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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HI Aug 10. 2024

뒤집힌 현실

연극 나라의 앨리스

그때 앨리스는 깨달았다. "아, 이건 안감이잖아." "옷을 거꾸로 입혔어." 플레선스가 앨리스에게 드레스를 뒤집어 입힌 것이다. 그녀가 그 사실을 인지한 바로 순간 그녀의 손끝에서 미세한 진동이 시작되었다. 그 감각은 곧이어 온몸을 타고 퍼져나갔고 주변 공간을 마치 물결치듯 일렁이게 했다.


앨리스는 자신의 현실이 휘어지고 비틀리는 것을 느꼈다. 벽에 걸린 시계의 바늘이 느리게, 그러나 일정하지 않은 속도로 움직이며 시간의 흐름이 왜곡되는 것이 보였다. 방 안의 모든 물체들이 기이하게 변형되기 시작했다. 앨리스는 밑을 내려다보았다. 플레선스가 그녀에게 입혔던 드레스의 아랫단이 서서히 뒤집혀지고 있었다. 마루바닥은 소용돌이 모양으로 왜곡되더니 가장자리가 그녀를 빙 둘러 감쌀 듯 다가오고 있었다. 방 안의 모든 사물이 한 점으로 수렴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앨리스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 갇힌 것처럼 느꼈다. 마치 우주 공간에 홀로 떠 있는 듯 했다. 앨리스는 손을 뻗어 주변을 탐색했지만 그녀의 손끝은 아무것도 만지지 못했다.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공허한 순간이 지나자, 이번에는 앨리스의 눈앞이 번쩍이며 시공간이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뒤틀리는 듯한 기이한 감각이 그녀를 휩쓸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듯했다. 소리와 색깔이 물감이 번져가는 캔버스처럼 뒤섞여 이상한 조화를 이루며 그녀의 감각을 자극했다.


앨리스의 시야는 마법에 걸린 듯 흔들렸다. 방의 가구들의 색상들이 서로 뒤섞이고 형태들이 연속적으로 변모했다.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광경에 앨리스는 잠시 넋을 잃었다. 이윽고 시간이 다소 느려지면서 방 안의 사물들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리듯 천천히, 그러면서 확실히 제자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변형되었던 가구들은 원래의 형태를 되찾고 벽시계의 바늘은 다시 규칙적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모든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앨리스의 시야도 점점 더 뚜렷해졌다.


방의 구석구석이 서서히 정리되면서, 벽지의 무늬와 색상이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마루바닥도 다시 평평해지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침대와 책상, 의자 등 모든 가구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익숙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방 안을 부드럽게 비추며 따스함을 더했다. 앨리스는 이 모든 것이 꿈같이 느껴졌지만, 동시에 현실임을 깨달았다. 방 안은 다시 원래의 고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키가 커진 것 같지?" 가장 먼저 그녀가 생각했다. 앨리스는 자신의 눈높이에 있는 천장이 가까운 벽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는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천장이 이제는 거의 손에 닿을 듯이 가까워 보였다. 그녀는 천장의 각진 모서리와 페인트 칠의 작은 균열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이어서 그녀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방을 내려다보았다. 방의 가운데 빨간 드레스를 입은 앨리스가 보였다. 앨리스가 유체이탈이 된 것이다.



작가의 말


드레스 안감이 뒤집히면서 앨리스의 시야가 가려진 순간, 눈앞이 어둠으로 싸이며 앨리스를 둘러싼 세계가 앨리스로부터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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