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오래오래 생각하면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 작고 차가운 손, 사르르 미끄러져 내리는 아름답고 긴 머리카락, 부드럽고 둥그런 귓볼과 그 바로 아래 자그만 검은 점, 겨울이면 즐겨 있는 우아한 캐멀색 코트, 언제나 상대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묻는 버릇, 때로 떨리듯 울리는 목소리(꼭 찬 바람이 몰아치는 언덕 위에서 말을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미지들이 하나하나 모으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녀의 얼굴이 불쑥 떠오른다. 먼저 옆모습이 떠오른다. 아마도 나오코와 늘 나란히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맨 처음 떠올리는 것은 옆에서 본 얼굴이다. 그런 다음 그녀는 내 쪽으로 몸을 돌려서 방긋 웃고는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 말을 하며 내 눈을 지그시 들여다본다. 마치 맑은 시냇물 바닥을 재빠르게 가로지르는 작은 물고기의 그림자를 좇듯이. 그렇지만 나오코의 얼굴이 내 머릿속에서 떠오르기까지는 약간 시간이 걸린다. 세월이 흐를수록 그 시간은 점점 길어진다. 슬픈 일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처음에는 오 초면 충분했지만 그것이 십 초가 되고 삼십 초가 되고 일 분이 되었다. 마치 저녁나절의 그림자처럼 점점 길어진다. 그러다 이윽고 저녁 어스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 것이다. 그렇다. 내 기억은 나오코가 선 그 자리에서 확실히 멀어져 가고있다. 마치 내가 예전에 선 그 자리에서 확실히 멀어져 가듯이. 그리고 그 풍경만이, 10월의 초원만이 마치 영화에 나오는 상징적 장면처럼 거듭해서 뇌리에 떠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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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애(愛)와 슬플 애(哀)가 같은 음인 것은 왜일까. 옛 선조들의 무언가의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의 옆모습이 떠오른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단순히 그것 뿐인가, 싶지만 지금에서 나는 그렇다. 일단, 첫 번째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옆모습은 언제나 사랑스럽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지만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감명 깊고 인상 깊다. 그리고, 또, 그런 사람이 내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다만, 불행하진 않다. 그의 미소 짓는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하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다. 소중한 사람이 남기고 간 그 감정은 금방이라도 떠오르기에 슬프고, 사랑은 원래 그런 법이니까. 사랑은 너와 나의 이콜이다.
24.08.21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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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요루시카의 좌우맹과 녹황색사회의 사랑하는 사람을 플레이리스트에 넣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