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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TK Sep 12. 2024

존엄성을 유지한 생존에 대한 고찰 03

변화가 주는 이익과 불이익의 공존, 그 끝없는 딜레마

제2막. 

외계인, 지구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연구하다.


제2막 1장  

존엄성을 유지한 생존에 대한 고찰 03

: 2절.변화가 주는 이익과 불이익의 공존, 그 끝없는 딜레마


외계인은 박영철의 초라한 반지하 방을 둘러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화려한 도시 풍경과 이곳 반지하 방의 현실 사이의 차이가 그의 머릿속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수호천사" 외계인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지구라는 곳, 내가 가본 다른 행성들과는 참 다르군. 지구의 모든 곳의 의식주 문화가 이렇게 비슷한가? 아니면 이곳만의 독특한 현상인가?”


수호천사는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주인님, 흥미로운 질문이십니다. 사실 지구의 의식주 문화는 최근 100년 사이에 급격히 변화했습니다. 예전엔 지역마다 고유한 문화가 있었지만, 이제는 전반적으로 유사해졌습니다. 그 변화의 속도는 디지털 기술의 보편화로 인해 점점 더 가속되고 있습니다.”


외계인은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며 물었다. “기술의 보편화가 있었다면, 불평등도 없어야 하는데… 우리가 지나온 화려한 고층 빌딩과 이 낡고 초라하고 어두운 이곳이 아주 가까이 공존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지?”


수호천사가 답을 이어갔다. "그건 세계화와 도시화의 결과입니다. 20세기 후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스타일의 건물들이 지어지기 시작했어요. 특히 한국에서는 1980년대 아파트 보급률이 약 4%였던 것이, 2021년에는 63%까지 증가했습니다. 아파트가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가 되었지만, 동시에 주거 불평등도 심화되었죠.”


외계인은 다시 한번 반지하의 초라함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렇군. 발전과 동시에 새로운 불평등이 생긴다는 말이군.”


수호천사가 덧붙였다. “맞습니다. 발전은 좋은 것이지만 이로 인한 주택, 아파트 등 주거시설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사람들은 주거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21년 기준으로 서울의 주택가격 대 소득 비율(PIR)은 약 11.1배로, 많은 사람들이 주거 안정에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박영철 씨처럼 반지하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최근 집중호우 같은 자연재해에 더 취약해졌습니다. 이는 주거뿐 아니라 상점이나 사무실도 같은 상황입니다.”


외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옷장을 열어보았다. "의복도 비슷한가 보군. 거리에서 본 사람들이 입은 옷이나 또 네게 보여준 지구의 다른 나라들의 사람들이 입고 있던 옷이나, 여기 있는 옷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군.”


"맞습니다" 수호천사가 대답했다. “각 지역의 전통 의상은 점차 사라지고, 현대적이고 편리한 옷이 데세가 되었습니다.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각 지역의 전통 의상을 입고 다녔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옷을 입습니다. 청바지나 티셔츠 같은 캐주얼웨어는 1950년대 이후 전 세계로 퍼졌죠. 한국에서도 1960년대부터 서구식 의복이 빠르게 확산됐고, 오늘날 K-패션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복은 여전히 중요한 전통 의상이지만,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한복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외계인은 주방으로 걸어가며 물었다. "그럼 음식 문화는 어떤가? 이건 뭐지?" 그는 냉장고 옆에 쌓여있던 즉석식품 패키지를 집어 들었다.


수호천사가 설명했다. "그건 즉석식품입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이런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죠. 2021년 기준으로 한국의 1인 가구 비율은 33.4%에 달합니다. 혼밥 문화가 확산되면서 즉석식품과 간편식 시장이 급성장했죠. 하지만 전통 음식도 여전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김치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음식으로, 2020년 기준 전 세계에 약 33,000개의 한식당이 있습니다. 비빔밥이나 불고기 같은 한국 음식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외계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흥미롭군. 이런 새로운 변화들이 세상을 바꾼다는 건 좋은 거 아니가?”


수호천사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반듯이 그렇지 않습니다, 주인님. 변화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박영철 씨 같은 분들이 그 예죠. 서울의 집값이 상승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였고, 경제적 불평등도 심화되었습니다. 대형유통의 발달로 식재료를 생산하던 작은 규모의 농부나 어부들은 더 가난해지거나 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공식품의 발달로 먹거리가 풍부해지면서 식탁도 변화되었고 이로 인해 쌀의 소비가 줄면서 쌀농사를 중심에 두었던 농가들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한국은 현대화 이전 쌀의 생산량으로 부의 기준을 이야기하던 농업국가였기에 그 변화의 부작용은 더욱 컸을 것입니다. 이런 예시에서  보시듯 변화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군. 박영철 씨 같은 사람들은 이런 변화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외계인이 중얼거렸다.


"그건 우리가 앞으로 더 깊이 탐구해야 할 문제입니다." 수호천사가 말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런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지구의 인간들은 무조건적으로 변화에 순응하지만 않고 그들의 정체성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는 겁니다. 슬로 푸드 운동이나 전통 건축 보존, 그리고 한복의 현대적 재해석처럼 지역 고유문화를 보존하려는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외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찾는 일...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


밤이 깊어갔고, 외계인의 고민은 깊어졌다. 이 낯선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아야 할 큰 과제가 그 앞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책임감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왜 이럴까..." 외계인은 중얼거렸다. "난 그저 이 세계를 이해하고 싶을 뿐인데, 왜 자꾸 이 세계를 '개선'하고 싶은 충동이 들지?”


그는 박영철의 낡은 소파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 속에서도, 박영철과 같은 이들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는 강렬한 사명감이 그의 내면에서 울려 퍼졌다. 그것은 마치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본능이 깨어나는 것 같았다.


"내가 누구였든, 내가 무엇이었든." 외계인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 할 것 같아. 그게 내가 여기 온 이유일지도 모르겠어.”


그의 눈에는 혼란과 동시에 강한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비록 기억은 없었지만, 그의 본질에 깊이 새겨진 사명감은 여전히 그를 이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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