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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한집사 3시간전

인생 상담해 드려요

 당장이라도 바람결에 날아갈 것만 같은 간판이었다. 허연 도화지에 검은색 매직으로 한 자 한 자 휘갈긴 글씨. 다영은 그 종이를 삼각으로 접어서 바닥에 깐 돗자리 위에 척 올려두었다. 혹시나 하여 뒷면에는 ‘Human Life Consulting’이라는 글로벌한 영문 표기도 잊지 않았다. 바로 그 간판 덕분에 다영의 이름을 내건 사업장이 완성된 것이다.

 장소는 한강 공원이었다. 헤드셋을 끼고 달리는 청년, 까르르 웃으며 치맥을 즐기는 여대생들, 아이와 마실 나온 가족…….

 그 사이에서 그늘도 드리우지 않는 정오의 직사광선을 직방으로 내리쬐며 다영은 돗자리를 지켰다. 제발 누구라도 걸려라- 하는 심정으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무선 이어폰을 귀에 쑤셔 넣고, 제법 철학하는 사람답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었다. 어떤 개그맨의 말처럼 ‘아프면 환자가 맞지 않나?!’란 근본적 의문이 치솟았지만, 교수님 말씀에는 원래 토 달면 안 되는 법이다.       


 한참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을 때, 다영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남녀 커플이 갑자기 돗자리에 철퍼덕 앉았다. 뚱한 여자의 표정, 난처한 남자의 얼굴. 점쟁이가 아니어도 싸웠다는 사실을 맞힐 수 있었다.

 “혹시 애정 상담, 이런 것도 가능해요?”

 여자는 뾰로통한 목소리로 상담을 요청했다.  

    

 첫 손님이다, 주다영. 제대로 한 번 실력 발휘해 보자!      

 “그럼요, 두 분의 연인 관계에 대해 상담하고 싶으신 거죠?”

 커플은 동시에 고개를 마네키네코의 손처럼 까딱했다.     


 다영은 곧바로 휘파람을 휘잇- 불었다. 시간은 빠르게 과거로 되돌아갔다.

 우려와는 달리 공원 안의 사람들 가운데 파이팅 중인 남녀를 찾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로 다영의 뒤편에서 서로를 향해 악다구니를 쓰는 마네킹이 되어 있었으니까. 이어폰을 빼고 싸움을 관전했더라면 더욱 알찬 상담이 되었을 텐데, 너무나 아쉬울 뿐이었다.     

 

 일단 뒷조사의 기본인 휴대폰부터 털어보기로 했다. 다영은 먼저 표정부터 죄인 모드인 남자의 주머니를 뒤져 증거물을 꺼냈다. 그리고 얼굴 인식을 거쳐 잠금을 풀었다. 모든 사건은 SNS에서 시작하는 법. 다영은 카카오톡부터 인스타그램까지 꼼꼼히 살피고, 또 살폈다.

 “이거 이거… 회사 동기랑 왜 따로 만나 저녁을 먹고 그래?! 하이고, 썸이네,  썸.”

 다영은 혀를 끌끌 찼다. 멍충 돋게 썸녀의 이름을 고대로 저장해 두다니, 뒤에 하트까지 붙이고. 날 잡아 드시게, 하고 작정했구먼. 아니면 아예 여자가 보라고 대놓고 해둔 건가?! 어떻게 봐도 이쪽이 범인이다.

 다음은 여자의 휴대폰 차례였다. 서글프게도 여자의 카카오톡 최신 대화 목록은 남자가 아닌 동성 친구였다. ‘내 사랑 지호♥’와의 채팅방은 언제나 여자의 부름에 단답형으로 돌아오는 서글픈 메아리뿐…….

 다영은 여자와 동성 친구의 채팅방을 눌러서 그동안의 대화를 확인해 보았다. 길고 긴 이야기 속에는 그간 여자의 속앓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3년이 넘는 기간의 만남, 남자가 입사할 때까지 정성스러운 뒷바라지, 어느 순간부터 무관심해진 상대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최근에 진단받은 갑상선암…….

 ‘갑상선암은 요즘 암도 아니라니까 죽진 않겠지만 그냥 슬퍼. 내가 이렇게 아픈데도 오빠는 관심조차 없다는 게. 이제 진짜 끝내야 하나 봐.’

