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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한집사 Oct 30. 2024

교사도 쇼할 줄 알아요

 다음 날, 교무실에 들어서며 ‘좋은 아침입니다.’라는 반어적 인사를 외치는 다영의 얼굴은 잠을 거의 자지 못해 퉁퉁 부어 있었다. 심장병에 정신병까지 일으킨 사건들과 유튜브에 방영돼도 손색없는, 기묘한 능력과 관련된 생각들이 미꾸라지처럼 뇌를 헤집어대는 통에 잠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진통제 한 알로 두통을 달랜 후, 시뻘게진 눈으로 외로이 하는 수업.     

 

 딱히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다영의 교권 보호에 대한 조치는 단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먹은 급식이 체하기 적당한 5교시에 기어이 그 녀석과 마주하고 만 것. 녀석은 ‘이유 따윈 없지만 네가 정말 싫어.’라는 표정으로 교실 뒷자리에 앉아 칠판(이라 쓰고 ‘다영’이라 읽는다)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다영은 심호흡을 하며 애써 그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 얼굴을 피했다.

 “그래서 이 시의 마지막 연은 처음 연과 수미상관을…….”

 다영의 설명이 채 끝나기 전이었다. 웅성대던 교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녀석이 갑자기 일어나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발로 걷어찬 것이다. 또 엄청난 이벤트가 벌어질 거란 기대감으로 교실에 있는 모든 이들의 눈동자는 전부 녀석을 향했다.

 “씨발, 존나 재미없네.”

 우렁찬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는 녀석의 얼굴에는 일말의 죄책감이나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다영을 사냥감으로 점찍은 후 잔혹하게 물어뜯는 맹수의 눈 자체였다.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지만 여러 학생 앞에서 또 한 번 마주해야 하는 녀석과의 대치 상황은 다영을 극한에 밀어 넣었다.  

   

 ‘지금이야.’     


 여기저기 킥킥대는 소음에 둘러싸여 정처 없이 흔들리는 다영의 귓가에 누군가 속삭였다. 주다영, 정신 차려! 언제까지 지고만 있을 셈이야?     


 다영이 그때 입술을 둥그렇게 오므렸던 건 더 이상 패배자가 될 수 없다는 일종의 몸부림이었다. 나조차도 내가 지기만 하는 광경을 두고 볼 수 없는걸! 그래서 다영은 휘파람을 불었다. 다행히 바람 빠지는 소리만 맥없이 나던 어제보다 조금 더 나아진 맑은 음이었다.     


 순간 거짓말처럼 다영 앞에 펼쳐져 있던 교실이 조용해졌다. 물론 그 교실은 30분 전으로 되돌아간 상태였다. 녀석은 의자에 앉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다영이 판서하는 칠판을 쏘아보는 중이었고, 다른 학생들은… 몇몇은 저만의 공부를 하고 있었으며, 몇몇은 떠들기에 여념이 없었고, 또 몇몇은 그들만의 게임에 열심이었다. 모두 그 모습 그대로 멈춘 채 침묵만 흐르는 교실.

 ‘이제 어떡하지?’

 어젯밤 집에서처럼 가만히 시간이 흘러가기만 기다려 봤자 조금 전 상황이 반복될 뿐일 터— 다영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싸맸다. 그러다가 갑자기 교실 뒷문을 박차고 나가 후다닥 1층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교장실에 가기 위해서였다.

 다영은 노크조차 하지 않고 문을 활짝 열었다. 안에는 교장이 눈을 지그시 감고 클라리넷을 입에 문 채 뻣뻣한 북어가 되어 있었다.

 다영은 명색이 학교의 최고 관리자라는 그녀가 자신을 타박만 하는 교감보다 오히려 더 무책임하다고 늘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 그녀는 자기만의 성채에 틀어박혀 한가로이 클라리넷이나 불고 있었다니……. 조금 전, 교실에서의 자신을 떠올리자 다영은 머리가 이상해지는 기분이었다.

 다영은 조각상처럼 묵직한 교장의 몸을 그대로 허리에 둘러맸다. 물론 입에 물고 있는 클라리넷도 잊지 않았다. 그녀가 진심으로 무거웠기에 다영은 다친 학생들만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교실이 있는 2층 복도에 진입했다. 그리고 낑낑대며 2학년 3반 교실로 그녀를 옮겼다. 그 과정에서 교장의 비싸 보이는 옷자락이 바닥에 약간 끌리긴 했지만, 다영은 개의치 않았다.      


 세팅한 무대는 다영이 BTS에 빙의해서 ‘피+땀+눈물’로 장장 15분에 걸쳐 완성한 역작이었다. 교실 중앙에 제일 먼저 자리한 주인공은 얼굴을 한껏 찌푸린 채 앉아 있는 녀석이었다. 센터가 되기에 흠잡을 곳이 하나 없는, 완벽한 그 꼬락서니! 다영은 녀석의 귀 바로 옆에 눈을 감고 클라리넷을 부는 교장을 세웠다. 교장의 연주 따위는 들어본 적도 없지만 알 게 뭐람. 실력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녀석은 분명 폭발적인 반응을 보여줄 테니까. 그리고 주변에는 다른 학생들의 책상을 ○자로 빙 둘렀다. 이렇게 멋진 공연에 관람객이 빠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 무대가 완성되었다. 분명 최고의 공연이 될 것이다.      


 학교…

 가해자, 방관자들 모두

 한 번 즐겨 봐,

 내가 만든 무대를.      


 정확히 일시 정지가 풀리는 순간까지 딱 3분을 남겨두고 다영은 황급히 교문을 빠져나왔다. 온몸에 힘이 탁 풀리며 다리가 후들거렸다. 분명 통쾌한 일이 벌어질 테지. 그런데 가슴 한쪽이 저릿한 건 왜일까.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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