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에 잠깐이라도 마음을 열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요즘 말 짝으로) 진심인 나에게 기가 막힌 일이 한번 있었다. (그의 희망 여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나의 글을 당연히 보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한 친구를 만났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보자마자 맥락 없이 “너 이것을 읽어봐.”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대화 중에 내가 쓴 글과 연결할만한 화제가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단 둘이 대화를 나누는데 어느 하나가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말길이 그렇게 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기회가 왔다, 아니 만들었다. 나는 짐짓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러면 너 이것 한번 읽어볼래?”
그리고 그 자리에서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그의 문자계정으로 전송했다.
“뭔데?”
그가 관심을 표시했다.
“그냥 읽어봐. 내가 쓴 거야.”
그는 “그러마.”라고 했다.
경험을 해 본 사람이면 안다. 둘이 한참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말이 끊기고 한 사람이 다른 짓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색한 상황을 연출하는지. 그것이 마주 앉은 사람의 요구에 의해, 심지어 그의 기대에 부응해서 그가 쓴 글을 읽는 것이라고 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읽는 사람도 편하게 여유를 가질 수가 없지만 상대방 역시 시선을 둘 곳을 찾기가 애매하고 자리가 어색해진다.
잠깐 궁리를 하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는 순간 그도 감독처럼 앉아 있는 내가 불편했던지
“화장실이나 다녀오라.”고 했다.
상황을 모면하려는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한 것이다.
‘역시 말하지 않아도 같은 마음이 오고 가는군!’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갑자기 속이 불편해진 것이 아니니 화장실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소변을 보고 손을 씻고, 물을 털고 남은 물기는 종이 수건을 뽑아 닦았다. 마침 앞에 거울이 있길래 안 보던 거울도 한번 보고 가급적 시간을 늘렸다. 그가 천천히 읽을 수 있도록 시간을 최대한 벌기 위한 것이었다. 아직 시간이 충분히 흐르지는 않았지만 딱히 더 할 일이 없었다. 그 좁은 화장실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모두 한 셈이다. 천천히 나왔다. 화장실에서 자리까지 가는 길도 길게 펴서 아주 느리게 걸었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이 아니어서 약간의 어색한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의 뒤를 돌아 의자에 앉았다. 내가 앉는 순간 그는 이미 일을 마치고 나를 기다렸다는 듯 한 눈짓을 했다.
‘이렇게 빨리 읽을 수 있을까? 내가 생각보다 오래 있었나?’
나는 의외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하며 ‘어떠했느냐?’고 표정으로 물었다.
“키워드 중심으로 읽었는데...”
‘키워드? 이런 글에서 너는 키워드를 찾니?’
나는 시작이 어째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래도 그가 이어서 하는 말을 끊지 않고 들었다.
“특이 사항 없음.”
‘뭐? 특이 사항?’ 기가 막혔다.
‘내가 너에게 무슨 보고서를 결재받고 있냐, 인마.’
말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내 표정에 이런 표현이 묻어났는지 그가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나 나나 그날은 평상시와 다르게 표정으로 많은 것을 주고받았다.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그랬고 그는 내가 말을 하지 않으니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아무리 글이 허접하기로서니, 친구의 기대를 이토록 무참하게 산산조각 내버리는 사람도 있다. 수필류의 글을 읽고 키워드를 찾는다고 하질 않나, 특이 사항이 없다고 하질 않나. 도대체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그는, 인문적 소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친구, 맞는가? 그날 내 글에 대한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나는 더 이상 그에게 반응을 기대할 수가 없었고 그 역시 특이 사항이 없으니 더 이어서 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다고 그날 별다른 특이 사항을 놓고 얘기를 한 것도 아니다. 우리의 만남은 제법 긴 시간 동안 이어졌지만 키워드랄 것도 없고 특이 사항도 없는 그저 그런 일상적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했고 따라서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인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기는 그것을 알 만큼 눈치가 있었으면 특이 사항 운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날 돌아오며 나는 그의 인문적 소양에 빵점을 주었다. 그리고 빵점짜리에게는 나의 글을 다시는 보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묘한 것이 그의 ‘특이 사항’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했는데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글의 형식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접근법이었지만 그 의미만 그대로 떼어내면 ‘글에 특징이 없다.’ 혹은 ‘눈에 띄는 내용이 없다.’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별한 글을 써보겠다고 작정을 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특별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내용이 기기묘묘하고 별나야만 특별한 글은 아닐 것이다. 소소한 소재가 읽는 이의 일상과 자연스럽게 포개질 수 있다면 특별까지는 아니어도 인상적일 수는 있을 것 같다. 아마도 공감의 문제가 아닐까 싶었다.
자신의 글이 공감을 일으키는 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인지상정으로 통할 것 같다. 그의 ‘“특이 사항 없음.”은 표현이 건조하고 무뚝뚝해서 그렇지 결국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낌이 충분히 담긴 글이라면 속성으로 읽는다고 느낌이 생략되지는 않을 것이다. 약하게라도 공감을 불러일으킨 친구의 글을 그가 굳이 “특이 사항 없음.”으로 박하게 자를 것 같지도 않았다.
결국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글을 읽어 주기 바라는 마음이 우정을 앞세운 횡포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인문적 소양 점수를 아무에게나 후하게 주고 사정조로 방향을 잡는 것이 차라리 유리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