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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경 Oct 29. 2024

낮잠 자는 백수, 어때요?

불면증 환자에게 퇴사 처방은 명약입니다






 밤낮이 바뀌었다. 퇴사한 지 3주 만에 찾아온 이상 현상이다. 지난주 순천 여행을 준비하면서 잠드는 시간이 차츰 늦어진 게 시작이었다. 평소에도 이른 시간에 잠드는 편은 아니었으나 출근을 위해 억지로 눈을 붙이고는 했었다. 회사 다닐 때는 늦어도 두 시에는 자려고 노력했다. 탈 직장인이 되면서 출근 압박이 사라졌고 수면 시계가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 일찍 잠을 청해야 한다는 압박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잠드는 시간이 두시에서 세시, 세시에서 네시로 늦어지더니 급기야 어제는 둥그렇게 밝아진 하늘을 보고서 잠이 들었다. 새벽 여섯 시, 아빠가 분주하게 출근 준비하시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다. '와, 나 이렇게 막 살아도 되는 걸까.' 생각하면서.


 밤낮이 바뀔 때면 '잠을 자지 않고 24시간 깨어있다가 밤에 다시 자면 되잖아.'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생각만으로 그친 것은 아니고, 실천에도 옮겼다. 젊은 시절의 나는 밤을 꼴딱 새우고 학교도 가고, 직장도 가고, 여행도 다녔지만 지금은 아니다. 단순히 바이오리듬을 다시 맞추면 된다며 밤을 새우기에 내 육신은 너무도 쇠약해졌다. 밤을 새우면 관절들이 '주인님, 제발 재워주세요.' 골골송을 부른다. 이에 화답하기 위해 아침 일곱 시라도 눈을 붙이려 보송한 이불을 끌어 덮는다.






 아침 여덟 시가 되면 어김없이 알람이 울린다. 핸드폰 알람 시계보다 정확한 설여사님의 모닝콜이다.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이제 일어날 시간이에요."을 외치는 엄마 덕에 꾸역꾸역 눈을 뜬다. '엄마. 나 오늘도 두 시간 잤어요.' 말하고 싶지만 풀 파워로 날아들 등짝 스매싱이 두려워 반쯤 뜬 눈으로 사경을 헤맨다. 새벽에 잠드는 걸 지독히 싫어하는 엄마에게 차마 고해성사하지 못하고 뭉그적 거린다. 두 시간의 잠으로는 회복될 턱이 없는 육신이 골골댄다.


 '이제 더 이상 스무 살이 아니에요, 주인님.'

 관절들이 외치는 소리에 억지로라도 기지개를 켜보지만 어림도 없다. 뿌드득, 어깨 관절이며 고관절이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이다. 유튜브 아침 스트레칭 영상을 대충 따라 하다 영어 공부를 한답시고 영화 '인턴'을 자막 없이 보다 보면 아침이 저만치 사라져 있다. 좀비처럼 집안을 돌아다니다 침대에 눕기를 반복, 그러다 점심 먹고 잠드는 말도 안 되는 일상 속에 머무른다.






 "나 요즘 신생아 같아."


 농담처럼 건넨 말이지만 얕은 진심도 섞여있었다. 내 인생에 불쑥 침범한 '낮잠'이라는 녀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불면증에 시달리던 내가 낮잠을 잔다고? 나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변화였다. 이전 회사를 함께 다닐 때부터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걸 알고 있던 친구도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안양천 길을 나란히 산책하는 중에도 참을 수 없이 하품이 쏟아져 나왔다.


 "너 하품하는 거 처음 본다?"

 "진짜 이상해. 이번 주에는 심지어 낮잠도 잤다니까."

 "퇴사하니까 마음이 편해서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낮에라도 자니까 안심이다."


 오랜 시간 봐오면서도 잠이 온다는 둥 하품이 난다는 둥의 말을 들은 바 없는 친구는 마냥 신기해했다. 요즘은 잘 자느냐고 묻는 게 J의 안부 인사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함께 떠난 동유럽 여행에서도 나흘을 꼬박 밤을 새우고 프라하로 넘어가는 오일째 새벽녘에 겨우 잠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잠을 자기는커녕 영화 네 편을 연달아 보았던 나였으니 이상해 보일만도 했다. 낮에라도 잠을 잔다니 다행이라며 웃어 보이는 J에게 못내 감사했다.






