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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래너앤라이터 Nov 19. 2024

# 1. 전 재산이 마이너스 500백만 원인 새신랑

세엣, 득남으로 담보가 생겼다



# 1. 전 재산이 마이너스 500백만 원인 새신랑




결혼할 때 남자는 집을 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사회 전반에서 사라지지 않은 시기였다. 나에게 신혼집을 구하는 것은 결혼 준비에서 가장 큰 부담이었다. 부모님 도움을 최대로 받아도 회사 근교에서 빌라 전세 밖에 구할 수 없었다. 살고 있던 원룸 보증금과 부모님이 조금 모아둔 돈을 합치니 다행히 회사 근처에 방 2개짜리 빌라 전세는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연식이 오래되어 내부는 손 볼 때가 한 두 군데가 아니었고 대충 둘러봐도 멀쩡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더군다나 예전에 지은 빌라여서 그런지 주차대수도 세대수만큼 확보되어 있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이사를 가야 할 만큼 학교도 멀리 떨어져 있었고 마트나 병원 역시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가진 돈으로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아파트는 후보에 올릴 수 없었다. 빌라나 오피스텔 위주로 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휘앙세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가 빌라는 살기 불편하고 얼마 못 가 이사를 갈 수 있어서 아파트를 알아보라고 하셔. 오빠가 회사 일로 바쁘면 엄마가 대신해서 집을 알아봐 주신다고 하는데 오빠 생각은 어때?" 나는 물론 좋았다. 그러나 흔쾌히 받아도 되는 제안인지는 잘 몰랐다. 집은 남자가 구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노력이 필요했다. 잠시 동안 머뭇거리다 "어머님께서 해주신다면 너무 감사하지."라고 바로 응했다. 


며칠 뒤 여자친구 어머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네가 가용할 수 있는 돈이 얼마지?" 드디어 자산을 드러내야 하는 시점이 왔다. 엄밀히 따지면 자산은 없다. 월급은 여태껏 소비로 다 빠져나갔고 살고 있던 원룸 보증금은 부모님 돈이었다. 마이너스 통장에 있는 마이너스 오백만 원이 재산이라면 재산이었다. 어머님의 전화에 순간 식은땀이 흐르고 어찌 대답해야 할지 막막했다. 어머님이 집을 알아봐 주신다니 알려는 드려야 하나 초라한 금액에 사실을 말하기가 힘들었다. "5천만 원이 채 안됩니다." 수화기 너머로 한 숨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실제로 들리는 게 아니라 상상 속의 한숨이었다.


"알겠네." 어머님의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지금까지 한 푼도 모으지 못한 것도 한심한데 내 통장 잔액이 마이너스 오백만 원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니 더욱 한심했다. 아무리 부동산에 일가견이 있어도 그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은 빌라나 오피스텔뿐인데, 어머님이 어떤 판단을 하실지 궁금했다. 며칠 뒤 어머님께 다시 전화가 왔다. "집을 같이 보러 가야 되는데 잠시 나올 수 있는가?" 회사에서 눈치를 보던 시기라 중간에 나가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급하게 반차를 내고 어머님께 달려갔다. 내가 도착한 곳은 오래된 주공아파트 상가에 있는 부동산 사무소였다. 그녀의 어머님은 빌라와 오피스텔은 신혼집 후보에서 아예 빼셨다. 아파트가 좋은 건 알고 있지만 가진 돈으로는 언감생심이었다.


집을 보러 간 곳은 회사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있는 대단지 아파트였다. 복도식에 낡은 아파트였지만 아파트라는 것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내가 가진 돈으로 아파트가 가능한가. 나는 왜 이런 사실을 몰랐던가. 의문을 가진채 보고자 하는 아파트로 들어갔다. 복도식 아파트 1층 끝집이었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만 복도식 아파트는 가장 끝집이 가장 춥고, 1층은 프라이버시에 열악했다. 하지만 빌라가 아니라 아파트이지 않는가. 1층에다가 끝집이라고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눈에 집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12평형이고 방 2개와 조그만 주방과 화장실이 다인 집이었다. 작은 방은 누우면 발이 나올 정도로 작았다.


크기가 작다고 회피하기에는 가진 돈이 너무 적었다. 어머님은 빌라보다 낫지 않냐며 급매 전세로 나온 거니 바로 계약하자고 하셨다. 둘이 살기에 충분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혹시 가격이 얼마예요?" "7천만 원" 내가 가진 돈에서 2천만 원이 부족했다. 당장 2천만 원을 구할 때도 없고 대출을 받아야 되는 상황이었다. "제가 가진 돈을 초과해서 조금 힘들 거 같습니다. 그냥 빌라에서 시작해서 돈 벌면 아파트로 이사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님은 살짝 미소를 지으시면서, "아이고 이 사람아. 자네가 가진 돈으로 빌라도 제대로 된 걸 구할 수 없네. 내가 2천만 원 보태줄 테니 살면서 천천히 갚게나."라며 내 등을 툭툭 쳐주셨다.


나는 곧장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계약금을 이체했다. 이로서 가장 무거운 짐이던 신혼집을 해결하게 됐다. 여자 친구 어머님 덕분에 결혼할 남자가 해야 될 일을 수월하게 진행한 터라 결혼 전부터 약간 신세를 진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앞으로 많이 벌어서 갚겠다는 마음과 이렇게 도와주셨으니 더욱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결혼도 신혼집을 구하는 것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순식간에 이뤄졌다. 그러나 모든 게 급하면 체한다고 신혼집을 너무 빨리 편하게 구한 탓인지 우리의 신혼 생활은 그리 밝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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