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운 다영의 가슴에서 콩닥콩닥— 토끼가 방아 찧는 소리가 났다. 기어이 심장에 이상이 생기고 말았구나! 오늘 종일 그렇게나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 학교에 완전히 K.O. 당한 나
- 옥상에서 아래로 점프×2
- 일순간 멈춰버린 세상
- 그곳에서 만난 ‘시계’ 라는 여자아이 (라고 쓰고 ‘도라희’ 라고 읽는다)
‘나야말로 스트레스로 돌아버린 건 아닐까?’
옆으로 누우며 다영은 베개를 꽉 끌어안았다. 확실히 두통이 있는 듯도 했다. 피해망상, 환각, 환청, 우울감……. 이건 뭐, 정신병 종합 선물 세트구나.
‘내일은 병가 내고 병원부터 가 봐야지.’
다영은 서러운 마음에 괜스레 코끝을 훌쩍이며 눈을 감았다.
불현듯 그 도토리만 한 여자아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너를 마지막으로 도와줄게. 시간을 아주 조금 되돌릴 수 있도록— 그럼 적어도 오늘보다는 나은 삶이겠지.”
‘쪼끄만 게 꼬박꼬박 반말이야, 확!’
다시 생각해도 건방진 꼬마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오른 다영은 베개를 주먹으로 퍽퍽 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쯤은 알지만, 찡— 하고 통증이 울리는 머릿속 한구석에 ‘진짜일까?’ 하는 호기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사실은 진짜라고 믿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만약 정말이라면 어떻게 하는 거야?’
왜 그 꼬맹이는 방법을 안 알려주고 사라진 것인가. 진실 쪽에 10% 정도의 가능성만 열어두고 생각하는 것임에도 다영의 마음속에는 꿀팁 방출 없이 사라져 버린 시계를 향한 야속함만 가득했다. 이거 참, 다시 뛰어내릴 수도 없고 답답하기만 할 뿐…….
순간, 여자아이가 ‘휘잇!’ 하고 휘파람을 불던 장면이 떠올랐다. 오직 딱딱한 개체만의 세계였던 공간이 갑자기 생기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하던, 놀라운 시간의 마법.
내가 바로 그 애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슬며시 다영은 입술을 둥글게 오므려 보았다. 그리고 공기를 힘차게 내뿜었다. 그러나 그깟 휘파람도 쉽지 않았다. 한참 동안 날숨만 거세게 내쉬는 바보짓을 한끝에야 간신히 ‘피이이’ 하고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때였다.
창문 너머 들려오던 말소리가 뚝 끊겼다. 다영의 우주에는 적막만이 남았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인기척이 사라진 집이 낯설어서 다영은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분명히 다영과 함께 침실에 들어가셨던 부모님은 여전히 잠자리에 들기 전, 그 모습 그대로 아까 방영이 끝났던 드라마를 보고 계셨다. 악역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엄마와 하품하는 아빠의 얼굴 그대로 얼음이 된 상태였다. 벽에 걸린 디지털시계는 놀랍게도 다영이 양치질을 하기 전인 9시 40분으로 돌아가 번쩍, 시각을 알리는 중.
‘시간이 되돌아갔어! 그 여자애 말이 진짜였다니… 세상에, 휘파람을 불면 30분 전으로 세상이 바뀌는 건가?’
멈춰버린 시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것은 다영 외에 되돌아간 시간뿐이었다. 시계는 9시 40분에서부터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로 주어진 과거의 30분을 대책 없이 맞이한 다영은 혼란스러운 마음에 그저 부모님 곁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기다리면서 말이다.
그리고 새롭게 맞이한 10시 10분. 디지털시계가 또 한 번 번쩍, 유난히 밝은 빛을 냈다.
“다영아, 이제 잠이나 자자.”
엄마가 다영을 불렀다. 휘파람을 불기 전, 지난 10시 10분에도 엄마는 저렇게 말했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리모컨으로 TV를 껐다. 아빠는 주섬주섬 자리를 정돈하며 아까와 똑같이 기지개를 켰다.
“어, 어어.”
혼이 반쯤 나간 얼굴로 다영이 대답했다. 그리고 처음보다 더욱 콩닥대는 가슴을 부여잡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제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