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역사교육 Note: 다시, 전환기 #1
2023년 11월,
새해가 밝았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그러겠지만,
제3지대 교육에서는 새해가 맞다.
사교육이 살아남는 전략 중 하나가
'얼리버드(Early Bird)'이다.
남들보다 한 발 아니 두 발은 앞선다.
그래서 2024년 1월에
새해의 업무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필자가 속했던 팀의 경우에는 2023년 11월에
새해의 업무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필자는 근속일수로 1년을 다 채우지도
않았는데, '2년차'가 된 셈이다.
물론 신입 집필진이 갓 됐을 2023년 1월보다는
경험도 쌓이고, 능력도 조금 생겼지만
아직 부족했다.
실제 근속일수로 1년이 넘었을 무렵부터,
필자에게 2년차다운 면모가 생겼다.
'적응된' 신입에서 노련한 경력자로 향하는,
즉 2023년 11월~2024년 2월을
집필진으로서의 '전환기'로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2022년 연말~2023년 초 역시
필자에게는 전환기였다.
검토진의 지위에 머무르지 않고, 집필진을 해야겠다는
동기가 생겼고, 그렇게 되었다.
제3지대 교육의 바깥에서 중심으로 향하는 여정이
전환기를 거쳐 완결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
다시 전환기가 찾아왔다.
만약 이 전환기가
그때의 전환기가 흘러갔던 방향과 같다면,
어떤 것을 '안정'시키고 '완결'시키는
여명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두 번째 전환기도
밝은 미래를 준비하고 물려주었다.
그 과정을 차근차근 풀어보겠다.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의지이자, 실험이다.
기존에 아쉬웠던 것, 이루지 못했던 것이
있다면 이뤄내려는 의지도 있고,
기존 프로세스에 변주를 줘보려는
실험도 행해진다.
당연히 팀장 주도 아래
2024년 제3지대 교육의 판을
2023년과는 다르게 짜보려는 움직임이 행해졌다.
여러 방면에서 변주를 주고자 했다.
그런데 전환기(과도기)에 행해지는 수정 절차는
한 번으로만 끝나는 경우가 드물다.
여러 번의 수정이 거듭되어 확립에 이른다.
그 말은 2023년 11월에 수립한
팀의 새로운 운영 원칙이 그대로 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팀 운영 원칙의 전환 구도는
2023년 11월~2024년 1월,
2024년 1월~4월,
2024년 5월~10월,
이렇게 세 차례 있었다.
전환의 내용에 대해서는 뒤의 글들에서도
조금씩 풀겠지만, 주요 요인을 꼽자면
인사(팀원) 구성의 변화,
학원 본원의 운영 방식 변화에 따른 영향을
들 수 있겠다.
결과적으로 이 전환이
팀 프로세스의 미비한 점을 정비하고,
'인력'이 아닌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팀을 만들었다.
확실히 신입 집필진 때에 비해서 업무 스트레스가
경감되었다. 고진감래(苦盡甘來)이다.
팀의 변화와 함께 필자도 변화했고,
팀의 안정과 함께 필자도 안정기에 이르렀다.
눈치 보던 신입에서 벗어나
경력자의 반열에 오르면,
'대담함'이 생기기 마련이다.
조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신입은 회사에 익숙해지고,
주어진 일부터 잘해야 하는 입장인지라
아무래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2023년 11월 초는
업무보다는 팀의 방향을 고민하는 게
더 중요했던 시기였다.
필자도 그 고민에 목소리를 내는 일원이 되었다.
필자가 팀의 방향을 위해 짊어지게 된 의무는 '조직문화'였다.
팀장님이 짊어주시기도 했고, 필자 자신도
짊어지고픈 부분이기도 했다.
필자는 집필진 자리에 있으면서
'검토진 시절'을 늘 마음에 새기고 다녔다.
쏟아지는 일로 힘들고 의지를 잃어버릴 수 있음에도,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건 아래가 있었기 때문이지'라는
마음가짐으로 결연함을 유지하곤 했다.
필자에게 아래는 단지 검토진 시절뿐만 아니라,
산전수전 고생을 겪었던 학창 시절까지 포함된다.
고생을 해도 나아지지 않으면, 그것은 불행이다.
학창 시절의 필자는 여러 고생을 겪었는데,
늘 잘 풀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고생을 해서 나아지면, 그것은 행복이다.
집필진 시절의 필자 역시 여러 고생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 풀렸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온 과정이 그것을 증명한다.
승진해서 더 나아진 위치에 있을 때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은 제각각이다.
보통은 이런 입장을 보일 것이다.
'내 자신이 지금 성공해서 행복하면 됐지.
뭐하러 내 아래에 있는 남을 신경쓰나?'라고.
맞다.
내 자신이 성공했으면 그만이다.
지금 이 세상은 개인주의의 시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필자의 입장은 다르다.
앞에서도 밝힌 모토를 다시 읊어보겠다.
좋은 미래는 과거 그리고 현재의 '더 좋아지려는 의지'로 만들어지고,
과거에 어려웠던 사람은 지금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
이 모토대로라면,
필자는 검토진 시절에도 나름의 어려움을 겪었으니,
후속 검토진을 도와야 한다.
