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 육체적 성질. 또는 그런 본능.
지난한 삶에도 끝은 있었다. 모든 곡선에는 변곡점이 있다. 그리하여 상황은 반드시 역전되기 마련이다.
아이의 병세 역시 마찬가지였다. 불길한 예감이라도 든다손 치면 머리를 흔들며 ‘절대 그럴 리 없을 거야!’라고 잡념을 쫓던 지난날도 아득한 과거로 남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모두 아이가 잘 버텨준 덕분이었다.
병원에서 소아암 치료 종결 금메달을 받던 날, 그때의 감격은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철 모르는 아이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얼른 지하 매점에나 가자고 나를 보챘다. 그리고 진료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많은 희귀 질환과 싸우던 아이의 보호자들이 일제히 나와 아이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아서- 차마 소리 내어 기뻐하지도 못했던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정의하는 엄마란 그런 사람이었다.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 행복과 고통을 함께 나누며, 기꺼이 아이라는 존재가 오롯이 성장하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는 자-
그러나 모두가 그러지는 않는 법이다. 세상 모든 엄마들의 생김새가 다르듯 모성의 형태는 다 달랐고, 심지어 모성이 비틀려 발현되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내 엄마가 그런 경우였다.
아이의 치료 종결 후,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던 내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건 이는 다름 아닌 엄마의 지인이라는 자였다.
그는 다짜고짜 이제는 엄마를 용서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며 내게 교육자의 자격을 갖추려면 네 엄마부터 모시고 사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그와 내 엄마는 어떻게 알았는지 이미 내 전임교를 한바탕 뒤집어엎은 뒤였다. 아마도 내가 지금 근무하는 곳을 알아내기 위해서 찾아갔던 모양이었지만, 딱히 수확이 없었던 터라 이제는 내게 전화를 건 듯했다.
엄마도, 혈육도 아닌 그는 시종일관 내게 너무나 당당한 태도였다.
1. 용서
2. 만남
3. 부양
이것이 그가 내게 전화를 건 용건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이후로 엄마에게 제대로 된 돌봄을 받은 적이 없는데 말이다.
위 세 가지를 요구하는 엄마는 비겁하게도 그 사람의 뒤에 숨어 있었다. 정작 본인은 내게 모습을 드러내지도, 어떤 말을 하지도 않고 말이다.
모성이란 어떤 것일까?
본능의 발현인 걸까? 아니면 학습된 결과인 걸까?
난 그녀를 떠올리며 지금도 그 본질에 의문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