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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경 Nov 18. 2024

서울 독립서점 탐방기





 새로운 취미 생활을 득템 했다. 서울에 있는 독립서점 탐방이다. 회사에 머무르던 낮 시간대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면서 찾게 된 취미다. 서울 구석구석 숨어있는 서점을 찾아 신월동 어귀를 서성이고, 장충동 골목을 누빈다. 북한학 전문 서점에서의 잡담회도 슬쩍 참여하고, 일본 감성 서점의 J-POP 공연도 즐긴다. 동네 책방에서의 북토크에서 숨겨두었던 입담을 발휘하기도 하고, 처음 본 이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눈다. 독립서점과 북카페를 전전하며 책을 눈에 담는 일이 요즘 나의 '웃음벨'이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서너 달에 한 번 북카페를 다니고는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인 활동은 아니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정기적으로 독립서점 투어를 하고 싶다' 꿈꾸던 바를 이뤄나가는 중이다. 직장이라는 짐을 내려두고야 비로소 자유를 되찾았다. 심적 여유가 생긴다는 건 이렇게나 좋은 일이다.




독립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 
회사로부터의 독립, 집으로부터의 독립, 사람으로부터의 독립. 
우리 독립된 인간으로 도시에서 풍요롭게 살아가요.



 매주 월요일은 독립서점 가는 날로 정해두었다. 그날만큼은 종일 책에 파묻혀 시간을 보낸다. 읽을 책을 따로 정해두지는 않는다. 서점에서 눈이 가는 책을 집어든다. 자주 멍을 때리기는 하지만 한 권을 온전히 맛보고 온다.  동네 책방의 백미는 책방 주인장의 애정이 담긴 책 컬렉션을 훔쳐보기다. 책방 지기의 취향을 엿보는 일은 늘 새롭다. 책 표지에 추천하는 이유를 적어두기도 하는데, 그 메모만 보아도 이미 배부르다.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추천사에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이미 만나본 적 있는 책의 추천사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미 휘발되어 희끄무레한 이미지로 남아있던 책을 단숨에 수면 위로 올린다. '아, 이 책이 그랬지. 참 다정한 글이었어.'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재독과 친하지 않은 나지만 이럴 때는 예외다. 책방 지기의 손글씨에 이끌려 다시금 그 책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한 땀 한 땀 써 내려간 손글씨의 힘이다. 올망졸망한 손글씨에 매료되어 책을 다시 읽게 되는 일, 같은 책을 여러 번 읽기 힘들어하는 나를 재독하게 만든다.





 얼마 전 북한학 전문 서점에 다녀왔다. 신대방동 한적한 골목에 위치한 '이나영 책방'이다. 서점이 있을 법하지 않은 위치에 휑뎅그렁하게 들어선 모양새에 '잘 찾아온 게 맞나' 생각이 들긴 했다. 나의 의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네이버 지도는 정확하게 나를 서점으로 인도한다. '이나영 책방'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허름한 건물 2층에 위치해 있다. 다양한 독립 서점을 다니면서 느낀 바지만 동네 책방의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방이 2층에 있든 3층에 있든 만나러 간다.


 중요한 건 독립 서점이 가지는 고유의 색이다. 사람들에 어떠한 책을 권하고 싶은지, 어떤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지가 책방의 분위기를 만든다. 책방 주인의 취향에 따라 독립서점이 다루는 분야가 달라지기도 한다. 이대의 '미스터리 유니온'처럼 추리 소설만을 큐레이션 하는 곳도 있고, '책보냥'이라는 귀여운 이름에 걸맞게 고양이를 테마로 한 책을 취급하는 고양이 책방도 있다. 책방지기의 입맛에 따라 큐레이션 된 책을 구경하다 보면 바쁘게 똑딱이는 초침이 야속해질 지경이다.





 얼마 전 참여한 독서모임에서는 아무 말이나 내뱉고 싶어 혼쭐이 났다. 마음속에서 정제된 언어만 밖으로 내놓을 테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까지 했다. 내향형 인간에게는 다소 낯선 '말하고 싶다는 욕구'를 조절하는 법을 온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재미있는 건 북토크가 끝나고 난 뒤에는 급속도로 내향형 인간 모드로 돌아간다는 점인데, 속도가 GTX급이다. 물 만난 고기처럼 책 속을 누비다가 공통된 대화 주제인 책이 사라지는 순간 I형 인간이 된다. 뼛속까지 내향형 인간임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독립서점을 찾아다니고, 북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상 덕에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책방의 새로 업데이트된 프로그램을 살피는 일이다. 11월의 동네 책방들의 북토크를 찾아보며 어딘가 있을 나의 책 친구를 찾아 기웃거린다. 덕분에 책방 오타루에서 진행하는 재즈 공연도 알게 되었고, 북토크도 서너 개쯤 신청해 두었다. 새벽감성 책방에서 진행하는 특강도 다녀올 예정이다. 달력 어플에 꽉 들어찬 일정을 보며 '11월도 풍족한 한 달을 보낼 수 있겠군' 싶어져 만족스러운 미소가 만면에 들어찬다.


독립서점 고유의 색을 담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일. 북카페에 콕 박혀 해가 질 때까지 책벌레 모드로 지내는 일. 퇴사 후 나를 웃게 만드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나만의 책방을 꾸리고 싶던 지난날의 욕심을 잠시 접어둔 채 착실한 책 소비러로 살아가고 있다. 독립서점의 책방 지기라는 이루지 못한 꿈을 주인장의 애정이 담긴 책 컬렉션으로 위로받는 요즘이다. 그들의 취향을 나눔 받아 골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동네 책방을 가는 건 주인장의 취향이 반영된 작은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타인의 취향을 향유하며 출판계의 소소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지금의 삶도 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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