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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혜경 Sep 23. 2024

어쩌다, 퇴사




나의 퇴사 사유는 언제나 건강이었다. 


직장 생활이 끝날 때마다 병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첫 퇴사는 복숭아뼈에 금이 가서였고, 두 번째 퇴사는 수술이 필요해서였다. 복숭아뼈는 퇴사를 위한 핑계였지만 실제로도 두 달을 꼼짝없이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얼큰하게 취한 회식 자리에서 도망치려다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복숭아뼈가 와자작 부러졌다.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지만 다리에 길게 상처가 남으면 흉하니 세 달만 참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네 달 가까이 깁스를 하고 그 해 여름을 보냈다. 깁스를 제거한 날 마주한 왼쪽 다리는 종아리 근육이 빠져 볼품없이 앙상했다. 


깁스가 아니어도 다른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퇴사는 필연이었다. 오죽하면 '네가 퇴사를 못하고 머뭇거리니까 그 회사 그만두라고 다쳤나 보다' 엄마가 말씀하실 정도였다. 인턴 후 첫 회사라 애증이 크기도 했고, 다시 구직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퇴사를 미루고 미루다 결국 건강 이슈로 비자발적 퇴사자가 되었다. 







두 번째 퇴사도 건강 문제였다. 엄마가 아픈 곳은 죄다 빼다 박은 엄마 주니어인 나는 20대 초반부터 꾸준히 아팠다. 20대에만 두 번의 수술을 받았고, 이후 끝없는 통증과 싸우다 두 번째 퇴사를 결정했다. 물론 회사에서 주는 스트레스를 무시할 수 없어 떠난 것이기도 했다. 모자란 학벌에 콤플렉스가 많아 야간 대학을 병행하던 이사는 나만 보면 으르렁거렸다. 고등학교 졸업한 후에 입사한 첫 회사에서 이사까지 된 케이스였는데, 틈만 나면 이사실로 불러 잔소리를 했다.


원피스를 입으면 원피스를 입어서, 반바지를 입으면 반바지를 입어서, 티셔츠를 입으면 티셔츠를 입었다고 혼이 났다. 규모가 작은 IT 회사라 반팔에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남자 직원들이 즐비했음에도 복장 지적을 받는 건 나의 몫이었다. '여자는 이러면 안 된다'는 말로 나를 가두었다. 모든 대화의 마지막은 '모두 너를 위한 말이야.'라는 마법의 문장으로 끝이 났다.





나는 이사보다 한참 어린 직원이었다. 이사는 마흔을 훌쩍 넘긴 사람이었고, 우리는 띠동갑 넘는 나이 차이가 났다. 입사한 지 세 달쯤 되었을 때였다. '우리 제제는 남자를 조심해야 돼. 고객사에서 밥 먹자고 하면 거절하렴. 혼자 거절하기 힘들면 내 핑계 대고 절대 안 된다고 말해.' 고객사가 신입인 나한테 밥을 먹자고 할 이유도 없거니와 내근직인 나랑 밥을 먹자고 얘기할 기회가 있나 싶어 갸우뚱했다. 그게 하찮은 가스라이팅의 시작일 줄은 몰랐다. 


'내가 너라면 그렇게 안 살았을 텐데' 이사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대학을 못 간 게 한이었다던 이사는 야간대학을 진학한 후로도 콤플렉스를 드러냈다. '내가 다 우리 제제를 생각해서 하는 말인데'로 시작되는 일방적인 대화. 서울 사대문 안의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나는 이사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지냈다. '외모, 학벌, 키 뭐 하나 빠지는 거 없는 애가 왜 그러고 사니'라든가 '옷은 그게 뭐니. 돈 벌어서 꼭 백화점에서 캐시미어를 사 입어.' 등의 말이었다.  


5년의 지겨운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게 된 것도 결국 건강 이슈였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몰랐던 나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영업팀, 개발팀, 사업관리팀까지 친한 동료들과 일주일에 서너 번 술을 마셨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날들이 이어졌다. 안 그래도 약한 몸에 알코올을 퍼부으니 몸이 버틸 재간이 없었다. 결국 크게 탈이 났고 퇴사 엔딩을 맞았다.






세 번째 퇴사 이유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또 건강에 발목을 잡혔다. 퇴사 일정을 서두르게 된 것은 전공의 파업 때문이다. 지난달 전공의 문제로 정상적인 수술 진행이 어렵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한 달 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예정되어 있던 수술이 기약 없이 미뤄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정을 담당하시는 간호사 분과 다시 연락해 보았지만 역시나였다. 전공의 이슈는 끝나지 않았고, 담당 선생님이 지정하는 응급 수술만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진행된다고 했다. 


수술이 무기한 연기된 덕분에 다른 대학 병원을 부지런히 알아봐야 하는 처지였다. 퇴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난제였다. 지난주 친구에게 소개받은 병원은 10월 말이 되어서야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수술은 진료 후 세 달까지 걸릴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을 접었다. 퇴사 전 미리 예약해 둔 중앙대병원에서 루프린 주사를 맞고 채혈을 하고 돌아왔다. 다음 달 초 CT 예약도 잡았다. 2주 뒤 CT 결과를 보고 수술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나에게는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하지만 괜찮다. 많은 이들의 축복 속에 기분 좋은 퇴사를 맞이했고 컨디션도 꽤 좋아졌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날 것이고 건강도 되찾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하나씩 이뤄가고자 한다. 다사다난했던 사회생활을 뒤로 하고 삶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려는 것뿐이다.


퇴사는 내게 새로운 시작이다. 이제 꿈꿔온 삶을 이뤄낼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오래도록 꿈꿨던 글 쓰는 삶에 한 발자국 다가와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진심으로 이 길을 걸어갈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나의 재능과 잠재력을 믿고 스스로를 존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 한다. 회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행복한 삶을 영위해 나갈 나 자신을 믿는다. 에세이스트로서 살아갈 나의 두 번째 인생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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