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
1.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
2. 다 써 없어짐.
아이는 고작 3.4kg으로 태어났지만- 실제로 감당해야 하는 무게는 그보다 천 배 만 배, 아니- 그 이상이었다. 고작 신생아일 뿐이라 먹고, 자고, 싸는 기본적인 욕구만 충족시켜 주어도 부모로서의 소임을 다할 뿐인데 나와 남편은 완전히 나가떨어지고 말았으니... 장차 이 아이를 기르면서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나와 남편은 미래에 우리가 감당해야 할 무게를 차마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아이는 엄마를 먹고 자랐다.
내가 생산한 모유, 내가 탄 분유, 내가 만든 이유식, 내가 지은 밥... 그 애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먹거리는 모두 내가 손수 만든 것이었다. 하긴, 태아일 시절부터 이미 탯줄로 내 몸속 모든 양분을 힘껏 빨아먹었으니 그럴 법했다. 나는 아이를 위해서 매일 정성껏 식사를 준비했다.
어릴 적 나에게 먹거리란 그저 끼니를 때우는 용도 이상의 가치는 없는 것이었다. 배고픔이 느껴지면 먹고, 그렇지 않으면 굳이 먹지 않았다. 식도락 여행이란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혼 전, 나는 늘 마른 몸을 유지했다. 태생이라기보다는 후천적인 결과였다. 아무도 내 식사를 제대로 챙기지 않았고, 음식과 성장 간의 상관관계를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빠가 내 보호자이긴 했으나 확실히 부모로서의 모든 역할을 다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나는 엄마가 되어서야 알았다. 아이는 엄마를 먹고 자란다는 사실을-
내가 먹이는 모든 음식이 그 애의 뼈와 살이 되어, 통통하게 살찌우고 성장케 한다는 것을 엄마가 되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아무도 내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조차 없었고.
내가 육아를 시작한 이후 보상 심리처럼- 소위 육퇴 후 허기진 배를 야식으로 채우기 시작하며 살이 찌기 시작한 것도 이런 삶의 궤적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으리라.
많은 엄마들이 매일같이 자녀와 치러야 하는 수많은 전쟁 중에서 나 역시 안 먹는 아이와 씨름해야 하는 그놈의 ‘한입만 더 전쟁’이란 것에 출전하며- 나는 생각한다. 과거의 내가 깨닫지도 못했던 서글픈 결핍을 이 아이에게는 물려주지 말자고.
나는 절대 엄마 같은 엄마는 되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