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 의사가 환자의 병 상태를 판단하는 일
정신과에 방문한 건 꽤 오랜만이었다. 그즈음 나는 거의 벼랑 끝에 몰려있었다. 내가 스스로를 해치고 싶어 칼을 들었을 때에도 병원 문턱을 넘지 않았던 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나는 반드시 버텨야 했다. 평온한 얼굴로 나조차 맞아본 적 없을 정도로 굵은 주사 바늘을 가슴팍에 찌르는 아이에게 ‘괜찮아’를 말하고, 때로는 마취제에 취해 시들어 검사실로 향하는 아이를 보면서도 울지 않아야 했다.
엄마에게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한 정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한 순간은 사실 엄마라는 존재가 가장 극한에 몰렸을 때였다. 자식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 앞에서는 멀쩡한 이도 제정신을 차리기란 쉽지 않을 거라고 감히 나는 생각한다. 하물며 이런 재앙을 맞닥뜨린 사람은 하필 나약해빠진 나였다.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건 사실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불안정한 감정 기복, 지나치게 날카로운 성격, 좀처럼 숙면을 취하지 못하는 고통 등은 간헐적으로 내가 약국에서 수면유도제를 사는 이유이기도 했으니까. 그럼에도 선뜻 전문의를 찾지 않은 건 내 우울증에는 원인(불우한 유년)이 명백히 존재하고, 이것이 치유되지 않는 한 캡슐 몇 개 따위로는 나을 수 없으리라는- 어리석은 믿음 때문이었다.
제 발로 찾은 정신과에서도 나는 이딴 소리를 신나게 지껄였다. 대체 어떻게 치료하라는 건지, 알맹이라고는 쏙 빠진 헛소리를...
물론 의사는 나 같은 환자를 한두 번 본 게 아니었을 터였다. 그는 매우 친철하고, 또 차분한 어투로 내게 설명했다.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 목발은 보조 도구일 뿐이죠. 우울증 환자에게 약도 그럴지 모릅니다. 하지만 복용한다면 훨씬 생활이 개선될 수 있어요.”
그는 지금은 나뿐 아니라 아이를 위해서라도 약이 필요할 거라 말했다.
아이를 위해서-
이 말은 ‘엄마’라는 명함을 지닌 이들에게는 참 마법과도 같은 힘을 지녔는지, 원... 나는 곧바로 순한 양이 되어 의사와 복용 스케줄을 상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가 없이 엄마가 된 나는
공식적인 우울증 환자로 진단받았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치료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바람처럼 아이에게 내 엄마와 다른, 엄마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
아이는 항암 치료를, 나는 우울증 치료를 하며 견디는 지루한 나날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조금씩 치료 종결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나 역시 조금씩 뾰족하기만 했던 마음의 모서리가 조금씩 닳아가며 둥글어졌다. 슬픔을 기꺼이 끌어안고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엄마였다.
그것이 삶을 견디지 못하고 나를 버린,
내 엄마와 나의 차이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