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최악의 부동산을 최고의 담보로 막다.
세엣, 득남으로 담보가 생겼다.
# 3. 최악의 부동산을 최고의 담보로 막다.
생애 첫 자가로 이사를 가는 날이었다. 8월의 찌는 듯한 무더위에 이사가 진행되었다. 아내는 출산을 두 달 앞두고 배가 제법 많이 나온 상태였다. 이삿짐센터를 이용한다고 해도 이삿날은 손이 많이 간다. 몸이 무거운 아내를 시킬 수 없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혼자 할 수밖에 없었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다 챙기려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여기저기 다니느라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이삿짐센터 직원들의 불친절에 짜증이 극에 달했다. 누군가가 이름만 불러도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아내와 나 사이에는 더운 날씨와는 반대로 냉랭한 기운이 흘렀다.
아내는 모든 게 못마땅한 듯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하나씩 바꾸고 있었다. 이삿짐 센터 직원들이 넣은 짐들을 모조리 꺼내 다시 정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 "이따위 집에서 계속 살 것도 아닌데 뭘 그리 꼼꼼하게 정리하는 거야? 몸도 무거우면서 그냥 대충 해." 내 말을 들은 아내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오기를 부리 듯 더 열심히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리 둘 사이는 일주일 전부터 암울한 상황이었다. 서로에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서로에게 불만을 가진채 대화가 단절된 상태로 지내왔다. 금슬 좋던 우리 부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리가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는 주말이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나 잔금을 치르고 인테리어 업체에서 수리가 시작되는 날이었다. 평일이라 연차를 내고 아내와 함께 부동산에서 마지막 계약 절차를 진행했다. 잔금을 처리하고 계약서와 각종 영수증을 들고 인테리어 업체 사장님을 만나러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소리 같은 굉음이 들리는 것이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공군 출신인 나는 소리만 들어도 느낌이 왔다. 이건 분명 여객기가 아니라 전투기 소리였다. 소리가 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정확히 전투기 2대가 나란히 하늘을 가르며 날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낮게 말이다.
아내는 전투기 굉음에 소스라치듯 놀라서 배를 움켜잡고 나에게 안겼다. 나도 많이 놀라 넋이 나간 상태였지만 순간 배 속에 아기가 떠올라 아내를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를 일단 차로 데려가 안정을 취하게 했다.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차 안에서 둘은 한참을 넋이 나가 있었다. 이번에는 연달아 여러 대의 전투기들이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하인 데다가 차 안에서 창문까지 닫고 있었는데 그 소리는 마치 전쟁터에서 폭격기들이 날아다니는 소리를 방불케 했다. 누군가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주변에 공군 비행장이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부동산에 물어보러 가자고 했다. 아무 소용없다고 소리쳐도 아내는 고집을 부렸다. 결국 차 안에서 아내는 오열하기 시작했다. 장롱으로 가려진 어두운 신혼집을 벗어나기 위해 햇볕이 잘 드는 집을 구한 것뿐인데 우리의 소박한 꿈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임신 우울증이 심했던 아내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하려고, 어려운 살림에 대출까지 받아서 집을 샀건만 굉음을 내는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동네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 둘 사이에는 일상의 대화마저도 끊겼다. 잘못을 따지자면 확인하지 않고 계약한 둘의 잘못이며 미워하려면 경솔한 우리의 행동을 미워해야 했다. 그러나 둘은 서로를 탓하며 미워하고 있었다. 집을 사서 이사를 가는 날은 원래 행복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나도 끔찍했다. 이삿날도 여전히 전투기들은 활개를 치고 있었다. 오히려 이사를 축하하는 비행처럼 더 많은 전투기들이 날아다녔다. 밖에서 이삿짐센터 직원과 대화 중에도 전투기가 뜨면 대화가 중단됐다. 집안에서 작은 짐들을 정리하던 아내는 전투기 소리가 들릴 때마다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이런 환경에서 갓난아이를 낳아 어떻게 키울지 앞날이 막막했다.
이삿짐이 집에 다 들어오고 아내와 둘 만 남게 됐다. 포장 이사라고 하지만 자리를 못 찾은 짐들은 며칠을 두고 정리해야 할 판이었다. 즐거워야 배도 고픈 법이라 점심시간이 이미 훌쩍 지난 시간이었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다. 내가 입맛이 없다고 만삭의 아내를 굶길 수는 없었다. 이삿날이면 으레 시켜 먹는 짜장면 두 그릇이 도착했다. 짜장면 하나를 비벼서 아내에게 건넸다. 배가 고팠던지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짜장면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한 젓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하기엔 거의 동시에 짜장면을 입에 문채 서로를 쳐다봤다. 복잡 미묘한 감정이 서로 교차되며 둘은 눈물을 흘렸다. 뻑뻑한 짜장면을 눈물 덕에 삼킬 수 있었다. 그러고는 아내 옆으로 다가가 아내 배를 어루만지며 속으로 다짐했다.
"우리에겐 그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이 있잖아. 집은 돈 벌어서 이사 가면 되니깐 우리 희망을 갖고 씩씩하게 살아보자. 이 상황 또한 우리가 살아야 될 삶이라면 당당히 살아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