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다
1. 전에 본 기억이 없어 익숙하지 아니하다.
2. 사물이 눈에 익지 아니하다.
“으이그, 엄마도 없이 너 혼자 어떻게...”
정말 오랜만에 들어본 말이었다.
엄마.
성인이 된 지 오래, 그것도 무려 30대에 접어들어 가정을 꾸리고 아이까지 낳은 내게 ‘엄마’가 없이 이 일을 견딜 수 있겠냐며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주는 사람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하긴- 그 병동에 있는 모든 보호자들은 다들 아이의 엄마였고, 또 그 옆에는 그 엄마의 엄마가 함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마치 모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당시 두 돌도 안 된 내 아이가 진단받은 병은 'LCH(랑게르한스세포 조직구 증식증)‘이라는 희귀 혈액종양이었다. 치사율은 다소 낮지만, 백혈병보다도 희귀하다는 이 병의 치료를 위해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전남에서 서울아산병원까지 올라와 소아암 병동에 안착했다.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했기에 남편은 함께 있을 수 없었다. 세 돌 미만이었던가, 아무튼 어린아이의 간병을 위해서는 제한적으로 보호자 2인의 출입을 허용하는 소아암 병동에서 몇 없는, 오직 엄마 하나뿐인 보호자가 바로 나였다. 그 외에는 돌봄을 받는 아이 곁에 엄마가, 그리고 그 엄마의 돌봄을 위해 친정 엄마가 꼭 함께 했다.
그런 나를 보며 병문안을 오신 친척 할머니 한 분께서는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안고 토닥이셨다. 자기 딸도 희귀병인 아들을 긴 세월 대학병원에서 간병 중인지라 그 길이 얼마나 고달픈지 잘 아신다는 듯-
내 인생에서 엄마가 없어서 그때만큼 서러운 순간은 없었던 것 같다.
엄마가 나를 버리고 떠났을 때에도, 면전에서 나를 고아원에 버리겠다고 서슴없이 내뱉을 때에도, 변기 앞에서 위액까지 토하며 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때에도, 출산하며 진통하는 그 순간에도...
이만큼은 서럽지 않았다.
하지만 내 아이가 생과 사의 경계에서 위태로운 싸움을 시작했음을 알고, 내가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허물어질 때- 다른 누군가는 엄마의 품에 안겨 기꺼이 아이 몰래 눈물 훔칠 수 있는 10분이라는 시간을 얻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이 몰래 울 수도 없음을 절감했다. 왜냐하면 나에겐 엄마가 없었기 때문이다.
길고 긴 1년의 아이의 항암 스케줄.
시작부터 쏟아지는 눈물을 참아야 한다는 걸
알았지...
엄마라면 마땅히 그래야 함을 알았지만...
나에게는 진짜 그 10분이 절실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마음껏 울고 싶었다.
아이 몰래,
누구라도 제발 내 아이를 살려 달라고.
엄마-
너무 오랜만에 부르는,
낯선 그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