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미국 방송에서는 아침부터 트럼프의 당선을 예고하는 리포트가 계속되고 트럼프는 당선인 확정 된 듯 흥분된 어조로 지지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
할미는 집으로
며칠 전까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대통령선거에 대한 안내문이 왔다. 자녀들이 대통령선거에 대해 이해하고 또한 어떤 분쟁도 위험한 일도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내용이다. YMCA에서도 회원들에게 같은 안내문을 보냈다. 선거와 관련된 이견이나 불만들이 폭력사태로 이어지는 것을 우려한다는 안내였다.
미국에서는 이번 선거와 관련 2가지 결과만 있다고 예측하는 농담이 있다. 트럼프가 당선되거나 트럼프가 불복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데 불복할 시 일어날 심각한 갈등과 폭력사태에 대해 깊은 우려를 느낄 수 있다. 트럼프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다행이지 싶다. 우리 아이들이 그런 폭력적 상황에 놓이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다행인가? 또 쓸데없는 걱정이다.
9월 5일 미국에 들어와서 어느새 2달. 돌아가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둘째 손주가 태어난 후 지금까지 3년 넘게 서로의 집은 달라도 거의 매일 만나며 같이 밥 먹고 살다가 미국에 와서 2달간은 한집에 함께 살기까지 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 남편과 둘이 지내게 된다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다.
위싱턴 대학 도서관에서 한국 책을 찾은 손주
한국 갈 준비는 출국 일주일 전 김장으로 시작했다. 미국 가서 며칠 만에 담은 김치가 어느새 바닥을 보이려 한 하는 시점이다. 우리 가족들이 한국에서는 김치를 그리 많이 먹는 편이 아니었는데 신기하게 미국에 오니 갑자기 김치를 많이 먹는다. 집에서도 주로 고기류를 많이 먹고 외식도 미국식으로 하다 보니 김치가 더욱 그리운 모양이다.
먹다 남은 김치는 국물까지 버리지 않고 김치찌개를 만들고 우거지로 덮은 겉잎조차 잘게 썰어서 김치전을 만들어 먹었다.
무채 하나 김치국물 한방물조차 아깝게 먹었는데도 바닥을 보이니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넉넉히 만들어 둘 일이다. 내년에 내가 다시 미국에 올 때까지 두고 먹기 위해 김장에 돌입한다. 배추 8 통과 총각무 3단 이 정도면 큰 딤채 통 2개만큼의 김치와 작은 통 하나만큼의 총각김치니 내년 봄까지 넉넉히 먹을 수 있겠지.
내년에 다시 만나자
혹시 미국에서 김치를 하려는 주부들을 위한 팁을 주자면 미국 배추는 잎이 두꺼워서 배추 절이기에 가장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 시간을 아끼고자 너무 짜게 절이면 김치가 써지니 답답해도 24시간 정도 절이는 것을 추천한다. 충분히 절여져야 배추향이 덜 난다. 지난번에는 처음이라 잘 몰라 조금 덜 절여진 채로 속을 넣었는데 배추가 다 익어도 날 배추향이 강하게 남아서 아쉬웠었다.
내가 가고 나면 스스로 김치를 해야 할 며느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김장을 지켜본다. 김장의 기본은 양념류를 다듬고 씻고 칼질하는 것인데 이 과장이 그리 수월하지는 않다. 배추가 절여지는 동안 파, 마늘, 고추, 무, 갓 등 속재료를 다듬고 씻고 썰어 놓으면 절반일은 끝나는 것인데 재료 손질조차 며느리에겐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념 속도 늘 고민이다. 내 방식이 계량되지 않은 ‘적당히' 방식이라 한 컵, 한 스푼, 몇 밀리와 같은 단위로는 표현할 수 없어서 항상 ‘대충 이만큼’이 얼마 큼인지를 가늠해야 하는 며느리의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옆에서 열심히 메모하고 기억하는 것을 보니 언젠가는 해내겠지 싶다. 솔직히 나도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해주 실 때는 지켜보기만 했다. 내 김치를 만들기 시작한 건 15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나도 했는데 똑똑한 며느리가 못할 리 없지 않은가.
