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교육 중심에서의 배움, 회의

제3지대 역사교육 Note: 다시, 초창기 #3

by 샤를마뉴

다시, 2023년,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가는 한 해였다.

활동 영역이 그리 넓지 않은 필자에게,

사회경험으로 사람을 알아가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신입생활은

기존에 일하던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는 것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선임과 사이가 틀어지면, 좋을 게 없다.


이 부분은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회사 동료가 꼭 사적으로 친한 인연으로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유동적인 공간이다.

퇴사해 버리면, 회사와의 연은 거기서 끝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회사는 즐거운 공간이 아니다.

돈을 벌라고 회사를 가는 거지, 회사를 '놀러가진' 않는다.

회사 사람 간에 상하관계, 친목이 있다면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회사 동료는 말 그대로 '동료' 선에서 대하는 게

깔끔한 것 같다.


그래도 필자가 일하며 만났던 다른 집필진들은

똑똑하고, 배울 점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무엇보다 필자와 마음의 결이 맞았다.

분명히 각기 다른 배경을 갖는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인 환경인데, 필자는 거기서 동질감을 느꼈다.

오히려 필자 사학과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 장에서는

'제3지대 교육의 중심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떠했는가?'

그리고 '제3지대 교육에서 어떤 교육 원리를 배웠는가?'를

얘기해보고자 한다.


2023년의 집필진은

'전공자 100%'의 구성이었다.

역사교육과 그리고 사학과 사람들만 있었다.


역사교육과 사람을 만난 건 확실히 좋은 경험이었다.

역사교육과를 생각했지만, 결국 사학과를 간 필자에게

역사교육과는 '같은 듯 다른' 곳이었다.

역사를 배운다는 점에선 같지만,

교육을 배운다는 점에선 사학과와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가 신입 시절 겪었던 업무상의 어려움이 '교육적인 부분'이었다.

교육과정, 교육평가 같은 교직과목을 듣지 않고

그저 개인적인 관심만 갖고 교육과 관련한 직무를 수행하면,

가늠자에 비치는 표적을 명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집필진 업무 프로세스를 비유한 시각 자료(필자 제작)

신입 집필진 시절의 필자에겐

소총수의 눈은 있었지만, 정밀한 가늠자가 없었다.

그래서 가장 많이 받았던 피드백이

'교육과정에 부합하지 않는다'였다.


여러 수험생 커뮤니티에도

'자작 문항'이라 하여 평가원 모의평가/수능 역사를

모방해 제작한 문항들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문항들도 교육과정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교육과정이란 과연 무엇일까?

교육과정은 간단히 정의하자면,

'표준화된 앎'이다.


우리나라 교과서 출판은 '검정 방식'이다.

검정 방식이란, 민간 출판사가 어떤 교과목에 대한

교과서를 만들고 이를 국가에서 심사 및 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검정 방식의 반대는 국정이다.

국가가 어떤 교과목에 대한 '단 하나의 교과서'를 펴내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검정 방식에서는

같은 교과목을 다뤘더라도, 서술상의 차이가 있는

여러 종류의 교과서가 출판된다.

어쩌면 집필진 입장에서는 국정 교과서가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교과서 모델이 딱 하나라 교육과정 준수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어지니까.


검정 교과서의 서술상 차이는

사소한 것부터 큰 것까지 있다.

사소한 차이는 대부분 그러려니 넘어가는 부분이다.

문제는 큰 차이이다.

'다른 교과서에는 모두 서술하고 있는 내용인데,

어떤 하나의 교과서에는 전혀 서술되지 않은 내용'이 대표적이다.

이는 유불리를 낳는 요소이기도 하다.


더 쉬운 이해를 위해 예시를 들어보겠다.

A라는 개념이 있고,

가, 나, 다, 라의 교과서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가, 나, 다 교과서에는 A가 서술되어 있고,

라 교과서에는 A가 서술되어 있지 않다.

그러면 가, 나, 다 교과서로 공부한 학생은 A를 당연히 알겠지만,

라 교과서로 공부한 학생은 A를 전혀 모를 것이다.

그런데 시험에서 A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문제를 출제하면

라 교과서로 공부한 학생은 한 문제를 틀리고 시작하는 셈이다.


평가원 모의평가와 수능은 전국 단위의 교육평가이다.

출제에 있어, 앞서 말한 유불리가 발생하지 않게

더욱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교육과정을 출제에 있어 일종의 '법전'으로 삼는다.

교과목의 어떤 개념을 문제의 주제로 삼거나,

문제풀이의 핵심으로 활용할 때 최우선적으로 확인할 것이

'어떤 교과서로 배웠든 그 개념을 숙지할 수 있는가?'이다.

이 긴 설명을 함축한 표현이 바로 표준화된 앎이다.


사교육은 그 점을 공략한다.

