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햇살에 기분 좋은 나른한 토요일 점심때였다.
'으악"
비명소리에 발 빠른 내가 먼저 방문을 열고 나가니 열려있는 봉칠이네 방 문 사이로 봉칠이 아빠가 비명을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봉칠이가 뛰쳐나와 나를 보고는 울면서 급하게 말했다.
"누나야! 아부지 발에 칼이...칼이.."
가까이 가서 보니 아저씨 발에 칼날이 박혀있었다.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엄마에게 쫓아갔다.
"엄마 엄마! 아저씨 발.. 발.. 에 칼이 꽃혀있어"
으앙 하고 봉칠이처럼 울며 달려온 나의 모습에 깜짝 놀란 데레사 씨는 버선발로 봉칠이네 방으로 달려갔다.
아저씨의 발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엄마는 응급차를 불렀다.
"점심 차리려고 야채 썰다가 칼을 놓쳤어요.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이고, 어째 칼이 떨어져도 발에 떨어져 꽂힐수가 있나."
아저씨는 봉칠이 엄마가 집을 나간 후 평소에도 많이 먹던 술을 매일같이 더 많이 마셨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해 크게 교통사고가 나서 한 달 넘게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합의금에 치료비에 빚만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크게 다쳐서 사지 멀쩡히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 했다.
오랜만에 돌아온 아저씨 모습을 보고 '걸어 다니는 해골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나는 아저씨가 연속으로 다치는 것을 보고 '아저씨는 분명히 벌을 받고 있는 거야' 하고 생각했다.
아저씨는 다치고 나서 술을 마시지 않았다.
몸도 약해져서 천천히 벽을 붙잡고 걸어야 했으니 마시지 못한 게 맞겠다. 술 때문에 사고가 났는데 만약 술을 또 마셨다면 그건 정말 구제불능에 죽어 마땅한 사람일 것이었다. 사고 덕분에 술을 끊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 해야 하나. 그렇게 좋아하던 술로 아내와 종갑이를 쫓아내고 결국 자신의 건강도 잃어버린 아저씨는 떨어지는 칼을 피하지 못할 만큼 약해져 있었다.
술을 마시고 시끄럽게 소리 지르던 아저씨가 사라지고 뼈만 남아 작고 힘없는 목소리로 "실수로 칼을 떨어뜨리는 바람에.."하고 실수한 아기 같은 아저씨가 되어 돌아왔다.
마치 다른 차원에 아저씨가 실수로 이 세계로 온 것처럼.
어른들이 아저씨와 함께 병원으로 간 후 봉칠이는 눈물을 멈추고 계속 말없이 서 있었다.
'봉칠아, 저 사람 너네 아빠 맞아?'하고 묻고 싶은 걸 참고 말없이 함께 서서 봉칠이를 바라봤다.
봉칠이는 저런 아빠가 살아 돌아와서 기쁠까?
약해진 아빠가 되어 돌아와서 좋을까 싫을까?
봉칠이를 보고 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강한 아빠도 약한 아빠도 말고 그냥 평범한 아빠가 그에게 있으면 좋았을 텐데..
"봉칠아! 아이스크림 먹을래?"
"응"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빨간 대문 밖 평상에 앉아 둘이서 아이스크림을 날름날름 먹으며 맑은 하늘에 하얀 구름 한 점을 바라보았다.
너의 인생이 언젠가는 저 하늘처럼 맑기를..
둘은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놀란 가슴을 달래며 간절히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