 여자가 친구에게 보낸 허무한 진심을 본 순간 다영은 배꼽 밑에서부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런 나쁜 새끼, 인간도 아닌 새끼!”

 두 남녀가 처한 상황 파악이 이렇게 얼추 마무리되자 시간의 흐름은 어느새 30분에 닿아 있었다.


 째깍, 째깍!     


 드디어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제는 현재를 살아야 한다. 싸워야 한다.

 “저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 좀 해주세요.”

 여자가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호 씨.”

 다영이 근엄한 목소리로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 역시 임용고사를 준비하던 시절, 바람나서 떠난 전 남자 친구(라고 쓰고 ‘쌍놈의 새끼’라고 읽는다)를 생각하니 열이 뻗치는 것을 억누르며 최대한 덤덤하게.

 “헉, 이름은 어떻게 아셨어요?”

 “그건 알 거 없고-”

 화들짝 놀라는 둘에게 손사래를 치며 다영은 랩이라도 갈기듯 속에 있는 말을 다다다 쏘아댔다.

 “지호 씨,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되지. 지금 막 대기업 입사하고 세상 다 가진 것 같지? 그거 오래 안 가. 금방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순간이 와. 옆에서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 다 반짝거리고 멋져 보이지? 처음 만났으니까, 새로우니까. 지호 씨 옆에 있는 예슬 씨도 처음 만났을 때 빛나던 사람이었어. 지호 씨 취업 준비할 때 도와주고 기다려주던 사람 누구야? 힘들 때 함께 있어 주는 귀한 사람 만나기 쉽지 않아. 사실 예슬 씨만 위한다면 지호 씨가 지금 놓아주는 게 오히려 좋은 선택일지도 몰라. 현명하게 생각해.”

 연속으로 뒤통수를 후려치는 듯한 다영의 말에 남자의 얼굴은 점점 시뻘게졌다.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영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 예슬 씨는 울 때가 아니야. 건강부터 챙겨야지. 더 이상 남 위해서 살지 마. 모든 문제는 자신만을 위해 결정해. 내가 예슬 씨에게 해줄 말은 이것뿐이야.”

 여자는 울먹울먹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영은 여자를 향해 활짝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곁에 앉은 남자를 매섭게 쏘아보았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복채!”

 “어,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다영의 이글거리는 눈빛에 주춤해진 남자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다영은 손가락 다섯 개를 활짝 펴 보이며 남자의 얼굴에 들이댔다. 남자는 품에서 지갑을 꺼내 서둘러 오만 원을 내고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여자는 눈물을 훔치면서도 인사를 잊지 않았다. 다영은 잘 가라는 듯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첫 번째 손님들과의 진한 사골 국물 같은 이야기가 끝났다. 앞으로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다영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과거로 비춰 본 현재에 대한 조언을 눈물까지 쏟으며 귀 기울였으니, 분명히 그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든 지금과는 다르지 않을까?

 그리고 누군가 자신의 말을 이렇게 경청한 적이 얼마 만이었던가. 다영은 자신이 누군가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음이 기뻤다. 예슬 씨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기만을 바랄 뿐…….


 한편으로는 착잡한 마음도 들었다. 나, 이렇게나 할 말 똑 부러지게 잘하는 사람인데 학교 안에서는 왜 그렇게 모두에게 쭈구리였을까… 나에게 교직이란 역시 분에 넘치는 직무였을까… 하는, 조금은 우울한 생각 때문에.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지역 카페에는 핫한 게시글 하나가 올라왔다. 한강 공원  매점 근처에 있는 ‘주다영 인생 상담소’에 대한 후기였다.  

  댓글은 화르륵, 10분 만에 200개가 넘으며 폭발했다. 역시 단군신화로부터 시작된 샤머니즘의 나라, 대한민국!


 다음 날부터 다영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화장실 갈 틈도 없었다. 너무 영업이 잘되는 것도 골치였다. 다들 워라밸 아시잖아요, 워라밸. 결국 다영은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4시간만 바짝 일하기로 했다.    

  

 그렇게 다영의 인생 2막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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