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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둠 속 신혼집에도 사랑은 자랄 수 있을까?

세엣, 득남으로 담보가 생겼다.

by 플래너앤라이터



# 2. 어둠 속 신혼집에도 사랑은 자랄 수 있을까?



신랑 측에서 집을 구했으니 신부 측에서 살림살이를 채울 차례이다. 결혼은 두 사람의 사랑만으로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것이라고 상상해 온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회적 분위기나 집안의 분위기에 휩쓸려 남들이 결혼할 때 한 것들은 다 해야만 했다. 어찌 보면 결혼준비는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경쟁하 듯했다. 살림살이를 알아보는 신부 측도 집을 구하는 신랑 측만큼 힘든 과정이었다. 가구며, 가전이며, 사소한 세간살이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결혼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 주었고, 때로는 불합리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결혼 준비가 이렇게 힘든 걸 알았다면 결혼을 다시 생각해 봤을 정도였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평생을 함께 하는 약속을 하는데 뭐가 이리 복잡하단 말인가. 결혼 역시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대학부터 취업에 이르기까지 내 의지보다 가족들과 사회적 분위기에 끌려 다녔는데, 어엿한 가장이 되는 상황에서도 어설프게 남아있는 유교 문화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인간의 삶은 자신의 생각 보다 다른 외부적인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또렷하게 알게 되었다. 태어나기는 각자 다르게 태어났지만 살다 보면 누구나 그저 그런 비슷한 삶을 살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과연 12평짜리 아파트에 이 많은 가전, 가구가 다 들어갈까?"라는 걱정이 될 정도로 신부 측에서 준비를 했다. 딸이 시집을 가는데 어떻게든 많이 해주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러나 내가 마련한 집이 점점 초라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간만 나면 아파트 평면도 위에 구매한 제품들을 배치시켜 보곤 했다. 테트리스에 블록을 쌓는 것처럼 이리저리 방향과 위치를 바꿔가며 힘들게 최상의 포지션을 찾았다. 얼마 후 잔금을 치르고 빈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잔금 날에 맞춰 가구와 가전이 배달되었고, 내가 구상한 대로 척척 배치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생겼다. 분명히 실측까지 진행하고 구매했던 장롱이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분명히 부동산 사장님도 10자짜리 장롱은 충분히 들어간다고 했고, 내 눈으로 직접 실측까지 했던 부분인데 장롱의 일부를 파손하지 않으면 절대 들어가지 않았다. 자리를 잡지 못한 장롱으로 피앙세는 계속 울상이었다. 들어가지도 않는 자리에 욱여넣겠다고 새로 산 장롱을 부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장롱을 무를 수도 없었다.


급박한 상황에서 슈퍼맨이 등장하 듯 어디선가 휘앙세의 아버님이 나타나셨다. 건축업을 하시던 아버님은 모든 걸 손수 해결하시는 맥가이버 같은 분이셨다. 장롱이 들어갈 자리는 이 집에서 베란다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시고, 바로 실측을 하고 장롱을 이동시키기 시작했다. 원래 놓으려는 곳에 안착시키지는 못했지만 진퇴양난의 상황을 모면할 수는 있었다. 그렇게 장롱은 베란다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세세한 살림들을 정리해 나갔다. 가전과 가구가 들어오고 나니 보기 싫은 것들도 조금은 감춰지고 뭔가 집다운 집이 되었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며 만족했다. 하지만 불완전한 것 뒤에 불편함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신혼여행을 돌아와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우리만의 아늑한 신혼집으로 돌아왔다. 눈만 마주쳐도 불꽃이 튀는 신혼이지 않은가. 거기에 편히 쉴 수 있는 안락한 집도 있고,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라는 걱정이 생길 정도였다. 그렇다. 삶은 행복만을 계속 주지 않는다. 반대로 불행만을 계속 주지도 않는다. 곰팡이 냄새나는 원룸방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던 청년이 이렇게 아리따운 서울 아가씨를 만나 같은 침대에 누워 있는 건 정말 꿈만 같은 일이다. 살면서 이토록 행복한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꿈만 같던 행복은 길지 않아 산산조각났다. 평일 낮에는 둘 다 출근을 하다 보니 저녁에만 집에 있었다. 주말을 맞아 늦잠을 자고 자정쯤 일어났다. 주위가 어두워 저녁인 줄 알았다. 날씨가 흐린가 보다 했지만 베란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한 줄기 햇살은 밝았다. 혹시나 해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밖은 햇살이 쨍쨍한 화창한 날이었다.