강의 혹은 교재에서

'이 개념은 모든 교과서에 나오니 외워야 해요.'

'저 개념은 N종 교과서 중 1종만 나오니 참고만 해요.'라며

학생들에게 교과목 학습의 기준선을 정해준다.

제3지대 교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연히 학생은 교육과정이 무엇인지,

그게 교육평가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모른다.

그래서 그 감을 잡을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데,

그것이 일명 수능특강, 수능완성이라 불리는 '연계교재'이다.


그런데 연계교재를 열심히 공부해도,

감을 잡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

사교육이 그 현상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제3지대 교육에서는 연계교재를 꼼꼼히 분석해

팁을 전달하는 교재를 만들기도 했다.

'만들기도 했다'라는 말을 한 이유는,

지금은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연계교재를 편찬하는 목적은

수능날 아침, 평가원의 브리핑에 그 답이 있다.

그 브리핑에는 매년 항상 반복되는 구절이 있다.

'학교 수업을 충실히 듣고, 교과서를 잘 살펴봤으면

수능 문제를 푸는 데 지장이 없다.'가 그것이다.


즉, 연계교재는 사교육 없이도

공교육의 틀에서 수능을 대비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교재이다.

그런데 사교육이 연계교재의 편찬 목적을 훼손했다.

독학으로 연계교재를 공부한 사람,

사교육의 가이드라인을 보며 연계교재를 공부한 사람 간의

격차가 생겼기 때문이다.

2023년에 행해진 사교육 근절 정책의 골자도

'사교육이 연계교재를 해부하는 작업'을 금지시키는 것이었다.


이처럼 교육과정은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이다.

교육평가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교재 집필진은 교육과정, 교육평가에 대한 안목을 갖고 있어야 한다.

역사교육과에 재학하는 사람은 이 안목이 있다.

역사학의 세계를 바라보는 소총수의 눈도 있고,

소총수의 눈을 가늠자에 맞추는 정밀함도 있다.


반면, 사학과에 재학하는 사람은

소총수의 눈에 집중하지, 그것을 가늠자에 맞추는 걸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니, 그 방법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그래서 학문과 교육과정이 알맞게 결합한 상태인

'명중'의 확률이 떨어진다.


필자는 소총수의 눈을 가늠자에 맞추는 방법,

명중하는 방법을 제3지대 교육으로부터 배웠다.

역사교육과 출신의 집필진 분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여기까지만 보면,

사학 전공자는 역사교육 분야로 진출하기가

확실히 불리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 않다.

사학 전공자도 역사교육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고, 도리어 우위를 점할 수도 있다.


이전 글에서 얘기한 부팀장님은 필자처럼 사학과 출신이다.

부팀장님이 제작한 문항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교육과정이 기본적으로 준수된 것도 준수된 것인데,

사료가 절묘하게 잘 활용되었다.

완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소총수의 눈을 가늠자에 맞추는 게 기본이지만,

꼭 그게 능사는 아니다.

교육학을 배운다고 역사학까지 통달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두 학문은 결이 다르다.


'교육과정이 준수된 문항'이라는 평가를 넘어서,

'독창적인 문항', '완성도가 높은 문항'이라는 평가까지 받으려면,

교육학뿐만 아니라 교육학을 활용할 학문도 잘 이해해야 된다.

역사교육에서의 교육평가는 그러한 특성이 더 뚜렷하다.


역사교육과에서는 역사학을 그렇게 자세히 배우지 않는다는 말을

필자가 집필진에 있으면서 들었다.

아마 사범대 커리큘럼에서 교직과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사학과는 기본적으로 역사학을 깊이 있게, 상세히 배운다.

원사료를 강독하기도 하고, 역사학이 발전된 과정을 배우기도 한다.

생전 처음 들어본 학자의 이름, 어떤 역사적 주제에 대한 학계의 의견,

어떤 역사적 주제가 '연구되어 온' 역사도 심심치 않게 접한다.

소총수의 눈 그 자체에 주목하는 거라 보면 되겠다.


필자가 만든 문항은 다른 집필진들로부터

'특이하다', '문제에 담긴 내용을 보는 재미가 있다'라는

평가를 주로 받았다.

사학과에 소속되었다는 배경에서 비롯된 평가이겠다.

노트북에 담긴 필자의 2023년 8월 업무 과정 중 일부이다. '참고 문헌'이라는 별도의 파일을 만들어 논문을 담아뒀다. 후에 다른 시험지를 만들 때 다시 활용하기도 했다.

필자는 문항을 제작할 때,

역사와 관련된 각종 서적, 논문을 참고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쳤다.

제시문을 구성할 때도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역사적 인과관계',

'TMI같지만 역사를 이해할 때 도움이 되는 이야기'의 요소를 중시했다.

원사료를 활용할 경우 각색을 최소화했다.

