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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남 조 Sep 15. 2024

눈 깊은 밀림


" 저기 저 바~반짝 거리는게 그~금성입니까?"


주머니 없는 낡은 군대동복(군인패딩)을 입은탓에 겨드랑이에 넣은 언손을 빼지도 못하고 일어서며 준영이 추위에 입마저 얼었는지 더듬으며 물어보는 말이다.


" 어, 맞다. 저기 북두칠성 보이지? 디귿자로 생긴 마지막별 끝에서 직선으로 가다가 제일 빛나는별이 북극성이다.자~일어나라. 가자."


나는 그가 가리키는 하늘을 쳐다보며 설명해주었다.


나무 가지사이로 보이는 유난히도 밝게 빛나는 북극성, 추위에 박달나무도 얼어 터진다는 백두산의 겨울밤에 끝도없이 넓은 이 원시림을 헤메고 있는 우리를 밤하늘의 그 별빛도 처량하게 내려다보는것만 같았다.


식었던 땀이 마르지않고 그대로 얼어 목덜미랑 등짝을 베이는것 같이 아려왔다.


안아일으키다싶이 준영이를 데리고 앞선 금혁이 아빠랑 은심이네를 따라걸으며 처음으로 나는 집떠난걸 후회했다.


돼지고기며 기름진 음식을 한달이든 두달이든 있는동안 실컷 먹을수 있고 사탕이나 과자같은 간식, 그리고 과일도 맘껏 먹을수 있다는 천국같은 이야기와 장작을 패주고 소 여물이나 좀 먹여주고 하면 하루에 중국돈 백원씩 계산해 준다고 하며 몇날,몇일을 꼬드긴 금혁이 아빠의 이야기에 큰맘먹고 따라나선걸음이 자칫하면 잡히거나 아님 아무도 모르는 산속에서 얼어죽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밀려드는 후회를 떨쳐낼수가 없었다.


그것도 나 혼자가 아니라 은심이랑 은별이, 준영이까지 다 내가 데리고 나선 걸음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꼴이람.


남들은 이 새벽에 차례상을 물리고 집집마다 벽에 걸린 초상화와 부모님께 세베를 드리고 따뜻한 아래목에서 설음식을 먹을텐데 이건 어딘지도 모를 남의나라 땅 깊은 수림속에서 갈곳도 없이 추위에 바들바들 떨고있으니...


앞장에서 때로는 허리까지 치는 눈을 헤치고 일행을 이끌고 가는 금혁이 아빠 한사람만 믿고 우리는 가야할 목적지도, 방향도, 위치도 모른채 정처없이 눈깊은 밀림속을 걸어가고 있는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다른 방법이 없다.


밤새 걷고 정신없이 뛰고 때로는 가슴까지치는 눈길을 헤치느라 기력을 다 소진한탓인지 잠깐 쉬다가 다시 걸으려니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야된다.


사람사는 곳을 찾아야된다.


하다못해 어디 버려진 오두막 같은데라도 찾아야된다.


아님 이 산속에서 동태귀신 될수있다.


일행은 한동안 아무도 말이없이 금혁이아빠  뒤를 따라 묵묵히 걷기만했다.


혹시나 하고 나는 가끔씩 뒤돌아보며 공안이 쫓아오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우리가 온 방향이 어느쪽인지 정확이 구분되지가 않는다. 정신없이 도망치느라 갈지자로 왔는지 아님 우리가 좀전에  떠나온 그 바로 뒤쪽인지조차 알수없었다.


분명한건 우리가 쉬던 장소에서 ㄴ자로 꺽어서 가고있다는것이다.


그 방향이 남서쪽인가보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수림이 깊어지고 빼곡해진다.


낙엽이 지지않은 분비나무,가분비나무 숲이라서 그런가 너무 시커멓게 어두운곳은 하늘의 별도 안보일때가 있다.


그런곳을 지날때는 공안이 아닌 산귀신이나 곰같은 무서운 산짐승이 나타날까봐 더 겁이났다.


