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외벌이 가정에 대출은 위험하다
세엣, 득남으로 담보가 생겼다.
# 5. 외벌이 가정에 대출은 위험하다
생애 첫 집을 사면서 대출을 받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부모님의 도움으로 대출 없이 집을 사는 부부도 있겠지만 사회 초년생 월급쟁이가 결혼을 해서 월급만으로 집사기가 매우 힘든 나라이다. 대개의 경우 부동산 투자 개념으로 집을 살 때 레버리지로 대출을 이용한다. 미래 가치를 보고 대출을 받은 거라 대출도 자산으로 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대출이 자산이 되지 못했다. 미래 가치를 본 것도 아니고 단지 햇빛이 잘 들기만 하면 됐기에 그중에 가장 싼 집을 찾아서 산 것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집도 그랬다. 미래 가치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샀을 때 가격만이라도 유지해 줬으면 했다.
국내 경제 상황은 우리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인플레이션을 잡고자 대출금리를 계속 올렸다. 그러더니 대출 이율이 8%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외벌이에 높지 않은 연봉으로 대출이자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만약에 양가에서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았다면 심각한 상황까지 갈 수 있었다. 쌀이며 김치며 각종 반찬들, 아이 기저귀에 분유값까지 부모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겨우 겨우 대출을 갚을 수 있었다.
대출금리가 올라가면 아파트 가격은 떨어진다는 원리를 그 당시 깨우쳤다.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본 것은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대출 이자를 내는 것도 괴로운데 집값까지 떨어지니 삶 전체가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친구들만 해도 신도시다 서울이다 다들 버젓한 아파트를 구매해서 불안한 마음 없이 사는 것처럼 보였다. 왜 우리에게만 이런 시련을 주는지 세상을 원망했다. 총각 때 타던 차를 결혼하고도 바꾸지 못했다. 30만 킬로가 넘은 차라 장거리를 갈 때면 늘 불안했다. 친구들은 차도 잘 바꾸고 해외여행도 잘 다니는데 왜 우리만 이 모양일까. 좁은 원룸에서 웅크리고 살던 총각 때의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들이 다시 슬금슬금 올라왔다.
시작부터 단추를 잘 못 꿴 상태로 어쩌면 바닥도 아닌 바닥 밑에서 시작하는 것 같았다. 처음 아파트를 잘못 샀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다른 곳으로 빨리 이사 가면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도 욕심이라 생각될 만큼 대출 이율이 치솟았고 이 아파트에 잡혀 있는 대출금이라도 빨리 갚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월급이 들어오고 대출 이자가 빠져나가면 맨 앞자라 숫자가 바뀌었기 때문에 대출은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남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마트만 가면 분위기가 냉랭했다. 대출 이자에 여기저기 나갈 돈을 생각하니 카트에 물건이 쌓일 때마다 나의 불만이 커졌다. 그러나 아내는 불필요한 건 허투루 산 적도 없고 물건을 살 때는 꼭 단가를 보고 가장 싼 것을 샀다. 품질을 고려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아내였다. 그런 것도 모르고 매번 살 때마다 눈치를 줬다. 결혼 후부터 줄곧 돈관리를 해온 아내를 믿지 못했던 것이다. 많이 가져다주고 의심하면 당당하기라도 하지 쥐꼬리만 한 월급을 갖다주고 온갖 생색과 구두쇠 짓은 다했다. 워낙 없는 살림에 대출까지 있으니 돈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돈이 결부되지 않으면 부부는 싸울 일이 없었다.
어느 날 저녁 아들을 재우고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우리 집 경제 상황에 대해 물었다. 대출금리가 올랐는데도 불구하고 예전과 같이 소비하고 있어서 살림살이가 너무 궁금했다. 이런 얘기는 조심히 꺼낸다고 해도 오해를 사기 마련이다. 아내의 냉랭한 말투로 짐작이 되었고 아내는 못 믿을 거면 나보고 직접 관리하라고 했다. 점점 싸움으로 번질 거 같아서 일단은 얘기를 끝까지 들었다. 적은 월급에도 대출이자를 갚으면서 대출이자만큼 적금을 넣고 있었다. 대충 어림잡아도 생활비로 쓸 돈이 없었다. 그렇게 아끼고 저축까지 하는 아내를 믿지 못하고 의심했으니 아내가 화날만했다. 알고 봤더니 나에게 얘기하지 않은 처녀 때 모아둔 돈과 연금보험을 해지하고 가계 경제에 보탰던 것이다. 나는 갑자기 할 말이 사라졌다. 결혼 전까지 숨기다 결국 결혼 이후에 들통난 마이너스 5백만 원을 살림에 보탰던 나이기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석고대죄하는 마음으로 아내 몰래 치킨을 시켰다. 우리 부부는 단순해서 먹을 거 앞에서 순한 양이 된다. 언제나 치킨과 맥주만 있으면 부부 사이는 더없이 좋았다. 그 약점을 이용했다. 치킨과 맥주를 상에 차려서 아내에게 다가갔다. 아내는 잔뜩 찌푸린 얼굴이었다가 삐죽삐죽 거리 더니 갑자기 미소를 짓는다. "마트에서도 그렇고 가계부 보자고 해서도 미안해. 앞으로 당신 믿을게. 없는 살림에도 알뜰하게 살아줘서 고마워."라고 말하고 아내에게 닭다리를 건네주었다. 우리 부부는 연애기간이 짧아서 그런지 둘만의 이런 시간이 더 소중했다. 다행히 아들 녀석도 깨지 않았고 우리의 치맥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돈 걱정 없이 이런 날들만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치맥의 밤이 있은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두 번째 천사가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