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소감(Sense of Place) :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장소로 대답하기
마지막 질문은 현대사회 공동체에 있어서 장소의 역할에 관한 것입니다. 개인의 이동성이 극대화된 시대, 온라인의 영역이 컴퓨터에서 손위의 핸드폰까지 더 개인화되어 장소성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시대에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
앞서 우화에서 ‘버스정류장이라는 공간’은 이 일시적 공동체의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 까요? 이 사람들이 이후 모든 버스정류장에서 공동체 형성을 시도할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이 버스정류장에 모인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경험을 하지도 않을 거고요. 중요한 것은 ‘버스정류장이 아니라 바로 그 장소에 깃든 기억’입니다. 이곳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던 기억 같은 것이죠. 아마 이 경험을 나눈 사람들은 이후에 이 정류장만 오면 그 기억이 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떤 성취감이나 뿌듯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고 그때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이 기억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두고두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이야깃거리로 혹은 작지만 충만함을 주었던 연결의 기억으로 계속 남아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사회의 공동체를 이해하기 위해 살펴볼 또 하나의 개념은 ‘장소감’입니다. 장소감은 공동체 활동에 지역성을 부여해 줄 수 있는 조건을 고민하게 해 줍니다. 사회는 탈-장소화 되고 있지만 여전히 장소라는 물리적 공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과거 사람들이 생산과 활동, 삶을 공유한 현장으로 ‘지역’을 생각한 관점을 현대의 공동체에 복원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과거에는 같은 장소에 사는 사람들이 가지는 기억이 공동의 활동, 공동의 경험으로 일치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장소에 살더라도 전혀 다른 라이프스타일, 여러 공동체가 공존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 ‘모여’ 살지만, 과거와 같이 모여 산다는 것이 곧 공동체 형성 조건이 되지 않는 상황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의 공동체 연구는 단순히 집합지로서의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기억’을 공유하는 단위로서 ‘장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공동체 연구자인 ‘토비 로우(Toby Lowe, 2021)’는 공동체란 ‘정체성을 형성하는 이야기(identity-forming narrative)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말합니다. 이 설명에는 장소에 대한 개념이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공유된 이야기’는 곧 ‘기억’을 형성하고 그 기억이 공유될 수 있는 매개, 깃들어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이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뉴캐슬 출신인 그는 스스로 뉴캐슬이라는 지역의 공동체 일원으로 속해있다고 생각합니다. 뉴캐슬이라는 도시의 이야기가 자신의 정체성의 한 부분이라 느낀다고 고백합니다. 어떻게 스스로 거대한 도시의 공동체 일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 공동체에 속하게 된 것은 뉴캐슬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에 쓰기로 한 내 선택 때문입니다.” 그는 뉴캐슬이라는 도시의 특징이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을 인식하고 있고, 이 도시가 만들어가는 역사를 자신의 삶에 역사에 받아들이기로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을 더 쉽게 만들어 주는 것이 장소에 깃든 기억들입니다. 어릴 때 갔던 축구장, 사람들과 모여 자주 이야기 나누던 펍(Pub)과 같은 공간들입니다. 생각이나 경험이 구체적인 장소와 결합될 때 소속감이나 정서적 반응은 더 극대화됩니다.
외로움, 단절 등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시대에 반드시 밀도 있게 연결된 공동체만이 그 감정을 해소하는 답은 아닐 수 있습니다. 토비 로우는 내가 무언가 거대한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감을 누리는 것만으로도 좋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적습니다. 또 장소감에 대한 생각은 최근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잊히는 장소와 기억’에 대한 아카이빙이나 ‘관계인구’와 같은 개념과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공간을 공유하지 않아도 그 장소와 관련된 중요한 기억들이 지역과 연결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기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기여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도 상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나가며 : 공동체의 모습은 더 다양한 것이 좋다
지금까지 몇 가지 질문과 키워드를 통해서 과거와 달라진, 공동체를 이해하는 최근의 방식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공동체’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공동체-하기’에 대한 이해이자 ‘공동체-되기’에 대한 이해입니다. 단어의 정의(正義)와 같은 틀을 마련해서 그 틀로 공동체와 그에 속한 주체들을 통으로 해석하는 ‘명사로서의 공동체’ 이해가 아니라 다양성에 기반해 공동체에 속한 다양한 주체들의 상호작용과 경험을 바탕으로 더 풍부하고 역동적으로 공동체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려는 ‘동사적인 공동체’ 이해입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이해가 사회에 더 다양한 공동체가 형성되고, 다양한 공동체 형성의 기반을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삶의 모습이 다양해지고, 각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공동체의 모습은 더 다양해질 것이고 어쩌면 지금보다도 공동체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수 있습니다.
과거 진행한 연구에서 만난 한 청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삶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기쁘고 기대되지만 정말 그 선택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는 걱정’이 되는 사회에서 자신에게 공동체는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지원이자 응원’이 되어준다고요. 어디엔가 내 삶의 방식에 동의하고, 그 삶을 서로 지지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만큼 더 다양한 공동체들이 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 존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참고자료
George A, Hillery(1955). Definition of Community : Areas of Agrement , Rural Sociology. 20(2)
David W. Mcmillan, David Chavis(1986). Sense of Community:A Definition and
Theory. Journal of community Psychology, 14
김미연, 김인설(2018) 마을지 만들기 사업의 공동체적 경험과 의미, 그리고 한계, 문화정책논종 32(1)
김미영(2015). 현대사회에 존재하는 공동체의 여러 형식, 사회와 이론, 한국이론 사회학회 제27집,
송하진, 우성희(2020). 서대문구 주민의 마을공동체 지원사업 참여 경험 분석과 시사점 : 2017-19년 서대문구 마을공동체 공모사업 참여자를 중심으로. 서대문구 사회적경제마을자치센터 연구보고서
송하진, 안수정(2018). 서울의 청년커뮤니티 작동에 관한 탐색적 연구, 서울청년허브 연구보고서
P.Diaz(2000).
https://uregina.ca/~sauchyn/socialcohesion/definitions%20of%20community.htm
Toby Lowe(2021)
https://medium.com/centre-for-public-impact/what-is-community-2e895219a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