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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한집사 Nov 01. 2024

점쟁이로 이직하렵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해가 이미 서쪽으로 까마득하게 넘어간 뒤였다. 거리에는 눈부신 네온이 총총 어두컴컴한 하루의 끝을 밝히고 있었다. 오늘도 격렬한 전투를 치른 다영은 피곤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비실비실 현관으로 들어왔다.

 “이놈의 가시나야! 대체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야 집구석에 들어온 거야? 엄마 전화는 왜 안 받아?!”

 “아, 아! 아파! 그만 좀 때려!”

 집에 들어오는 딸내미를 보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엄마는 맨발로 뛰쳐나오며 다영의 등짝을 세차게 후려쳤다. 등에 제모용 패드라도 붙였다가 단숨에 뗀 것처럼 피부가 얼얼했다. 이 정도면 최소 5일은 엄마표 손자국 각이었다.      


 다영은 엄마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축농증이 재발한 듯 쉴 새 없이 벌름대는 엄마의 콧구멍만 보아도, 엄마는 이미 오늘 학교에서 다영이 벌인 사건에 대해 모두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치사하게 부모님께 이르다니, 망할 놈의 학교…….

 “네가 하도 전화를 안 받으니까, 학교에서 엄마한테까지 연락이 왔어. 선생이라는 애가 말도 없이 학교를 뛰쳐나가서 지금까지 뭐 하다가 들어온 거야?!”

 “아, 몰라! 나 이제 학교 그만둘 거야!”

 “이놈의 계집애가! 아직도 정신 못 차려? 너!”     


 엄마의 고함을 뒤로 하고 다영은 방문을 쾅, 닫아 버렸다. 더 이상 출근 따윈 안 할 생각이었다. 늘 가슴속에 품고 있던 네 글자, ‘의. 원. 면. 직’. 사직도 전자결재받는 시대에 이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견디고 또 견뎠을까. 이제는 정말 하겠다고, 하고 말 거라고- 결심은 했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녀석도, 다른 학생들도, 동료 교사도, 교감도, 교장도……. 모두 진절머리 나는 것을. 그 전쟁터에 계속 남아있을 이유가 더 이상 없었다, 다영에겐.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다영은 대체 자신이 왜 사범대 따위에 갔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이십 년이 넘게 압축된 메모리는 어느덧 다영이 출생하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태어날 때부터 모범적인 아기였던 다영. 2.84kg의 적당한 체중으로 엄마가 힘을 주자 한 방에 쑥 나왔다는 산부인과의 전설이었다는 효녀. 그렇게나 모유도 잘 먹고 밤에 잠도 잘 자서 속 썩이는 일 하나 없었다나?!

 무럭무럭 자란 다영은 곧 영특한 유치원생으로 진화했다. 그림책 몇 권을 읽고 한글과 알파벳을 깨친 자신을 보며 ‘아이가 참 빠르네요.’라고 칭찬하신 선생님의 말씀에 영재가 태어났다며 온 집안이 호들갑을 떤 적도 있었다고.

 그 기대는 물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지고 말았다. 그래도 모나지 않게 자라며 평균 이상의 성적은 받아오는 다영의 학교생활에 부모님은 대체로 만족하시는듯했다.      


 그렇게 다영은 ‘모범-영특-평범’의 성장 과정을 밟아 대한민국 고3으로 변신하였고, 급기야 담임교사로부터 어느 대학·어느 학과에 원서를 쓰겠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일생 단 한 번도 진로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을 해본 적 없던 다영이었다. 당연히 결정한 무엇도 없었다.

 그런 다영의 머릿속에 문득 그날 국어 시간에 배웠던 시의 구절이 떠올랐다.     

 

 나에게 희망이 있다고

 말해주세요

 나에게 내일이 있다고

 말해주세요                   

- <별을 그대 가슴에> 中, 나태주 -      


 오직 그 때문이었다, 이런 대답을 한 것은.

 “아, 저 사범대 국어교육과 가려고요.”

 그렇게 성적에 맞춰 적당한 대학의 국어교육과에 원서를 썼고, 합격해 버렸다. 어쩌다 보니 임용고사도 기적처럼 한 번에 패스했다. 다영은 국어 교사가 되었다.

 ‘으아, 내가 미쳤었지!’