세상은 온통 밝았지만 우리의 신혼집만 어둠 속에 있었다. 범인은 장롱이었다. 장롱이 우리의 신혼을 어둡게 하고 있었다. 원래도 북서향인 아파트라 해가 잘 들지 않지만 장롱이 그나마 비치는 햇살을 원천 차단하고 있었다. 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생활하기 힘들었다. 우리는 억지로라도 좋은 면을 보려고 노력했다. "신혼은 오히려 어두운 게 좋지." "매 순간 뜨거운 밤을 보낼 수 있잖아." 그러나 이런 말로도 위로되지 않았다. 이후 우리는 외출이 잦아졌다. 주말에는 가능하면 눈이 부신 햇살을 찾아 야외로 이동했다. 어둠이 이렇게 싫었던 적이 있었을까. 점점 집이 싫어졌다.


어둠의 신혼 생활에도 해 뜰 날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 집에 살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채 안되어 우리에게 행복이 찾아왔다. 우리 사이에 사랑의 증거가 나타났고 어두운 집안은 잠시 잊혔다. 둘은 소중한 존재에 집중하며 행복을 찾아갔다. 문제는 아내가 출산 휴가를 내고 혼자 집에 있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잊혔던 어둠은 슬글슬금 그림자를 비쳤고 급기야 아내에게 옮겨갔다. 임신을 하면 자연스럽게 우울감이 생기기도 하는데 거기다 어둠까지 더해져 아내는 이내 심한 우울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일하고 있는 시간에도 전화가 자주 왔고 힘들다 죽겠다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쏟아냈다.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반차와 연차를 써가며 아내에게 옮겨가는 어둠의 번짐을 어떻게든 막아야 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아내는 도저히 버티지 못할 지경까지 되었다.


눈이 돈다는 말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성적으로 보이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이 집을 구한 장모님, 그리고 그걸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계약한 나를 원망하고 미워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나도 점점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집을 알아봐야 한다. 그것도 아주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집을 알아봐야 한다. 머릿속에는 햇살 밖에 없었다. 주말에는 온종일 부동산을 찾아 헤맸다. 출장을 가다가도 부동산을 들렸고 내가 가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햇살 가득한 집을 눈에 불을 켜고 찾고 있었다. 내가 가진 돈으로 갈 수 있는 지역은 수도권 외곽에 도시인지 농촌인지 구별이 안 되는 그런 지역 밖에 없었다. 주변 환경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집안에 햇살만 잘 들어오면 괜찮았다.


아내와 우연하게 찾아간 동네, 그리고 어느 아파트, 우리는 둘 다 느낌이 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햇살이 주방 끝까지 스며들어오고 있었다. 다른 건 보지도 않고 부동산으로 향했다. "바로 계약하시죠." 금액을 깎는 시도도 궁금한 걸 물어보지도 않고 마치 묻지 마 투자처럼 그렇게 계약을 했다. 여기서 더 심각한 실수를 하게 된다. 아이도 곧 태어날 거고 오래 살 거란 생각에 집을 매매로 계약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신혼부부는 그렇게 무모하게 첫 집을 장만하게 됐다. 부동산을 자산 증식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와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남향집이면 충분했다. 이 집에 살면 햇살만큼 밝은 미래가 보장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밝음과 어두움은 서로 교차되는 법. 조만간 어둠의 그림자가 다시 고개를 쳐들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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