손녀딸과는 첫 긴 이별이다
다음으로는 밑반찬 쿠킹 클래스다. 한국에서 가져간 잔멸치와 진미채로 멸치볶음과 진미채무침을 만들고 일본 마트에서 구입한 연근과 냉동오징어로 연근조림과 오징어젓을 만들었다. 한국산 오징어젓이 너무 비싸서 대신 만든 미국판 오징어젓인데 냉동오징어를 삶은 후 썰어서 소금과 식초에 절인 후 꼭 짜서 수분을 제거하고 고춧가루, 파, 마늘, 물엿등 양념 넣어 꼬득하게 무쳐 놓으면 제법 오징어 젓갈 맛이 난다. 김치 할 때 넣어 둔 섞박지를 꺼내서 김밥과 곁들이면 미국에서도 충무김밥을 맛볼 수 있다.
아들 며느리 손주들이 먹을 반찬들로 냉장고를 채워 놓으니 한결 마음이 푸근하다. 이제는 한국에 가져갈 소소한 선물을 구입할 차례. 예전에나 미국산이 귀했지 지금은 한국에서도 대부분 다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이라 특별한 선물이랄 게 없다. 심지어 환율도 높다 보니 별로 구매욕구가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빈 손으로 보내기는 아쉬웠는지 며느리가 트레이더조와 코스트코에 다니며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소스나 시즈닝, 말린 과일류 등을 싸 준다. 어떤 시즈닝에는 양귀비 씨가 들어있어서 한국반입 금지란다. 오홍? 미국 사람들은 양귀비도 먹나?
“어머니도 드셨어요. 양귀비 씨요.”
“뭐라고 내가 뭘 먹었는데?
알고 보니 며칠 전 고기에 뿌려 먹었던 가루 ‘에브리팅 벗 더 베이글’에 양귀비 씨(poppy seed)가 들어 있었다. 예전에 터키 양귀비 씨를 먹은 적이 있다. 양귀비 씨와 꿀을 넣은 요구르트였는데 깨보다 작은 씨앗이라 무슨 맛인지는 모르겠고 씨앗 한 티스푼 정도 먹었다고 무슨 기분이 좋아지고 그런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을 주는 사람도 씨앗이 그런 효과를 가지지는 않는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혹시 심을까 봐?
미국에는 정말 많은 시즈닝과 소스가 있다
미국에서는 이렇게 식품이나 약품에도 양귀비나 대마초가 들어가니 그만큼 마약에 노출되기도 쉬울 것 같다. 핼러윈 때는 대마가 들어간 사탕을 주는 나쁜 사람들도 있으니 함부로 사탕을 받지 말라는 주의를 받기도 했다. 암튼 굳이 사 오지 말라는 것을 살 필요는 없다. 불법을 저질러가면서 먹을 만큼 그렇~게 맛있는 시스닝도 사실은 아니다.
두 달 전 올 때는 30kg이 넘는 가방 3개씩을 들고 왔는데 돌아가는 가방은 오히려 단 촐하다. 아침에 학교 가는 손주들에게 인사를 하고 공항으로 향한다. 이제 진정 독박육아와 살림을 하게 된 며느리는 나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잘할 수 있으니 걱정 마세요. 어떻게든 꾸려나갈 거예요.”라는 말을 몇 번씩 한다. 아들도 걱정이 되는지 이제부터 본격적인 미국 생활의 시작이라며 다짐을 한다.
내년에는 훌쩍 커있겠지
손주도 키우도 아들, 며느리도 키운 지난 3년. 강보에 싸여 젖을 빨던 아기가 프리스쿨을 다니게 되었으니 얼마나 많이 자란 것인지. 아들도 내년이면 40대가 된다. 아들도 며느리도 손자도 손녀도 잘 자라줘서 고맙다.
예전 어른들은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오이와 가지가 자라는 모습에 빗대어 ‘오이 붓듯 가지 붓듯 커진다'라고 뿌듯해하셨다. 한 여름 밭에서 오이와 가지가 자라듯 쑥쑥 자라는 아이들이 내년에는 얼마나 자라고 성장해 있을까 벌써 기대가 된다.
미국 안녕, 손주들아 안녕, 아들 며느리도 안녕~ 내년에 다시 만날 때까지 매일매일 즐겁고 행복해라~ 사랑한다. 모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