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아이가 아이들의 말을 듣는 어른이 되기까지
폭력은 언제나 설명보다 먼저 도착했다
손바닥이 퉁퉁 부어올랐던 이유는 엄마가 바빴기 때문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학부모회 회의에 우리 반에서는 남자 회장의 어머니와 나의 어머니, 두 분 모두 참석하지 못하셨다. 회장의 어머니는 워킹맘이셨고, 우리 엄마는 아이 셋을 키우며 늘 집안일에 쫓기셨다. 아마 엄마는 지금 그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실 것이다.
5학년 담임 선생님은 그 학부모회 업무를 담당하고 계셨다. 당신이 맡은 일인데 우리 반에서만 단 한 명의 학부모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선생님은 이성을 잃은 듯했다. “우리 반만 아무도 안 오셨다. 담임인 내가 담당하는 일인데!” 날카로운 외침이 교실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그리고는 나와 남자 회장은 죄인처럼 교실 앞으로 불려 나갔다.
선생님의 손에 쥐어진 회초리가 공기를 가르는 서늘한 소리가 들렸다. 다섯 대였는지, 열 대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매가 손바닥에 닿을 때마다 뜨거운 열감이 온몸으로 퍼졌고, 손가락 끝은 감각이 없을 정도로 팽팽하게 부어올랐다. 그 체벌에는 교육적인 훈계가 아닌, 조절되지 못한 개인의 분노와 감정이 눅진하게 실려 있었다.
나는 내가 잘못해서 맞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억울했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것이 열두 살의 내가 지킬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곁에 선 남자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말 대신 붉게 달아오른 서로의 손바닥을 곁눈질하며 그 짧은 순간, 억울함이라는 이름의 연대를 나누었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나는 말할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한 아이였다. 억울하다고 말할 수도, 엄마가 왜 오지 못했는지 설명할 수도 없었다. 잘못이 없다는 사실조차 증명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어른의 일방적인 판단 앞에 서서 조절되지 못한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맞아서 아픈 손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그 막막한 무력감이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나는 종종 주인공 동호를 떠올린다. 동호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아니었다. 그는 단지 그 자리에 있었고, 떠나지 못했으며, 가장 약한 존재였다는 이유로 거대한 폭력 앞에 놓였다. 존엄이 훼손되는 방식은 그때의 나와 닮아 있었다. 폭력은 언제나 설명보다 먼저 도착했고, 아이는 자신의 입장을 말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반면 『완득이』 속 완득이는 달랐다. 담임 동주 선생님은 완득이를 ‘지도해야 할 문제아’로 규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투박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내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말해도 안전했다. 완득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설명해도 되는 어른을 만난 것이다. 그 작은 차이가 아이의 세계를 구원했다.
세월이 흘러, 나는 그때의 선생님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체벌이 금지된 시대이기도 하지만, 학생 지도와 무관한 사적인 감정을 아이에게 쏟아붓는 일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서른 해가 넘게 지났음에도 그날의 기억이 선명한 것은, 매의 통증 때문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했다는 감각이 낙인처럼 남았기 때문이다.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교단에 섰을 때 다짐했다. 적어도 내가 맡은 반 아이들에게는 자기 이야기를 할 기회를 박탈하지는 않겠다고. 잘잘못을 떠나 각자의 입장은 어떤지, 무슨 생각인 건지 직접 본인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순간은 주겠다고 말이다.
몇 해전 매번 지각하는 우리 반 아이를 불러 세운 적이 있었다. 다그치기 이전에 나는 아이에게 먼저 물었다. "무슨 사정이 있었니?" 아이는 머뭇거리다 최근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입원해 계신 병원에 문병을 자주 갔던 이야기를 꺼냈다. 만약 내가 묻지 않았다면 이 아이는 그저 '게으른 학생'으로 남았을 것이다.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할 기회를 얻은 아이의 눈빛은 억울함 대신 안도감으로 반짝였다.
그날의 나는 선생님 앞에서 침묵해야 했지만, 교사가 된 나는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왜 그랬는지, 어떤 마음이었는지.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인격 존중의 시작이라 믿는다.
맞아서 부어올랐던 손바닥은 며칠 만에 가라앉았지만, 마음의 상처는 30년을 돌아 이제야 아문다. 적어도 내가 머무는 교실에서는, 그 누구의 이야기도 지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초등교사에세이 #아이의목소리 #소년이온다 #완득이 #인격존중 #자전적에세이#아웃사이더지만괜찮아 #체벌의기억 #성장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