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안으로 들어온 봄은 실망을 새긴 얼굴을 한 가현을 마주했다. 봄은 두려웠다. 마음을 보이는 사람에게 미움받는 일이 싫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봄의 말에 가현의 눈동자는 공터 같았다. 위로 받으려 왔는데, 상처 받은 거 같네요. 미안해요. 봄이씨 잘못도 아닌데. 먼저 가볼게요. 봄을 지나친 가현에게 쓴 풀 냄새가 났다. 그건 미술 작품에서 날 법한 흙냄새였다. 봄은 여기서 가현을 붙잡으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염없이 밀려오는 찬 공기가 심장을 뚫고 들어왔다. 어쩌면 봄은 과거의 자신을 마주했는지도 모른다.
봄에게 태현은 우상이었다. 집안에서 온갖 구박을 받아도 기죽을지언정 자신을 길을 걸었다. 봄은 부러웠다. 자신에게 있는 권력, 돈, 명예가 아무것도 아닌 거라는 걸 알려주는 신호탄 같았으니까. 그래서 태현처럼 되고 싶었다. 적어도 스스로 뭘 좋아하는지 알고는 살아야 하지 않을까 했는데. 꼭 그건 뒤늦게 찾아왔다. 종종 이런 얘기를 할아버지에게 털어놓으면 칵테일 하나를 내주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서야 알았다. 자신이 할아버지 바에서 가장 많이 웃었다는 것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답해주는 것. 그 답이 정답이 아니라도 상관없는 소중한 마음이라는 것. 그렇게 소중한 걸 잃고 난 후에 자신을 얻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가현을 잃을까. 새벽을 밀어내는 바람이 봄의 어깨를 밀어내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가현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저 비지니스 관계로 알고 있었던 둘이 아니었다. 더한 관계를 안고 있던 거구나. 가현은 씻지도 않고 침대에 엎드려 한참 생각을 했다. 봄이씨 잘못이 아닌데, 내가 왜 화가 난 걸까. 나는 어디로 가는 거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지친 밤이었다. 밤에 지쳐 가현은 눈을 감았다. 커튼 사이로 내려앉은 달빛이 찬란하다 못해 부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