준영이도 어두운 그런 숲을 지날때는 " 무섭슴다~" 라며 잔뜩 겁먹은 얼굴로 뒤돌아보며 귀속말 속삭이듯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여자애들도 마찬가지다. 벌써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걸음이 빨라지는것만봐도 그들도 겁에질려 있는걸 알수있었다.


( 진짜 이런데서 곰이나 사나운 늑대무리라도 만나면 어쩌지? 우린 누가 손칼하나 가진게 없는데..그렇다고 뛰어봤자 이젠 기운이 다 빠져서 더 이상 빨리 뛰지도 못하구..이럴줄 알았으면 강 넘을때 도끼라도 가져오는긴데..)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만약의 경우 무기로 쓸만한  나무가지라도 주우려고 두리번거렸지만 잡관목이 별로없는 밀림이라 찾을수가 없었다.


백두산은 올라갈수록 해발고가 높아 기압탓인지 나무도 곧게 위로 자라지 못한다.


침엽수 나무든  활엽수 나무든 옆으로 퍼지다 보니 나무가지도 몸통만큼이나 엄청 굵다.


사람힘으로는 부러뜨릴수 없다.


이런곳은 얼기설기 얽힌 굵은 나무가지들 때문에 낮에도 위를 쳐다보면 하늘이 안보일때가 있다.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곳이 바로 그런곳이다.


이미 지칠대로 지쳤고 깊은 눈길이라 이런데서 늑대무리가 달려들면 영낙없이 당할판이다.


일행의 맨 뒤쪽에서 걸으니 당장이라도 무언가가 내 뒤에서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어제낄것 같아 겁에질려 힐끔 힐끔 뒤를 돌아다 보며 걸었다.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할텐데..아까 마신 술 기운인지 맨 앞에서 씨엉~씨엉 걸어가는 금혁이 아빠만 겁이 없는것 같아보였다.


나처럼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조금씩 밀려오는 후회 때문인지 누구한사람 말이없다.


얼마나 걸었을까,


 시계를 보니 출발한지 두시간정도 지났다.


그렇게 가도 가도 끝이 보일것같지않던 빼곡했던 수림 저 앞쪽에 희뿜이 밝은 빛이 보인다.


드디어 개활지대인것이다.


그제야 나는 한껏 질려있던 무서움이 조금 사라지는것 같았다.


걸음을 재촉해 가까이 다가가보니 아직 날 밝기전이라 어디까지인지는 알수 없지만 탁 트인 드넓은 평야지대가 나졌다.


 큰 나무라고는 한,두대씩 서있는 자작나무나 고로쇠나무 뿐이고 듬성 듬성 키 낮은 잡관목들 뿐이다.


금혁이 아빠는 우리가 다 다가갈때까지 기다렸다가 잠시 방향을 가늠하는듯 하늘을 쳐다보더니 말없이 먼저 걸음을 뗐다.


그런데 이~크, 몇발자국 안가서  물속에 풍~덩 빠지는듯 해서 보니 눈 깊이가 거의 그의 가슴을 친다.


헤엄치듯 팔을 벌려 앞,뒤로 휘저으며 눈길을 헤쳐가는것이다.


뭐, 몇시간전 차에서 내려 정신없이 도망칠때도 몇번 그런곳을 지나긴 했지만 그때보다 지금은 기력이 다 빠진것이다.


그래도 그는 아랑곳 하지않고 앞장서 가고있다.


은심이도 나를 뒤돌아 한번 피끗 보더니 오던 순번대로 그의 뒤를 따라 들어서고  은별이도 언니의 뒤를 바로 따라선다.


나도 준영이를 앞세우고 뒤를따라 들어섰다.


밀림속을 걸을땐 몰랐는데 바람도 분다.


강한 바람은 아니지만 새벽바람이라 목깃이랑 팔소매를 파고드는 바람은 뼈속을 파고드는것만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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