, 아닐 것 같다. 아무래도 IT학과다 보니까, 나 말고 정보올림피아드 수상학생이나 개발 프로젝트를 좋아하던 친구들이 합격했었을 것이다.




2순위로는 S대, SK대, K대 3개였다. 2순위 학교 중에서 S보다는 K가 좋았고, K보다는 SK가 좋았고, SK보다는 S가 좋았다. 세 학교가 서로 가위바위보 같은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서, 셋 중에서 어느 학교가 우선순위가 더 높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많은 고3이 그렇듯이, 합격하는 대학에 갈 심산이었다.


그나마 기억이 나는 S대 구술 면접시험 얘기를 해보자. 나머지는 어떤 시험을 봤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S대는 생명과학 문제 2개를 받고 30분 간 면접 대기실에서 답변을 고민하다가, 고민 시간이 끝나면 10분간 면접실에서 구술 답변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면접을 치르고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느낌이 왔다.


아 이건 합격이다.


식물의 광합성 과정에 관해 구술하는 문제가 나왔다. 두 문제였을텐데 광합성 문제만 기억이 난다. 식물 세포는 빛에너지를 이용하여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도당으로 합성한다. 이때 "빛에너지를 이용하여"와 "이산화탄소를 포도당으로 합성"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일어나는데, 앞부분을 l ight reaction (명반응) , 뒷부분을 carbon fixation (탄소고정)이라고 부른다. 시험 문제는 light reaction 작동기전을 꼬리 문제들과 함께 구술하는 문제였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Light-dependent_reactions


light reaction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엽록체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엽록체는 틸라코이드 막을 기준으로 안팎이 존재한다. 틸라코이드 막 안쪽은 수소이온 농도가 높고, 바깥쪽은 수소이온 농도가 낮다. 틸라코이드 막에 박혀있는 "엽록소"가 막 안쪽의 높은 수소이온 농도를 가능케 한다. Photo System II 내부의 엽록소는 태양 빛을 받으면 물을 산소와 수소이온으로 쪼개고, 들뜬 전자를 얻는다. 들뜬 전자는 또 다른 반응으로 바깥쪽의 수소이온을 안쪽으로 퍼올린다. Photo System I 내부의 엽록소는 들뜬 전자, 수소이온, NADP를 가지고 NADPH라는 고에너지물질을 틸라코이드 막 바깥에서 만들어낸다. 즉, "엽록소"는 여러 방법으로 막 안쪽에는 높은 수소이온 농도, 바깥쪽에는 낮은 수소이온 농도를 유지한다. 막 안팎의 수소이온 농도차이를 이용해 물레방아 같은 ATP 합성효소가 세포 내의 에너지원인 ATP를 합성한다. 즉, light reaction 은 빛으로 수소이온 농도 차이를 만들고, 그 차이를 통해 에너지원을 합성하는 과정이다.


답변이 끝나고서, 면접관들의 추가질문이 이어졌다. "시중에는 여러 종류의 제초제가 있는데, 각 제초제의 원리와 그 결과를 설명해 주세요." 1) PS II를 저해하는 제초제는 물분해를 막아, 산소생성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리고 PS I 에도 사용되는 들뜬 전자를 제공하지 못합니다. 2) PS I를 저해하는 제초제는 NADPH 합성을 막아, 이후 carbon fixation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3 ) 틸라코이드 막에 구멍을 뚫는 제초제는 아무리 엽록소가 수소이온 농도 구배를 제작해도, 농도 차이를 유지하지 못하게 합니다. 4) ATP 합성효소를 저해하는 제초제는 수소이온 농도 구배가 있더라도 ATP 합성을 막아, 이후 carbon fixation에 문제를 일으킵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캠벨생명과학 교과서와 구글 검색으로 광합성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고 작성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19세의 나는 위 내용을 면접장에서 바로바로 생각해서 답변해 냈다. 그 이유는 학교 친구들끼리 하고 있던 면접스터디에서 면접 일주일 전에 이 문제를 거의 그대로 다뤘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에 충분히 까여봤기 때문에 무리 없이 답변할 수 있었다. 운이 좋았다.


면접이 끝나고서는 엄청난 달변에 스스로 감탄하면서 귀가했다. 약 한 달 뒤, 합격창을 확인했는데,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면접을 잘 봤는데, 불합격이라니...! ㅠㅠ 2순위의 다른 대학교인 SK와 K는 합격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SK와 K 중에서 내 선호는 SK였기 때문에 SK에 등록을 했다. SK는 내가 지원한 학과가 신설학과여서 호텔 같은 데서 입학 예정자 환영회 같은 행사도 했다. 그렇게 SK에 입학하려던 찰나, S에서 추가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S대에 당연히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고, 조금 늦어졌을 뿐이었다. 결론적으로는 2순위로 생각했던 3개 학교 모두 합격했다. 그러고 나는 S대학교에 입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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