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의 위치: 고전과 실천의 경계

교육으로 가는 역사학 내비게이션 에필로그

by 샤를마뉴

지금은 역사를 '응용'하는 시대라 본다. 역사가 여러 방면에서 응용되면서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TV와 유튜브에서는 역사를 소재로 한 콘텐츠가 흘러나오고, 역사를 주제로 만든 게임도 있으며, 디지털 기술과 접목하여 가상 박물관을 재현하는 등, 역사는 창작의 원천을 제공하는 것 같다. 응용된 역사가 곧 대중에게 친화적인 교육의 역할도 수행하는 추세이다.

다르게 말하면, '고전적 의미의 역사'는 뒤안길을 걷고 있다. 고전적 의미의 역사의 대표적 정의는 '학문'으로, 서적 등의 '고전적 수단'으로 공부해야 하며, 엄격함이라는 성격을 내면화해야 하는 특징이 있다. 응용과는 거리가 멀다. 스스로를 수양하고, 지식으로 씨름하고 훈련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겠다. 사실 역사는 고전적, 학문적인 성격을 갖춰야 '제대로 됐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고리타분하다', '도움이 되는 게 있느냐?'와 같은 반박에 고개를 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역사를 '응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건 이상주의에서 현실주의로 옷을 갈아입는 과정인 셈이다.

역사 전공자는 원칙적으로는 고전적 의미의 역사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원칙적으로'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지금의 역사 전공자들은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필자도 원칙을 100% 지킨다고 볼 수는 없다. 역사와 교육 간의 관계성을 모색하는 행위와 역사 자체의 학문적 행위는 결이 다르다. 그래도 역사라는 탈을 완전히 벗어던지는 사람들보단 더 원칙적이라고 볼 수는 있겠다. 고전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고전이라 불리는 책의 내용들은 어떤 시대에 끼워맞추든 들어맞는 공통점이 있다. 역사도 인간 사회를 이루는 일종의 고전이다. '역사를 제대로 배우면 어떤 시대에서든 잘 살아나갈 수 있다.'라는 공식은 성립될까? 현 시대에는 그렇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 새로운 공식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아보인다. 이렇게만 보면, 역사에서는 고전이라는 용어가 내포한 근본적 의미가 부정되는 듯하다.

새로운 공식을 도입한 역사, 곧 응용으로서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이것이 성공을 거뒀다면, 새로운 공식을 도입해서 성공한 것일까? 역사라는 밑바탕을 유지해서 성공한 것일까? '고전적 의미의 역사는 무용하다.'라는 명제가 사실이라면, 역사라는 밑바탕을 아예 버려도 된다. 밑바탕부터 공식의 도입까지 역사와는 완전히 무관한 것들로 채워나가면 된다. 그런데 그 명제가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 콘텐츠, 역사 게임,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역사 매체 등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역사는 분명히 쓸모가 있는 밑바탕일 것이다. 역사의 본질을 파고드는 고전적 행위와 역사를 응용하는 실용적 행위 간의 관계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겠다.

이 시리즈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대변하고 입증해본 과정이었다. 필자는 경험과 사유를 적절히 조합하여 시리즈의 큰 그림을 완성하고자 했다. 시리즈의 초반을 장식한 역사학과 유튜브 콘텐츠의 관계(2-3장), 역사학과 인공지능의 관계(4-5장)는 필자가 역사를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했을 때 느낀 생각을 솔직하게 풀었다. '역사 전공자도 심심하면, 유튜브의 역사 콘텐츠를 시청하고 Chatgpt에 역사와 관련한 채팅을 돌려보는구나.'라는 인상을 줌으로써, 독자들에게 역사는 생각보다 일상 가까이에 있다는 의도를 전달하고자 했다. 그 의도가 잘 전달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시리즈의 중후반을 장식한 역사학과 독서의 관계(7-8장), 사료비판과 역사교육의 관계(9-10장)는 고전적 의미의 역사를 깊이 있게 탐구함과 동시에 교육에 응용하는 방법을 모색할 때 시너지가 생길 것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프롤로그에서 밝힌 '초중등 역사교육을 풍성케 하는 요소'와도 연관이 있다. 결과적으로 이 시리즈는 고전, 학문으로서의 역사와 창작, 응용으로서의 역사 간의 가교를 놓음으로써 역사학이 갈 길, 방향성을 더 명료히 밝혀주는 걸 고민하였다.

역사를 현실에서 '실천'하는 행위, 그것이 오늘날의 역사학이 갈 길이 아닌가 싶다. 이 주장을 앞서 제시한 사람이 있다. 전형적인 엘리트코스를 밟은 역사학자이지만, 양차 대전 당시 조국인 프랑스를 위해 전장으로의 출격을 마다하지 않은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1886~1944)가 그 주인공이다. 필자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펜을 다루는 학자와 무기를 다루는 군인을 겹쳐보는 것은 그닥 자연스럽지 않다. 어찌 보면, 학자에 대해 '온실 속의 화초'라는 이미지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필자가 존경하는 한 사학과 교수님도, 학문적으로는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위치에 있지만 '나는 힘없이 교수의 자리에 있다가 은퇴하겠다. 나는 학생의 취업을 알선해줄 사람이 아니다.'와 같은 자조적인 말씀을 했던 게 기억난다. 역사를 현실에서 실천하는 행위가 어렵다는 걸 고백한 것과도 같다.

그런데 마르크 블로크는 달랐다. 독일의 침략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하는 것과 같은 '지식인 투쟁'의 노선이 아니라, 전장에 뛰어들어 직접 싸우는 '사서 고생하는' 노선을 택했다. 그의 이러한 행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될까? 조국에 대한 들끓는 애정에서 비롯된 게 크겠지만, 인간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는 현실을 역사와 결부해 받아들이는 태도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는 전쟁으로 프랑스의 현실이 위기에 빠진 와중에, 역사를 '단순한 과거'로 치부하여 현실과 동떨어진 걸로 보는 행위, 엘리트 지식인이라는 신분으로 교묘히 현실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행위를 용인하지 않았을 거라 해석된다. 그는 탁월한 학자이자, 역사와 현실을 분리하지 않고 마땅히 행할 걸 행한 실천가였다. 이 시리즈는 마르크 블로크가 보여준 삶에 비해서는 한참 모자란 졸저이지만, '21세기 그리고 앞으로의 역사학이 어떤 분야에, 어떤 방식으로 실천을 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영감을 제공해주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시리즈는 끝났지만, 시리즈에 내포된 고민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구절을 몇 가지 첨부하겠다.

학자로서의 마르크 블로크(왼쪽)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참전해 군복을 입은 마르크 블로크(오른쪽)
사람들은 가끔 "역사는 과거에 관한 학문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선 과거가 그 자체로서 학문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p.56)

과거에 대한 무지는 현재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의 행동에까지 위험한 영향을 미친다. …(중략)… 반대로 현재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과거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아마 그것도 마찬가지로 헛된 일일 것이다. (pp.76, 79)

본래 과거는 어떠한 것에 의해서도 변화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에 관한 인식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개선되며 진보될 수 있다. (p.94)

- 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고봉만 옮김, 한길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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