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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대문의 낡은 주택
05화
봉칠아 잘 가
by
고요한동산
Nov 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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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옹니야옹"
빨간 대문의 주택에 갓 태어난 손바닥만 한 자그마한 아기 고양이 식구가 생겼다.
봉칠이 아빠가 어딘가에서 하나 얻어왔다는데 그렇게 작은 고양이는 처음이라 온 동네 아이들이 봉칠이 집으로 몰려들었다.
"너~무 귀여워."
"아저씨 얘 이름 뭐라고 지을 거예요?"
봉칠이 동생이니까 봉갑이
종갑이 동생이니까 종칠이
봉칠이 종갑이 동생이니까
칠갑이
우리가 아기 고양이처럼 작고 작은 것에도 깔깔거리며 좋아했던 그때 빨간 대문 안에서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아무것도 모를 때의 맑고 순수한 웃음을 기억하라고 우리에게 장기기억의 뇌가 존재하는 것이다.
푸세식 화장실 두 칸
중 한 칸 바닥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멀쩡한 칸에서 휴지로 코를 막고 똥 싸려고 쭈그려 앉아 있는데 기다릴 수 없던 엄마가 나는 가벼우니까 옆칸으로 가라고 했다.
"엄마 나 똥통에 빠지면 어떡해?"
"너는 가벼워서 괜찮아."
엉덩이 깐 채 불안에 떨며 조심조심 옆칸으로 이동해서 바닥이 부서질까 봐 신속하게 싸고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난 가벼워서 괜찮았다. 다행히도 엄마 말이 맞았다.
변소는 생각보다 깊다. 깊고 깊은 어둠 속에 똥이 점점 차오르며 엉덩이에 닿을 때쯤 되면 똥차가 와서 똥을 퍼간다
그리고 비어있는 변소 아래는 캄캄한 어둠에 낭떠러지 같아 저 아래로 떨어지면 다시는 못 돌아올 거 같은 공포를 느끼게 되는데 오히려 차오르는 똥에 점점 안정감을 찾아가는 것이다.
"며칠 뒤에 화장실 공사 할 거야. 그때까지만 조심하자."
엄마가 말했다.
아! 변소는 안타깝게도 그 며칠을
못
넘겼다.
"으악!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우리는 비명소리에 문을 열고 소리 나는 곳으로 향했다.
나는 이번에도 빠른 발걸음으로 잽싸게 뛰어갔다.
"집에서는 좀 걸어 다녀라. 뭐 넓다고 그렇게 뛰어다녀?"
너무 뛰어다녀 혼이 난적도 있다.
아무튼 잽싸게 뛰어간 곳은 변소였는데 결국 변소 한 칸이 무너지고 빨간 대문 식구들이 싸놓은 똥 무덤에 빠져 누군가 허우적대고 있었는데 똥을 뒤집어써서 누군가 했더니 봉칠이 아부지였다.
"엄마, 봉칠이 아빠 똥통에 빠졌어!"
똥이 봉칠이 아부지를 감싸고 똥 냄새가 빨간 대문의 주택을 감쌌다.
봉칠이 아부지를 구출해야 했다. 똥차와 구급차가 같이 왔던가?
똥 묻은
아저씨를 엄마아빠가 꺼냈던가? 그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안에 사람들이 있던 시간이라 다행히도 아저씨는 똥무덤에서 구출되었다
아저씨가 뒤집어쓴 똥냄새는 정말 지독하고 아저씨 모습은 참혹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 살려'를 목도했다.
불이 났을 때 젖은 수건을 입에 대고 '사람 살려'를 외쳐야 한다라는 교육을 받긴 했었는데 똥통에 빠져 '사람 살려'를 외치는 경우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사람 살려'는 생존을 위해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오는 본능의 언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니, 안 깨진데 들어가야지. 왜 거기를 들어가서.."
"너무 급해서 깜빡했어요."
지옥을 맛본 아저씨 앞에서 크게 웃을 수가 없어 우리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어야 했다.
