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을 하는 주말은 일절 약속을 잡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일정이다. 좋은 사람들과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시간. 내게는 한달 중 가장 행복한 날이다. 그래서인지 모임만 가면 수다쟁이가 된다. 책 이야기를 하고 있노라면 얼굴이 환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혈색이 달라진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주목받는 것을 즐기지 않지만 책 이야기를 할 때 만큼은 다르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 대화를 주도한다. 내가 말하는 걸 이리도 좋아하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다. 내 안의 말주머니는 책 이야기만 담고 있나 보다.
독서모임 M은 2020년부터 시작된 인연이다.
기존 독서모임과 병행해도 괜찮을 무겁지 않은 모임을 원했고 그에 적합했다. 아는 동생 E가 진행하는 모임이라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E가 친척 언니 둘과 소소하게 책을 읽으려 시작한 모임이지만 지금은 제법 많은 인원이 참여한다. 여섯명에서 열명 정도로 인원이 들쑥날쑥하지만 고정 멤버들이 있어 부담은 없다. 설사 셋만 모이더라도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맛집 투어까지 깔끔하게 끝낼 수 있을 정도로 사이가 돈독하다.
모임은 문학과 비문학을 격월로 진행된다. 7월 'SF 소설 읽기'를 주제로 문학 책을 읽었다면 8월에는 '브랜드의 역사'를 주제로 비문학 책을 읽는 식이다. 매달 주제에 맞는 후보군의 책을 추천받고 투표를 통해 3권을 선정한다. 선정된 3권의 책 중에 본인이 원하는 책을 읽고 온다. 설사 본인이 원하는 주제가 아니더라도 3권 중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쯤은 있을테니 골라 읽고 오는 재미도 있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3권 모두 읽어가려 노력한다.
모임은 주말 1시부터 3시까지 두시간 진행된다.
특별한 형식 없이 자유롭게 대화를 주고 받는다. 책이 어떠했는지 돌아가면서 이야기 나눈 후에 책에서 좋았던 구절이나 본인이 생각하는 바에 대해 이야기한다. 책에서 작가에 대한 이야기로, 최근 이슈가 되는 책으로 그러다 엉뚱한 곳으로 대화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4년 넘게 진행된 모임이다보니 친밀감이 높은 편이라 책과 무관한 이야기들이 오가기도 한다. 대화가 삼천포로 빠지면 모임장이 등판한다.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더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말해주는 사람들.
다소 엉뚱한 의견이 나와도 반박하지 않고 색다른 의견이라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러다보니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를 주고 받게 된다. 통통 튀다 못해 주제를 벗어난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 적당히 끝맺음 해주는 모임장도 있으니. 이보다 완벽한 독서모임이 있을까 싶다. 물론 절대적으로 내 기준에서다.
만화 타임이라고 생각해 개인적으로 챙겨갔던 오늘의 네코무라씨와 차돌떡볶이:)
첫 오프라인 모임은 2020년 5월 망원 한강공원이었다.
5월의 작가는 '마스다 미리'로 에세이를 읽는 달이었다. 5월의 작가 후보가 워낙 쟁쟁했기 때문에 한 명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얄궃게도 그 한 명이 당첨되었다. 네. 마스다미리요. 당시 은교 다시 읽기에 빠져있던 나의 추천은 박범신 작가였고 그 외에도 어마어마한 작가진이 대기하고 있었다. 프란츠 카프카, 폴 오스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 누가 되어도 재미있겠다 기대했는데 웬걸. 후보가 너무 많아 사다리 타기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고 허망하게도 5월의 작가는 '마스다 미리'로 선정되었다.
'마스다 미리'는 일본의 만화가로 현재 에세이스트로도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다. 2012년 <마스다 미리의 여자 만화 시리즈>로 30대 여성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일상의 소소함을 담아내는 만화가로 호평을 받고 있지만, 당시 지나치게 가벼워 다시 읽고 싶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만화가로의 마스다 미리는 매력적인 작가일 수 있으나 에세이스트로는 실격이라는 평이 줄을 이었던 기억이 난다.
늦게나마 양심 고백을 하자면 마스다 미리가 불호라 국밥 먹듯이 후루룩 때려 읽고 간지라 책에 대한 기억이 없다. 기억에 남는 건 망원 한강공원에서 먹었던 차돌 떡볶이와 후라이드 치킨. 독서모임을 끝내고 따끈한 햇살 아래서 먹는 차돌 떡볶이가 왜 그리도 맛있던지 그 후로도 한참이나 차돌 떡볶이 앓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청순한 원피스를 입고 아빠 다리로 앉아 떡볶이를 집어먹던 그날의 내 모습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잊기 힘든 맛있는 추억으로 남았다.
지금으로부터 4년이 지난 2028년 9월 즈음에는 이번 달에 읽었던 '거인의 노트'를 추억하고 있지 않을까. 아, 물론 추억 거리가 책이 아니라 이수 통닭의 야외 테라스에서 야무지게 치킨을 뜯는 기억일 수도 있다. 순살 치킨 네마리를 잡아 먹고 배불러서 일어날 기운도 없다며 8시까지 수다를 이어간 우리들. 2024년 9월의 여름밤은 또 맛있는 추억으로 남겠지. 매월 첫째주 주말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오늘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