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탄소 원자야, "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은 아주 작은 알갱이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 알갱이들을 원자라고 하는데, 그중에 탄소라고 불리는 원자가 있어요.
탄소는 매우 중요한 화학 원소랍니다.
이 세상에 탄소가 없는 곳은 없죠
'바위, 시멘트, 의자, 갑각류의 껍질'.. 이 모든 것에 탄소가 들어 있어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식물, 동물, 심지어는 인간까지
이 세상 모든 생명제는 탄소로 만들어져 있어요.
아이와 잠들기 전에 그림책 《돌고 도는 탄소》를 읽었다.
생명체는 생명을 다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분해되어 세상에 흩어진다. 사람도 죽으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분해되어 몸을 구성하던 원자들이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사람은 죽는구나. 함께 하던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는 거구나'
이 첫 경험으로 생긴 죽음에 대한 인식을 아이와 읽은 그림책의 한 문장이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탄소로 시작된 생명이 흩어져 탄소가 되어 다시 여행을 한다.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여 다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책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잠든 아이의 볼에 뽀뽀를 하고 이불을 덮어준 뒤 거실로 나와 소파에 한참 앉아 있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이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은, 죽음으로 흩어진 그들의 탄소 원자가 내 곁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죽음에 대한 첫 경험은 빨간 대문의 맞은편 방에서 머물다 잠든 할아버지의 죽음이다.
우리가족은 관광버스를 빌려 동네사람들을 태우고 선산에 갔다. 일회용 용기에 담아내던 음식을 맛있게 먹고, 어린아이들은 묘 주위를 신나서 뛰어다녔다.
할아버지가 누워있던 관이 깊이 파낸 땅속으로 들어가던 장면을 기억한다.
아이와 읽은 그림책의 탄소 덕분에 사라졌던 할아버지가 마치 돌아온 것만 같이 느껴진다.
'그가 나와 함께 존재하고 있다.'
라고 생각하니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내게로 와 많은 기억들이 물밀듯 밀려와 나를 휘감는다.
할아버지와 냄비에다 해 먹던 달달한 달고나와 새로
나온 거라면서 사들고 온 쇠고기 라면 한박스가 생각난다.
엄마 몰래 부엌에서 할아버지 졸라서 해 먹던 맛난 음식들을
나는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
어떤 음식은 그 음식을 먹었던 그 순간의 맛과 냄새와 그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다시 느끼게한다.
이것도 그때 먹었던 음식에 있던 탄소 때문인가?
갑자기 탄소를 향한 집착이 시작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