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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래너앤라이터 Nov 12. 2024

# 7. 신혼여행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해외여행

두울, 서울 아가씨를 만나다.


# 7. 신혼여행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해외여행


아내와 나는 결혼식의 주인공임에도 둘을 위한 비용은 최대한 아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챙기는 그거 하나는 참 잘 맞았다. 하객들에게 대접할 고급진 식사와 주차공간이 넓은 예식장을 찾아다녔고, 다른 부분에서도 하객들에게 욕을 먹지 않기 위해 세세하게 노력했다. 정작 우리 둘만의 소중한 것들을 챙기려고 할 때 우리는 이미 지쳐 있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라 돈 걱정을 하며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될 만한 것들은 가장 저렴한 것들로 채워졌다. 하물며 인생에 한 번뿐인 신혼여행까지 저렴했다. 누구나 다 간다는 풀빌라 허니문 여행을 가지 못했다. 일반 관광 코스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 당시 우리는 "살면서 좋은데 가면 되지."라고 위로했지만, 18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여행이다.


저렴한 여행답게 대만 항공의 비행기였고, 이코노미 클래스에서도 맨 앞자리였다. 스튜어디스들이 업무 보는 공간과 거의 맞닿아 있었는데 잠들만하면 그녀들의 말소리에 깼었다. 결혼 준비기간에 안 싸웠던 커플도 신혼여행 가서 싸운다는 징크스를 깨고 싶었다. 둘은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썼고 서로를 최대한 배려하려고 했다. 둘 다 이미 심신은 지칠 만큼 지친 상태여서 많은 대화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덜컹거리는 비행기와 현란한 중국어에 한 번 더 지쳐서 신혼여행지로 가는 내내 둘은 아무 말 없이 창 밖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시간은 늦은 밤이었다. 일반 관광객들과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했다. 콘도에 도착한 우리는 짐을 풀자마자 첫날밤을 맞게 되었다.


꿈에 그리던 신혼여행, 그리고 첫날밤은 녹초가 된 우리에게 의무감만 지우는 그런 밤이었다. 둘은 암묵적 합의하에 손만 잡고 잠들었다. 우리의 첫날밤은 만리장성은커녕 모래성도 쌓지 못했다. 다음날 일정부터 타이트했다. 일반 여행의 스케줄은 피곤이 풀리지 않은 우리에게 큰 부담이었다. 아침부터 버스를 타고 여기저기 관광지와 쇼핑센터를 다니다 저녁에는 환락가로 나가 이상한(?) 쇼를 보거나 한국 식당에서 삼겹살을 먹었다. 둘은 점점 지쳐갔다. 같이 온 여행자들은 즐거워 보였으나 우리는 즐겁지 않았다. 그냥 쉬고 싶었다. 둘은 가이드에게 얘기하고 다음날 숙소에서 쉬었다. 힘들어도 가이드를 따라다녔어야 했었다. 피곤이 가실 만큼 자고 일어난 우리는 싸울 힘을 기르고 있었나 보다. 신혼여행의 징크스를 깨지 못하고 우리는 크게 싸우고 말았다.


그동안 서로에게 참아왔던 울분과 서운함이 한꺼번에 터지며 감정의 거름망을 거치지 않고 바로 상대에게 전달했다. 극에 달한 싸움은 결국 아내가 울음을 터트리며 끝나게 되었다. 둘은 끼니도 거르며 각자 다른 방에서 한참을 있었다. 신혼여행에서 이혼한 커플이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밤을 지새우면 남남이 될지도 몰랐다. 불길한 예감을 감지한 나는 조용히 아내가 있는 방으로 갔다. 그녀는 발코니에 기대어 넋을 놓고 있었다.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 똑같은 자세를 취하고는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싫거나 미웠으면 아내는 그 자리를 피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가만히 있다는 것은 아내도 나의 사과를 기다리는 것이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용서를 빌었다. "내가 많이 미안해! 신혼여행까지 와서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하고 울리기나 하고 정말 못났다. 정말 미안해."


아내는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며 내 눈을 쳐다봤다. 안아달라는 신호로 느껴져 나는 아내를 살포시 가슴에 안았다. 안기는 아내의 저항값은 0이었다. 아내도 나를 용서하고 있었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르는 자국이 내 가슴에 번지고 있었다. 내 눈에는 그 자국이 하트 모양으로 보였다.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간 첫날밤을 아무래도 오늘밤에 치르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저물어 가는 석양을 바라보며 우리는 다시 한번 사랑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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