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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경 Oct 14. 2024

아무튼 퇴사, 독립출판 작가되기





 <12주 독립출판 작가 되기> 라니.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우연히 발견한 글쓰기 강좌에 눈이 번쩍 뜨였다. 광명시에서 진행하는 시민 작가 지원 프로젝트란다. 독립 출판사를 운영하는 작가님이 진행하는 강의라니 더욱 솔깃하다. 퇴사 시기와 적절하게 맞아 들어간 수업 일정에 옳다구나 싶었다. 고민할 여지없이 내 수업이다 싶어 신청 일자와 시간을 달력에 표시해 두었다. 핸드폰 알람까지 맞춰둔 건 안 비밀이다.


 프로그램 신청 당일, 문화 행사 화면에 프로그램이 표시되지 않는 오류가 발생했다. 급한 마음에 하안 도서관에 문의하니 담당자도 모르는 눈치다. 홈페이지에 프로그램이 누락되었음을 전달하니 그제야 장애가 발생한 것 같다며 확인해 보겠단다. 연락을 기다리며 초조한 마음으로 홈페이지 이곳저곳을 뒤져보았다. 그 덕에 달력의 구석진 소개란에서 어렵사리 프로그램을 찾아 1등으로 신청하는 데 성공했다. 홈페이지가 복구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이미 프로그램을 신청한 후였다. 






 1주 차에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제시간에 갈 수 없어 강사님께 미리 양해를 구했다. 퇴사 막바지인 데다 팀의 모든 일을 혼자 하고 있어 시간을 빼기 어려웠다. 1주 차 수업은 12주 동안 함께할 사람들과 얼굴을 익히고 독립출판물의 제목을 정하는 시간이었다. 머릿속으로 제목을 정해뒀던 터라 다행이었다. 퇴사를 앞두고 있던지라 'N년차 직장인의 퇴사 일기'로 제목을 낙점해 두었다. 그런데 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아무튼 시리즈에 편승하고 싶은 욕심에 '아무튼 퇴사'는 어떨까 혼자만의 고민이 진행 중이다.


 아직 '아무튼 퇴사'는 출간되기 전이니 책 제목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슬금슬금 피어나는 것이다. 독립출판 도서의 제목은 아닐지라도 곧 출간될 '아무튼 퇴사'의 주인공은 나라는 생각으로 쓰고 있다. 아무튼 시리즈가 저작권에 걸리면 어쩌지 싶어 생각하다 '어쩌다 퇴사'도 떠올렸는데 느낌이 나쁘지 않다. 어쩌다가 퇴사, 어쩌다 보니 퇴사, 어쩌려고 퇴사까지 어설픈 제목들이 끝도 없이 떠올라 입꼬리가 실룩거린다.






 목요일마다 하안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12주 독립출판 작가 되기> 수업을 듣기 위해서다. 고정적인 스케줄이 있으니 밥을 안 먹어도 든든한 기분이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이자 독립 출판 에세지를 쓰는 작가로 활동하는 강사님과 함께다.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평일 강좌다 보니 참여하는 인원의 연배가 높은 편이다. 나처럼 갓 퇴사한 직장인이 있을 거라 기대한 바는 아니지만 어른들 사이에 낀 꼬맹이가 된 기분이다. 아이를 키우는 40대 초반의 나이 대와 주부로 지내온 세월이 긴 60대 인생 선배님들과의 시간이다.


 불편하냐고 물으면 그 반대다. 요즘 표현에 빗대자면 오히려 좋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이라 마음이 편하다. 비슷한 또래만 가득하면 서로의 글을 비교하며 경쟁할 텐데 나이차가 있으니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아유. 선생님.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구조 요청이 오면 젊은 40대 언니가 60대 언니를 도와드리러 간다. 

 '한글 프로그램 자꾸 로그인하라는데. 설치가 안 되나 봐요.' 

 한마디 하시면 발 벗고 일어나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인류애가 촉촉이 차오른다.






 2주 차 수업은 '목차 정하기'였다. 써둔 글감도 없는데 무슨 목차냐 싶지만 책의 틀을 갖춰나가는 작업이니 나름의 이유가 있지 싶었다. 대다수의 수강생분들이 볼멘소리를 했지만 강사님은 미소로 일관하며 말씀을 이어나갔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쓸 것인지 소제목을 적어가며 뼈대를 만들어두고 그 안에 글을 하나씩 채우면 된다고. 역시 독립 출판 작가 짬바는 다르구나 싶어 쓰고 싶은 글들의 주제를 차근히 적어보았다. 앞으로 써 갈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이렇다.


 시나리오 작업 중인 L과의 대화, 퇴사 당일의 회사 풍경, 미국 주식에 빠져버린 아빠, 지하철을 거꾸로 달리는 허술한 일상, 스물아홉 M의 연애 고민, 나를 변하게 만들어준 다정한 J, 화투를 즐기는 가족의 놀이 문화, 유튜브 덕질 입문기, 걷는 것 밖에 할 수 없던 방황의 계절, 마음의 고향을 두고 지내는 일, 대문자 T가 되어간다는 E의 변화, 뒤늦게 배우는 에세이의 맛, 쓰봉크럽 1박 2일 순천 여행, 슈퍼 할인 품목 털이범, 현타 오는 피아노 실력, 야채 가게 단골이 된 이야기.


 글을 쓰는 매 순간 다정함을 느낀다. 이런 말을 담고 지냈구나, 스스로를 알아 간다. 그동안 쓰지 않고 어떻게 견뎌왔는지 놀라울 정도다. 글 쓰는 수다쟁이가 된 기분이다. 차곡차곡 쌓아두었다가 이제야 마음의 곳간을 열어보는 걸까. 말로 하지 못한 마음들이 많아 글로 쓰고 싶은 걸까. 마음의 빗장을 열고 나를 만나는 시간이 못내 감사한 요즘이다. 나를 사랑해야 비로소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을 되새기며 천천히 나와 친해지는 중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작가 소개를 써 내려가던 시간이라고 답할 테다. 어느 모임에서건 '자기소개를 해주세요.'라는 말은 제법 듣지만 특정 직업인으로서의 나를 소개하는 시간은 처음이었다. 작가인 나를 소개하는 작업은 처음이라 낯선 기쁨이 일었다. 에세이스트로 불리고 싶다는 욕망이 잔잔히 피어나며 간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피곤함도 잊혔다. 하고 싶은 일은 하면서 산다는 건 이런 거구나, 눈이 반짝거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작가 소개를 채우고 싶어 1시간을 고민하며 적어 내렸다. '책을 좋아하고 글을 씁니다.' 언젠가 꼭 쓰고 싶던 문구를 적어 내리며 애정하는 것들을 담아냈다. 깜빠뉴와 고양이, 이소라를 좋아하는 나. 작가 소개는 담백했다. 완벽한 자기소개란 없을 테지만 내가 만족하니 되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많은 이들 앞에서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박혜경입니다.' 소개할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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