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일을 시작했다. 평일에는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를 통학했고, 주말에는 투잡을 뛰며 편의점 아르바이트에 매진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끝날 줄 모르는 과제를 하루 종일 붙잡느라 새벽까지 깨어있는 날이 많았다. 계속 반복되는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에 지치고야 말았다. 황홀했던 마카오의 밤이 마음속에서 자꾸만 일렁였다. 2층 버스에 앉아 내다보았던 홍콩의 야경과 화려하게 빛나는 마카오의 호텔을 보고는 탄성을 질렀던 순간이 아른거렸다.
일을 마치고 잠깐 주변 공원에서 산책을 했던 적이 있다. 땅바닥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비행기는 지금 어디로 향하는 걸까. 저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가득 차있을까. 나도 며칠 전에 저 비행기 안에 있었는데. 한 번 여행을 다녀오면 괜찮아질 줄 알았지만 홍콩의 여운은 힘이 셌다. 통장 잔고를 확인해 보니 남은 돈은 40만 원 언저리. 평소와 다를 게 없던 날, 어느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대만의 허우통이라는 작은 고양이 마을을 소개하는 영상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 위를 날고 있는 비행기를 보고 있으니 그 영상이 새록 떠올랐다. 나는 결국 30만 원을 내고 대만행 티켓을 끊었다. 허우통이라는 고양이 마을이 만들어준 인연이었다.
남은 기간은 한 달. 시중에 남은 돈은 10만 원. 다음 달에 받는 월급 40만 원. 호텔 가격을 찾아봤는데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골몰하던 중 번뜩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바로 호스텔을 이용하는 거다. 언젠가 낯선 이와 거리낌 없이 대화하며 친분을 쌓는 일을 해보고 싶기도 했고, 시끄러운 소음에 예민한 성격도 아니라서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1박에 2만 원 밖에 안 하는 합리적인 가격이 나를 끌리게 만들었다.
또다시 떠나는구나. 여전히 입국 하루 전의 설렘은 익숙하지가 않다. 여행은 참 신기하다. 늘 답답하게 여겨왔던 지하철 안과 버스 안이 다르게 보이고 막 그런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람들의 지친 표정과 쉴 새 없이 빵빵 울리는 경적에 곤두설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안도하게 했다. 나는 내일 오전 7시 50분 비행기를 타고 대만으로 떠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벽 일찍 출발해야 한다. 얼마 만에 새벽 공항인가. 차디찬 새벽 공기를 맡으며 고요한 거리를 걸으면서 캐리어를 끌면 그보다 더 행복한 건 없을 것 같다.
파란 하늘 위에 솜사탕처럼 두둥실 떠있는 구름, 의미를 도통 모르겠는 낯선 언어, 거리에 잘 가꾸어진 짙은 초록색 나무, 한 손으로 강한 햇빛을 가리며 길을 찾고 있는 관광객, 공사 준비로 바빠 보이는 인부들. 지금 나는 대만에 있다. 천천히 걷다가 시간이 촉박해지면 폴짝 뛰기 시작하는 신호등 초록불도, 로보카처럼 생긴 노란색 택시도, 안전 헬맷을 쓰고 도로에서 질주하는 수많은 오토바이 운전자들. 아, 심장이 짜릿한 이 느낌. 나 다시 하늘을 날아 이곳에 왔구나. 한 달 동안 멈춰있던 심장의 박동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이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예감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