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세상 물정을 몰라야 할 수 있는 결혼
두울, 서울 아가씨를 만나다.
# 6. 세상 물정을 몰라야 할 수 있는 결혼
그녀의 부모님을 뵙고 난 후 우리의 관계는 이상하게 흘러갔다. 아직 둘은 알아가는 단계인데 결혼이 연애를 앞서고 있었다. 싫지는 않았지만 너무 빠르다는 생각은 버리기 힘들었다. 사귄 지 석 달만에 양가 부모님께 결혼 승낙을 받았다. 부모님의 권유와 설득에 의한 청혼이었을지언정 우리 둘의 의사가 달랐다면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어머님이 잘 아는 점집에서 결혼일자를 받았고 뭐가 그리 급했던지 그중 제일 빠른 날짜로 진행되었다. 나는 30세, 아내는 26세 궁합도 안 본다는 4살 차이 점집에서 본 궁합도 뻔했다. 결혼이 둘의 결정인지 부모님들의 결정인지 헷갈렸다. 혼돈 속에서도 둘의 사랑은 확인되었기에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겼다.
결혼식은 연애 6개월 차가 되는 날이었다. 혼자 살고 있던 원룸의 전세 만기가 곧 다가왔다.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새로운 집을 구할 수가 없었다. 고민하던 차에 그녀 부모님이 결혼 전까지 그녀 집에서 살라고 하셨다. 그녀의 집은 2층 단독주택으로 옥탑방이 딸려 있었다. 결혼 전까지 나는 그 옥탑방에 살게 되었다. 옥탑방은 잠만 잘 수 있고 화장실이나 식사는 모두 2층 그녀 가족의 생활공간을 이용해야 했다. 봄이 끝나고 여름의 기운이 찾아오는 계절이었다. 낮 동안 달궈진 옥탑방은 에어컨이 없었기에 그야말로 찜질방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2층에서 씻고 옥탑방으로 올라오면 얼마못가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옥탑방 생활이 많이 불편했지만 그녀와 매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을 때쯤 그녀는 쟁반에 과일과 시원한 맥주를 들고 올라왔다. 옥상 평상에 걸터앉아 둘은 매일밤 사랑의 대화를 나눴다. 가끔은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하고 옥상은 그야말로 우리만의 연애 공간이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신혼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즐기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급하게 잡힌 결혼식은 현실로 다가왔다. 예식장 예약부터 본격적인 결혼 준비를 시작하면서 옥상의 낭만은 점점 사라졌다. 많은 커플들이 그렇듯 결혼 준비부터 삐그덕 거렸다. 연애의 시간은 짧았고 우리 둘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
결혼은 현실이라고 했던가! 누구나 처음인 결혼을 준비하는 것은 어렵다. 자라온 환경이 다른 만큼 생각의 차이가 컸다. 가장 힘들었던 건 부모님들의 예전 풍습을 답습하는 데 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조그만 나라 안에서도 문화적 차이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고, 아직도 조선시대 유교문화가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요즘은 결혼 문화도 많이 바뀐 게 느껴진다. 그러나 내가 결혼할 당시만 해도 함이니, 이바지 음식이니 하는 겉치레의 풍습이 존재했다. 평소와 달리 완강한 부모님들의 뜻을 바꾸는 것은 불가했다. 우리 둘은 부모님의 입장 차이로 인해 감정이 상하고 있었다. 서로 배려하는 모습이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억지로 참아주는 듯했다. 몇 번의 말다툼이 있었고 이성을 붙잡지 않으면 이대로 끝난다는 것을 둘은 눈치챘었다.
언제나 그렇듯 시간이 모든 것을 만들어 주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의 첫날, 우리를 축복하 듯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며 결혼식이 거행됐다. 하객들은 더위에 비까지 내려 상의는 땀에, 하의는 비에 젖은 채 예식장으로 들어왔다. "결혼 날짜 한 번 잘 잡았다."라는 친구들의 말에 섭섭하기까지 했다. 나라고 봄이나 가을 중 화창한 날씨에 멋지게 결혼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혼전 임신도 아닌데 우린 왜 쫓기듯 결혼해야 하는 걸까. 우리의 결혼은 부모님의 뜻대로 부모님의 그늘 안에서 모든 게 이루어졌다. 우리는 그저 때가 되면 결혼해야 한다는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착한 아들, 딸이었다. 30세의 나이에도 부모님이 내 삶에 깊이 관여하고 계셨고, 나는 완전히 독립하지 못했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신랑 입장"이라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힘찬 발걸음과 어색한 표정으로 주례 단상으로 걸어갔다. 20m 남짓 되는 거리가 왜 이리 길던지 한참을 걸었다. 이전까지는 내가 결혼한다는 것이 꼭 장난 같았다. 입장하는 동안 나는 이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그녀, 아니 아내의 남편이 된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지나간 과거와 앞으로의 미래가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갔다. 단지 몇 달 전만 해도 칙칙한 원룸 방 안에서 외로움을 끌어안고 인생을 한탄하던 못난 청춘이었는데 멋진 턱시도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삶은 한 가지만 주는 건 아닌게 분명하다. 고통과 시련을 주었다면 다음에는 반드시 행복과 즐거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