역사가의 자세로 교육에 접근했다. 필자 나름의 원칙이었다.

이 원칙이 결과적으로

집필진으로서 안정기에 오르는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가늠자는 교육과정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정량적 요소'라면,

소총수의 눈은 독창성, 완성도를 결정하는 '정성적 요소'이다.

정량적 요소를 충족하는 능력이 갖춰졌다면,

정성적 요소를 담는 능력을 키우는 게

역사교육 분야의 '전문 집필진'으로 발돋움하는 여건이라 생각했다.


집필진은 학문에 대한 소양이 확실히 필요하다.

학문에는 '수준 있는 아이디어'가 도처에 널려 있다.

학문은 잘 활용하면, 어느 분야에서든 도움을 줄 수 있다.

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역사학에서의 '학술적 자료'는 전문 서적부터 사료까지

방대하고 깊이 있게 존재한다.

이것을 어느 정도 섭렵하고 교육에 적용하면 더 좋지 않겠는가?

좁은 가늠자만 보면, 가늠자로만 세상을 보기 마련이다.

때때로 소총수의 눈으로 넓은 광경을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역사학이 세상에 쓰임받는 학문이 되길 원한다면,

역사학의 학문적 우수성을 전문 연구자끼리만 향유하지 말고,

적절히 정제하여 다른 분야에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본다.

필자가 사학 전공생의 위치에서

역사교육 분야에 몸담은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학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바꾸는 길은

교육 그리고 교육에 능동적인 역사가의 자세에 있다.


집필진 업무는 어렵다.

그리고 요구하는 수준도 높다.

그렇기 때문에 소화하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이런 일을 능히 오래 해내는 사람들은

비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학력이 그 사람의 모든 걸 대변하는 세상은 아니라지만,

업무에 임하는 집필진들의 면모를 보면서

'이래서 명문대 사람은 다르구나'를 느꼈다.

같은 일을 해도, 머리가 비상하면

이런 놀라운 차이를 만든다는 걸 번번이 경험했다.

학력이 사람을 '측정'하는 역할로 작용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사교육 업계에선 더욱 그렇다.


사교육 업계는 학벌주의와 실력주의가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공간이다.

실력만 있으면 학벌이 특별히 꼬리표가 되지 않기도 하지만,

사교육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은 모아보면 학벌이 쟁쟁하다.

이는 실력이 뛰어나더라도, 기본적인 학벌이 뒷받침되어야

사교육 업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씁쓸한 사실을 보여준다.


그곳에서의 필자는

마치 개화기의 동아시아인 같았다.

'서양을 따라가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인식은

개화기의 동아시아인, 특히 지식인들의 사고를 전적으로 지배하였다.

오죽하면 서양 국가로 사절단을 보내기까지 했겠는가?


필자 대학의 사학과가 '구습의 동아시아'라면,

제3지대 교육의 중심인 그 팀은 '선진의 서양' 같았다.

신식 문물을 접하고 또 다루는 자격이 주어진 것에 영광스러우면서도,

필자가 본디 속한 사학과라는 공간에 대한 회의는 커졌다.

사학과 사람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정말 그렇게 느낀다.


'내 주변의 사람이 어떠냐에 따라 내가 바뀐다'도 그때 체감했다.

집필진들이 워낙 쟁쟁한 탓에, 신입 시절의 필자는 꼴찌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꼴찌여도 다른 곳에 가면,

중간 이상은 기본적으로 가는 역량이 길러졌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낫다'라는 격언이 있다.

이 격언이 맞는지 의문이 들게 되었다.

참고로 필자 대학은 뱀의 머리를 자처하는 대학이다.

용의 머리가 집합한 팀에서 뱀의 머리가 낀 것이다.

용이 되고픈 뱀의 모습이 필자가 아닌가 싶다.


필자 대학, 그리고 사학과에 묻고 싶다.

뱀의 머리라는 사실에만 도취되지는 않았는가?

용의 세계를 '뱀의 세계와 별 차이 없어.'라고 가볍게 취급하고,

뱀의 세계에만 안주하지는 않았는가?

유감스럽게도 용의 세계는 뱀의 세계와 차이가 크다.


제3지대 교육의 중심에서 배운 것은

필자를 흥미롭게, 그리고 지식을 명료히 했고

제3지대 교육의 중심에서 본 사람들의 면모는

필자의 심경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 상반된 느낌을

이 장에서 솔직하게 풀어보았다.


신입 집필진 시기의 필자는 많이 부족했지만,

동시에 많이 배웠다.

경험치가 쌓이면서

점차 신입의 파릇파릇함은 없어지고,

경력자의 노련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게 되었다.

'전환'이 찾아온 것이다.


다음 장부터는 '다시, 전환기'가

어떻게 찾아왔고,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짚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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