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HI Aug 10. 2024

인터미션

연극 나라의 앨리스

하녀 플레선스의 옷이 마법처럼 변화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의상이 문어의 피부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색상과 질감이 변했다. 보랏빛과 초록빛이 뒤섞인 무늬가 마치 바닷속 깊은 곳에서나 볼 법한 생명체의 피부처럼 물결쳤다. 그녀의 치마 자락은 생명력을 가진 촉수처럼 물결치며, 어두운 방 안에서 은은한 빛을 반사했다. 


그러나 몇 순간 뒤 그것은 더욱 놀라운 변화를 겪었다. 문어의 피부 같던 질감이 점차 부드러운 실크로 변하더니, 이내 윤기 나는 새틴 재질의 정장으로 바뀌어 갔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옷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플레선스의 얼굴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표정도 변화했다. 팽팽한 이마와 수수한 모습은 사라지고, 매끈하고 단정한 얼굴이 드러났다. 눈매는 날카로워졌고, 입가에는 은근한 미소가 떠올랐다.


변신이 완료됐을 때 플레선스는 더 이상 하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앨리스가 잘 아는 한 남자의 모습으로 완전히 변해 있었다.


"앨리스, 잠시 몸을 움직여도 돼. 인터미션이야," 그 변신한 남자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친근감이 느껴졌다. 마치 오래전부터 앨리스와 알고 지낸 듯한 익숙함이 담겨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곱게 접힌 옷감을 꺼냈다. 그것은 그의 손에서 마법처럼 펴지기 시작했다. 그는 이윽고 커다란 모자가 된 그 옷감을 머리에 썼다. 모자는 그의 머리에 꼭 맞았다.


주변의 가구들은 이제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정적이었던 방 안에서는 가구들이 마치 잠에서 깨어나 꿈틀거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소파는 편안하게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고, 책장은 책들을 조심스럽게 다시 배열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마법 같은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가장 놀라운 변화는 석고 동상에게서 일어났다. 그 동상은 장면 내내 굳은 모습으로 정지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자신의 페데스탈에서 용감하게 내려와 방 안을 거닐기 시작했다. 그의 움직임은 우아하고 자연스러웠으며, 마치 오랜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것을 만회하려는 듯했다. 


동상의 피부는 차갑고 단단한 석고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살결로 변화했다. 그의 눈동자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반짝였고, 입술은 미묘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가구들은 이제 저마다의 휴식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방 안의 모든 것이 마법에 걸린 듯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동안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제 서재는 백업 스테이지(Backup Stage)로 사용될 거야. 연극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이 안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어," 변신한 남자가 말했다. 앨리스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잠시 동안의 자유를 만끽하며, 이 마법 같은 순간을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작가의 말


이번 장면은 제가 가장 즐겨 쓰는 요소들을 모두 담아낸 장면입니다. 변화, 마법, 그리고 익숙한 것들의 낯선 전환. 하녀 플레선스가 마법처럼 변신하는 과정을 통해, 이 이야기에 새로운 생명과 에너지를 불어넣고자 했습니다.


플레선스의 의상이 문어의 피부처럼 변해가는 과정은 자연과 초현실의 결합을 상징합니다. 바닷속 깊은 곳에서나 볼 법한 생명체의 피부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경이로움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가 부드러운 실크와 윤기 나는 새틴 재질의 정장으로 이어지는 모습은, 마법의 세계에서도 현실의 질감을 유지하면서도 그 이상을 보여주고자 하는 저의 바람을 담고 있습니다.


이 장면의 핵심은 외형적인 변화를 넘어섭니다. 플레선스가 앨리스가 잘 아는 남자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순간, 이야기는 한층 더 깊은 감정적 연결을 형성합니다. 이 변신은 단순한 마법적 효과를 넘어, 등장인물 간의 관계와 그들이 공유하는 과거의 이야기를 암시합니다.


연극은 계속되지만, 백업 스테이지(Backup Stage)에서의 이 순간만큼은 자유롭고 마법적인 시간을 함께 나누기를 바랍니다.


이 장면을 통해 여러분이 잠시나마 비가 주륵주륵 내리는 일상의 현실을 잊고, 저와 함께 이 마법 같은 순간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