'나는 가벼워서 천만다행이야' 하고 진심으로 안도했다.
운도 지지리도 없는 불쌍한 아저씨.
온몸에 똥독이 올라 아저씨는 한동안 엄청 고생했고 아저씨는 씻어도 씻어도 계속해서 똥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는 그 독하고 냄새나는 똥을 늘 몸에 넣고 산다. 똥공장을 가지고 똥을 만들고 세상에 싸놓는다.
아저씨는 지옥의 순간이었겠지만 내 인생 통틀어서 가장 웃긴 일이라 평생 힘들 때마다 꺼낼 수 있는 명장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 일만 아니면 웃을 수 있는 얄팍함은 타고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고 좋아하는 것도
그
이유가
아니겠는가.
봉칠이 아부지는 나에게 희로애락의 어느 것 하나 빼먹지 않고 가르쳐주었다. 그는 재밌고 순수하고 착하고 약하고 잔인한 사람이었다.
사람은 모두 각자의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변명이 되지는 못한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누나 안녕!"
봉칠이 가 빨간 대문의 낡은 주택을 떠나게 되었다.
몸도 마음도 약해진 봉칠이 아부지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빨간 대문의 주택에 단칸방에 지불했던 보증금을 다 까먹고 월세를 못 낸 지도 1년이 넘었다고 했다.
"신세 많이 졌습니다.
덕분에.. 오랜 세월 잠자고 밥 먹었습니다" 꾸벅 인사를 하는 아저씨를 보니 힘없는 아저씨가 좀 안 돼
보였다.
"건강 찾아서 사람구실하고 살아야 되네. 봉칠이 한참 클 때니까 포기하지 말고 독하게 일어나게."
데레사 씨
는 아저씨에게 강해지라 말한다.
제발 강해지지도 약해지지도 말고 중간만 하기를..
봉칠이와 아저씨는 갈 곳이 없어 봉칠이 할머니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결국 멀쩡한 삼촌들처럼 아저씨도 고물상에 빌붙는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물상의 늪으로 빨려 들어갔다.
봉칠이 마저 고물상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다.
'
봉칠아. 여기 빨간 대문에 줄을 묶고 너 손목에
줄의 반대쪽 끝을 묶어. 절대로 고물상의 늪에 빠지지 마. 꼭 줄 잡고 빠져나와'
입밖으로는 말을 뱉지 못하고
봉칠이 손목을 슬며시
잡았다. 보이지 않는 줄을 묶듯이!
봉칠이와
서로 마주 보며 아무 말 없이 씩 웃는다.
아마 봉칠이는
표독한
마귀할멈 같은 할머니와 가난의 손으로 엉겨 붙는 삼촌들의 손아귀에서도 묵묵히 평범한 모습으로 평범하기 위해 자리를 지킬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결국은 평범함을 지키기 어려운 곳에서 평범함을 지켜내며 줄을 붙잡고 늪을 빠져나온 봉칠이가 얼마나 기특한지.
엄마에게서
전해 들은 봉칠이의 결혼소식은 최근에 일어난 어떤 일보다도 기쁨으로 다가왔다. 세상의 시작이 공평하지 않더라도 행복의 총량은 모두 동일하기를..
그래서
봉칠이의 다가올 앞날이 남들보다 더 행복하기를 바라본다. 아마도 봉칠이는 묵묵하게 가야 하는 길을 갈 것이다. 그는 삐뚤어지지 않을 수 있는 용기와 현명함을 가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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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빨간 대문의 낡은 주택
03
봉칠이와 종갑이
04
다른 차원에서 온 봉칠이 아부지
05
봉칠아 잘 가
06
그의 탄소 원소가 내게로 왔어
07
그의 탄소 원소가 내게로 왔어 2
빨간 대문의 낡은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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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시간과 잊힌 감정들을 찾아 글을 쓰는, 40대의 평범한 사람입니다.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순간 속에서, 그 틈새의 의미를 찾아 글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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