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육아는 부부 사이를 멀어지게도 가까워지게도 한다
네엣, 득녀로 100점이 되다
# 1. 육아는 부부 사이를 멀어지게도 가까워지게도 한다
옛말에 딸을 낳고 아들을 낳으면 200점, 아들을 낳고 딸을 낳으면 100점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에 따르면 우리 부부는 100점이었다. 첫째가 딸이면 살림 밑천이라는 말과 연결되는 것 같다. 잘 살지 못하던 시절 농사일에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첫째 딸은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고, 밑으로 동생들까지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첫째 딸은 자식으로서 대접은 받지 못하고 식모로서 역할만 했다. 그러니 첫째는 아들보다 딸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런 시절에 아들과 딸의 태어난 순서로 점수를 매긴 거 같다.
양가 어른들은 농담처럼 요즘 시대에는 아들을 먼저 낳고 딸을 낳는 100점이 훨씬 낫다고 하셨다. 그 말에는 아직까지 남아를 선호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첫째를 아들을 낳았으니 둘째는 아들인지 딸인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아마도 둘 다 딸을 낳았으면 어떤 상황이 되었을지 충분히 상상이 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상상이었다. 어쨌든 우리 부부는 자식의 성별로 인한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다. 이제 아이를 그만 가져도 문제 될 게 전혀 없었다.
문제는 퇴원 후 아이를 안고 집으로 오면서 시작되었다. 첫째는 이제 걸어 다니고 말도 하니까 갓난아기인 둘째만 잘 보면 될 줄 알았다. 첫째를 2년간 키우면서 나름 육아 스킬도 늘었기에 크게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하나와 둘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 아내가 둘째를 돌보고 내가 첫째를 돌보면 되는 간단한 문제로 생각했다. 그러나 첫째도 아직 엄마의 사랑이 필요한 세 살배기 아가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한 생각이었다. 아들은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놓지 않았다. 첫째까지 아내에게 매달리니 갓난아기를 주로 케어하는 아내는 점점 지쳐갔다. 첫째가 엄마를 찾을 때마다 아내의 따가운 시선은 나에게로 왔고 아들을 아내에게서 떼어내야 했다. 첫째에게 엄마에게서 강제로 떼어내는 아빠가 달갑게 보일 리가 없었다. 아들에게 나는 그저 악당이었을 것이다. 둘째의 육아가 시작도 안 했는데 첫째의 반란으로 처음부터 힘에 겨웠다.
아직도 어리기만 한 첫째는 일찍이 부모님의 손길에서 멀어졌다. 아내와 나의 품에는 늘 둘째가 안겨 있었고 바라보는 시선이 둘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자신의 사랑을 모조리 빼앗아 간 동생은 첫째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적일 수밖에 없었다. 혈육의 동생을 인식하지 못하는 첫째에게 둘째는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잠시 둘째에게서 자리를 비우면 아들은 여지없이 딸에게 달려들어 발로 지그시 밟거나 얼굴을 꼬집었다. 자식 교육이 초보였던 우리 부부는 그 모습에 놀라 아들에게 엄하게 벌을 줬다. 첫째만 있었다면 아직도 아기처럼 대우받고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을 텐데 둘째가 생기고 큰 애 취급을 받았다. 그럴수록 아들은 엄마에 대한 집착이 심해졌고 떼를 쓰는 아이로 점점 변해갔다.
부모의 사랑을 모조리 뺏기고 억압과 강요만 당한 첫째는 계속 삐뚤어졌고 점점 케어하기 힘든 아이로 자랐다. 갓난아이를 보살피면서 동시에 말썽꾸러기 아들을 케어하려니 아내는 하루종일 감당이 안 되었다. 첫째를 어린이집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특활 활동비를 제외하고는 나라에서 지원해 주니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은 경제적으로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아내를 생각하면 어린이집을 보내는 게 맞는데 막상 보내려니 아이가 불쌍했다. 멀쩡했던 자신의 지위가 동생이 태어나고 한 순간에 몰락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아들의 기분은 나라를 잃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부부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기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아들을 미운 오리 새끼처럼 대했다. 우리가 힘들어도 아이를 좀 더 보듬어 주고 사랑으로 안았어야 했는데 일찍 감치 부모 사랑을 빼앗긴 아들의 반항은 길게 이어졌다.
어린이집에서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오전에만 어린이집에 있고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가 되면 아이 둘을 케어하면서 아내는 점점 지쳐갔다. 내가 퇴근할 때 즈음 아내는 이미 녹다운되어 쓰러져 있었다. 집안은 온통 장난감과 음식물이 나뒹굴었고 싱크대는 설거지 거리가 잔뜩 쌓여있었다. 아이의 기저귀를 만져보니 한참을 갈아주지 않아 묵직했다. 암묵적으로 육아 바통 터치가 이루어졌고 회사일로 지쳐 있었지만 다시 집안일과 육아를 시작해야 했다. 큰 방에 누워 있는 아내는 신랑이 들어왔는데 인사는커녕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이를 보다가 지친 거지 신랑이 미운 건 아니었을 텐데 아는 척도 안 하니 서운했다. 둘의 사이가 좋다가도 육아가 끼어들면 관계는 소원해졌다.
결혼을 하면 겪어야 되는 힘든 고비가 바로 육아다. 부부의 사랑으로 태어난 새 생명의 신비로움과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를 안으며 행복감에 젖기도 하지만 육아의 현실로 들어오면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애 볼래 나가서 일할래?"라고 물으면 누구나 나가서 일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만큼 육아는 어려운 일이다. 부부 사이가 좋았다가도 육아를 시작하면서 나빠지기도 한다. 서로의 마음을 읽어주면 싸우지 않았겠지만 서로의 입장만을 생각하는 게 사람인지라 서로 감정이 상하는 날이 많았다. 아내는 밤낮이 바뀐 아이와 새벽 동안 사투를 하며 거의 잠을 자지 못한 상태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아침도 거르며 첫째가 어린이집에 간 사이 눈을 붙여보지만 둘째 딸아이의 울음으로 그마저 자지 못했다. 힘든 아내를 배려해서 새벽에 아내가 깨면 같이 일어나 분유도 타고 기저귀도 갈아주었다. 잠이 부족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날은 2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기도 했다. 둘 중 누가 더 힘들다고 따지면서 싸울 형편이 아니었다.
부부가 만나는 시간은 이미 둘 다 녹초가 된 시간이었다. 육체가 지쳐있으니 정신이 멀쩡할 리가 없다. 살짝만 건드려도 날카로운 반응이 나왔다. 둘 사이에 점점 말은 사라지고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육아와 관련된 일을 분담하면서 취침시간만 기다렸다. "아이가 잠들어 있을 때 가장 예쁘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기운이 하나도 없다가도 둘째 딸이 누워서 옹알이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게 피곤이 싹 풀렸다. 잔뜩 찌푸린 얼굴이 펴지면서 아내와 나는 아이 옆에 찰싹 붙어서 "오 그랬어, 누가 그랬어"라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힘들어도 이래서 아이를 낳는 건가. 한 순간에 모든 게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아내와 나 사이의 싸늘한 냉기는 순식간에 뜨거운 온기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