 다영은 침대에서 몸부림치며 베개에 머리를 쾅쾅 내리쳤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지. 그날 그 국어 선생님은 하필 왜 그 시를 그렇게 감동적으로 수업하셔서 제자의 앞날을 이렇게 만드신 걸까… 선생님, 선생님!      


 “주다영! 나와서 밥이나 먹어!”

 “아, 안 먹어!”

 방문 너머 엄마의 부름에 신경질만 팍 내고는 이불속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드는 다영의 머릿속에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자신에게는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지 않은가. 지금 당장 고3 때로 거슬러 올라가자, 거꾸로 강물을 오르는 연어처럼!

 “휙→ / 휘익↘↗ / 휘이익→↘↗”

 다영은 짧은 간격을 두고 휘파람을 무려 3번이나 불었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픈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눈을 꼭 감고 기도까지 했다. 이것만이 아스팔트 바닥에 껌딱지처럼 붙어버린 자신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살며시, 정말 살며시 눈을 떴다. 바퀴벌레 기어가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고요한 집. 세상의 모든 것들이 지난 시간 속에서 움직임을 멈춘 모양이다. 내가 이 시간 동안 인생을 새롭게 설계한다면 현재는 분명 달라져 있겠지?!


 다영은 후다닥 화장대 앞으로 달려가 거울에 얼굴부터 비춰 보았다.

 그대로였다.

 다음 달에 꼭 의느님의 손길로 지져 없애고야 말리라 다짐했던 오른쪽 눈가의 기미가 고스란히 얼룩져 있는 피부가 ‘네까짓 게 감히 10대?!’라고 비웃는 듯했다. 믿을 수 없었다.

 다영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현재 시각 9시 47분. 오늘 날짜 2024년 6월 25일.

 ‘뭐야, 겨우 30분 전이잖아?!’

 그때 본인이 자칭 ‘시계’라고 주장하던 여자아이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너를 마지막으로 도와줄게. 시간을 아주 조금 되돌릴 수 있도록- 그럼 적어도 오늘보다는 나은 삶이겠지.”

 유독 ‘아주’와 ‘조금’에 힘을 주어 발음하던 그 말.

 ‘몇 번을 불어도 겨우 30분…?’

 인생 역전은 개뿔, 글렀구나. 다영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고작 30분 시간을 뒤집어봤자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로또도 안 돼, 코인도 안 돼, 주식도 안 돼……. 그렇다고 양심을 저버리고 도둑질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영은 문득 슬퍼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학교에서 그 난리를 치고 나오지 말 것을, 그래도 안정적인 게 공노비 생활인데- 하는 후회도 조금, 아주 조금 들었다.

 그래서 엉엉 울었다.     


 ‘이제 뭐 해 먹고사나…….’

 이성이 돌아온 뒤 차가워진 두뇌를 풀가동하여 생각이란 걸 해보았다. 역시 학교에 돌아가는 건 두려웠다. 어제 교실에서의 멋진 무대는 모른 척하더라도 역시 그 녀석을 다시 만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주다영 = 부적응 교사


 이것이 다영이 내린 결론이었다.     


 이직을 할 거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능력을 활용해서 블루 오션을 개척하고 싶다는 게 다영의 포부였다. 직장도 때려치우고 제2의 삶을 시작하는 마당에 돈 많이 버는 쪽으로 턴 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은가?

 ‘30분, 30분, 30분…….’

 남을 등쳐먹지 않고 30분 회귀할 수 있는 능력으로 돈을 쓸어 담는 직업이 뭐가 있을까?


 점쟁이.


 과거로 삶을 내다보는 자. 다영은 30분 동안 사람을 탈탈탈 터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도 살렸는데…?!’

 주머니 뒤져서 나오는 게 전부 정답이지, 못할 건 뭐람. 30분 동안 그 사람을 이 잡듯 뒤져서 살피고 그 사람이 가진 고민을 풀어주는 거야, 뭐 어때. 요로코롬 기막힌 생각이 다영의 머릿속에 불을 지폈다.      


 심장병이 재발한 걸까- 다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갈비뼈 안에서 토끼가 방아를 찧다 못해 점핑 다이어트를 시작한 느낌이었다.

 ‘못 하겠다 싶으면 튀자…!’

 이제는 더 이상 공노비가 아닐지어다. 막 살기로 결심한 다영이었음에도 새로운 시작이 설레고도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또 불면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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