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소리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올겨울은 그 어느 해보다 유달리 추워 자전거 족인 나의 얼굴이 바람에 다 탈 정도였다. 오랜만에 들른 미용실에서 "얼굴이 왜 이렇게 검게 탔느냐"는 물음을 들었을 때 비로소 거울 속 내 낯빛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차가운 바람에 탄 살빛은 뜨거운 햇빛에 탄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얼굴은 생기를 잃은 채 거무튀튀해지고, 수분을 뺏긴 살갗은 허옇게 일어나 푸석거린다. 그 혹독했던 겨울의 감각이 여전히 선명한데, 불과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우리 집 거실 통창 너머로 커다란 백목련 나무가 눈부시게 하얀 꽃을 피워 올렸다. 시린 계절을 통과한 끝에 마주한 뜻밖의 화사함이다.
10대에는 시속 10km로, 20대에는 20km로 흐른다는 시간의 속도가 40대인 요즘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 기분이다. 해가 지면 불어오는 바람 끝에 여전히 냉기가 묻어 있어 몸을 움츠리게 되지만, 이제는 완연한 봄이 왔음을 부인할 길이 없다.
원래대로라면 새 학년, 새 학기의 긴장감 속에 학교로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아이들을 픽업하며 주부로서 ‘제2의 출근’을 시작해야 했을 터다. 하지만 올해는 마지막 육아 휴직을 선택했고, 덕분에 마음 한구석에 작은 쉼표 하나를 찍어본다. 아이들도, 선생님도, 학부모들도 저마다의 긴장과 피로 사이를 위태롭게 걷는 3월. 그 소란한 한 달도 어느새 벌써 절반이 지났다.
거실 통창 앞에 나란히 앉아 목련을 바라보던 오후, 동생 준이가 툭 던지듯 물었다.
"엄마, 저 꽃은 왜 잎사귀도 없는데 꽃부터 나와요? 춥지도 않나 봐."
옆에서 책을 보던 형 윤이가 의젓한 목소리로 대답을 보탰다.
"준아, 목련처럼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 걸 '선화후엽' 식물이라고 해. 쟤네는 겨울 내내 보들보들한 털옷 입고 잘 버텼잖아. 이제 봄이라 더워서 겉옷부터 벗고 꽃을 보여주는 거야."
아이들의 무구하면서도 명쾌한 대화를 들으며 나는 목련의 하얀 꽃잎을 가만히 응시했다. 지난겨울, 시린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 페달을 밟던 나의 거칠어진 살결이 목련의 보드라운 꽃잎과 묘하게 겹쳐 보였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저 나무도, 그리고 새 학기라는 낯선 계절을 맞이해 저마다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윤이와 준이도 각자의 겨울을 꿋꿋이 지나온 것이다.
서서히 다가오지만 봄이 오는 것이 확실한 것처럼, 긴장 속에서 3월을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도 그 긴장을 따스하게 녹일 완연한 봄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우리 집 창가에 찾아온 저 백목련처럼, 서두르지 않아도 결국은 피어날 우리 모두의 봄을 마음 다해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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