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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첫째가 아들이어야 했다.

세엣, 득남으로 담보가 생겼다.

by 플래너앤라이터



# 4. 첫째가 아들이어야 했다.



아내는 어릴 적 개명을 했다. 아내의 이름은 1992년도에 방영한 드라마 "아들과 딸"에 나온 딸의 이름과 유사했다. 김희애 씨가 역할을 맡은 딸의 이름은 "이후남", 최수종 씨는 아들 역할을 맡았는데 "이귀남"이었다. 이후남이라는 이름은 딸이 먼저 태어나서 다음에는 아들이 태어나게 해 달라는 마음이 담긴 이름이다. 남아 선호 사상이 팽배했던 시절 딸이 먼저 태어날 경우 이름부터 천대받았다. 장모님은 그 시절 첫째를 딸을 낳았고 둘째인 아내까지 딸을 낳았다. 아내의 할아버지인 시아버지께서 아들을 원하는 간절한 마음에 아내의 이름을 어떻게 지었을지 너무나 뻔했다.


딸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지은게 속상하셨던지 장인어른은 아내의 이름을 어릴 적에 예쁘게 바꿔주셨다. 아내가 마지막 딸이었으면 그나마 해피엔딩이었을 수도 있을 텐데 뒤에 또 딸이 태어났다. 처제 역시 어릴 적 이름은 최악의 이름일 수밖에 없었다. 아들을 연신 외쳐 되는 시댁에서 연달아 딸을 셋이나 낳은 장모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들을 낳는 게 어디 사람 뜻대로 되는 일인가. 지금은 인기 없는 아들이 그 당시에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아들을 낳지 못한 며느리는 소박맞고 쫓겨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처음 아내의 옛 이름을 들었을 때는 웃음이 났지만 이름에 담긴 스토리를 듣고 나서는 웃음기가 싹 가셨다. 장모님이 왜 그렇게 아들을 외쳐 되시는지 알 것 같았다. 시집간 아내가 딸을 낳아 자신처럼 힘들게 살까 봐 노심초사하신 거였다. 다행히 아내는 첫째를 아들을 낳았다. 아들을 임신했다는 소식에 시어머니인 우리 어머니만큼 장모님도 좋아하셨다. 첫째를 아들을 낳아서 양가 부모님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첫째인 아들은 부모님들의 큰 담보가 되었고 다음에 태어날 아이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은 게 되었다.


아내의 출산 당일 장모님은 펑펑 우셨다. 복합적인 감정이 폭발했던 거 같다. 과거 아들을 낳지 못해 힘들어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을 것이고, 시집간 딸이 떡하니 아들을 낳아 걱정을 잊게 해 준 기쁨의 눈물이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딸이 힘들게 출산한 것에 대한 감동일지도 모른다. 장모님 눈물에는 핍박받던 며느리의 설움이 비쳤다.


아들이 태어나고 아내의 위상은 우상향 했다. 아들은 아내에게도 큰 담보가 되었다. 내심 아들을 바라는 마음을 내비치는 우리 부모님도 더 이상 아들 얘기를 입밖에 꺼내지 않게 되었다. 시댁에서도 아들을 낳은 아내는 어깨를 당당히 필 수 있었다. 아들이 태어난 덕분에 양가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도 많이 따랐다. 집을 사느라 많은 대출을 받은 우리 부부에게 아들은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아들을 바란 것도 아니었고 아들이 없으면 안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아들이 태어나서 모든 게 평온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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