 지난주 이른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잔 뒤에 일과를 시작했다. 하루가 몽땅해졌다. 오전 시간을 활용해야 하루가 길게 느껴질 터인데 모든 스케줄이 오후에 모여있었다. 오후와 저녁 시간을 활용해 도서관도 가야 하고 피아노도 가야 하고 운동도 해야 했다. 영어 공부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었다. 친구라도 만날 참이면 하루가 짧아도 너무 짧다 싶었다. 피아노 연습을 마치고 돌아오면 열한 시 반, 집에서의 하루가 다시 시작되었다. 방안을 복작거리며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새벽녘이었다.


 대체 뭘 하느라 잠을 안 자는 거냐고 묻는다면 조금 부끄러워진다. 유튜브도 보고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영화도 본다. 특별할 것 없이 지나치게 일상적인 일들을 한다. 그러다 보면 솜사탕처럼 사라져 있다. 무언가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새벽 시간의 흐름은 유독 빠르다. 대낮에 보는 것보다 밤에 보는 유튜브 쇼츠가 더 재미있고 새벽에 읽는 책이 몰입이 잘 된다고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일까. 아니면 백수의 변명일까.


내 인생에 찾아온 낮잠이라는 낯선 손님 덕에 짧은 한 주를 보냈다. 낮잠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삶이라니. 지나치게 게으른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경계하다가도 그럼 또 어떠냐고 스스로에 되묻는다. 잠시라도 마음 편하게 지내게 해주는 건 괜찮지 않느냐며 내 안의 천사와 악마가 다툰다. 게으름뱅이는 질색이라며 역정 내는 천사와 스스로 질릴 때까지 늘어져보라는 마음 편한 악마의 싸움이다. 언제나 빡빡한 천사의 승리였지만 이번 주는 좀 늦어져도 괜찮겠지 싶어 낮잠으로 한주를 채웠다.





 11월을 나흘 앞둔 아침이었다. 이번 주는 낮잠 없는 일주일을 살아내기로 다짐한지라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항동의 푸른 수목원에서 왜가리 뷰를 만끽하며 나무 데크를 거닐었다. 실은 왜가리가 맞는지 긴가민가하고 있었는데 '와, 왜가리다!'하고 체험학습 온 아이들이 외치는 통에 확신했다. 왜가리에 달려들 듯 소리를 내지르지만 적정한 거리를 두고 우두커니 서있는 아이들을 피해 장미 정원을 걸었다. 10월에 활짝 핀 장미라니. 이상 기온으로 지구가 아파한다는 등의 말을 나누며 한 시간쯤 걸었다. 말수가 급격히 줄어든 친구의 낯빛을 보니 커피 수혈이 시급해 보였다. 가벼운 산보를 끝내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푸른 수목원의 초록 뷰가 기가 막히고 커피값은 더 기가 막힌 평상 카페였다.


 바질과 토마토, 크림치즈를 품은 고소한 베이글 한 입, 개운한 캐모마일 티 한 모금, 장강명 작가의 에세이 '책 이게 뭐라고'를 읽는 오전. 직장인이라면 감히 꿈꿀 수 없는 월요일의 풍경이었다. 간밤에 네 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그럭저럭 개운했다. 낮잠과 바꾼 아침 풍경이 얼마나 갈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썩 괜찮았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낮잠'이라는 녀석과 조우할 수 있고, 내 안의 온순한 악마는 기꺼이 그에게 시간을 내어줄 테니. 심지어 네가 원하면 무한대로 낮 시간을 내어줄 수 있다고 속삭이겠지. 잠이라는 녀석이 지겨워 질만큼 자버린 후에 보송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며 중얼거렸다.


 초록으로 무장한 커다란 통창, 카페 평상에 엎드려 한가로이 에세이를 읽어 내리는 우리. 청량한 오렌지빛 햇살이 눈가를 간지럽혔다. 찬 바람 냄새가 났지만 영원히 지속될 여름의 끝자락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베이글에 박혀있던 썬드라이 토마토가 와작, 씹히자 입꼬리가 웃음을 머금은 채 씰룩거렸다. 여유로운 여름 휴가의 맛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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