그것은 현재의 더 좋아지려는 의지의 발현이고,
좋은 미래로 향하는 길이기도 하다.
물론 집필진이 되고보니,
검토진에게 관심을 주기 어렵다는 걸 잘 알았다.
쉴새없이 일을 해야 되는데, 다른 것에 어떻게 신경을 쓰랴.
그런데 무심을 가장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
필자가 검토진 시절, 문제 삼았던 게 이 부분이다.
그들도 제3지대 교육이라는 판에 관심이 있고,
나름 실력 있는 사람들이다.
집필진은 때로는 집필에 집중하느라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그 실수를 검토진이 바로잡아주기도 한다.
마냥 하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팀장님도 검토진 운영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셨다.
2023년 11월 초, 이 부분과 관련한 회의가 있었다.
필자는 검토진과 '소통'이 필요함을 피력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몇몇 방안을 내놨다.
팀장님은 거리낌없이 받아들이셨다.
검토진과 소통을 주장한 이유가 나름 있었다.
팀장님이 언제 이런 말을 하셨다.
'검토진은 로봇같다.'
그냥 앉아서 아무 말 없이 검토할 원고를 읽는
검토진의 수동적인 태도를 꼬집은 표현이다.
필자도 검토진 때 말없이 일했었다.
이 문제를 필자가 검토진이었을 때의 경험으로
해결해보기로 했다.
잠시 시간을 되돌려 2022년 7월 4일,
이 팀에서 처음으로 검토진 업무를 했던 날에
종이에 써진 검토진 매뉴얼을 받았다.
매뉴얼의 내용 중에는
'문제지를 푼 뒤, 집필진의 출제 의도를 듣는'
절차가 있었다.
그런데 그 절차는 유명무실했다.
제일 많은 말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인데,
유명무실했기에 말할 명분이 없어졌다.
그래서 '말없고, 수동적인' 검토진이 된 것이다.
집필진끼리는 시험지를 만들어오면,
어떻게 시험지를 구성했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듣는 재미가 있다.
시험지를 푼 사람마다 상반되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특기할 만한 지점이다.
검토진이 시험지와 해설지를 검토할 때는
이런 절차가 없었으니 지루한 것도 당연하다.
필자가 처음 검토진을 했을 당시의
전체 검토진은 8명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인원이 반토막났다.
반토막이 된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말없이 업무가 진행되며 흥미가 떨어진 것'이
분명히 그 원인을 이루는 요소였겠다.
팀장님도 검토진끼리도 말이 오갔으면 하는
바람을 주문하셨다.
필자도 바라고 있었던 부분이기도 하고,
그 바람을 현실로 이룰 힘도 생겼으니
회의에서 검토진 운영 원칙의 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피력하였다.
그중 하나가 문제지에 대한 집필진의 출제 의도를
듣는 유명무실한 매뉴얼을 실질적으로 복원시킨 것이었다.
당연히 처음은 어색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말없이 알아서 일하던 검토진 입장에선
갑자기 집필진이 와서 '여러분과 소통하겠다'하면,
당황스럽기도 하고, '보여주기 아냐?'라고 의심할 것이다.
혹은 그간 업무를 본 방식에 문제를 삼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 예견했던 부분이다.
그렇지만 문제 없었다. 필자는 검토진이었다.
검토진의 마음을 다른 집필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필자가 휴직을 내는 2024년 8월까지,
9개월간 집필진으로서의 업무도 충실히 하면서
검토진과 소통하려는 의지도 놓지 않았다.
그 의지가 통했다.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검토진들이 필자에게 질문을 하는 횟수가 늘어났고,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열띤 얘기가 오가기도 했다.
문제지에 대한 출제 의도를 얘기하는 과정에서는
검토진들도 나름의 실력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삭막했던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일을 지속할 수 있는 분위기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당연히 한계도 있었다.
해설지나 개념서 등의 교재를 검토할 때는
검토진과 소통하는 빌미를 만들기가 어려웠다.
이 부분은 기존에 해오던 방식을 답습했다.
필자가 너무 바빴을 때는 신경을 못 쓴 적도 몇 번 있었다.
평시와 달리 관심을 덜 기울였다는 거지, 차갑게 대한 건 아니었다.
필자가 팀에 검토진 운영 방식의 변화를 역설하고,
실제 행동으로 실천했던 건
처음으로 필자가 팀의 운영에 대해 목소리를 낸 일이었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전환을 이끌어준 일이기도 했다.
조직문화, 인사의 중요성을 깨닫고 배운 시간이었다.
경영학을 전공하진 않지만, 실무로 배운 셈이었다.
2023년 12월,
임금협상을 처음으로 해봤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하는 게 아니라면,
웬만한 대학생은 임금협상을
말로만 들어봤거나 모를 가능성이 높다.
필자도 몰랐다.
신입 집필진 때도 다른 집필진 분들이
넌지시 임금협상을 얘기했지만,
임금협상이 언제,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몰랐다.
그 실체를 2024년 업무를 시작하는
2023년 11월에 알 수 있었다.
팀장님이 개별적으로 사람들을 불러
임금협상과 관련한 사항을 안내하였다.
그 사항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핵심은 이거다.
'어떻게든 더 많이 임금을 인상해라.'
팀장님이 이를 위한 사전적 조치도 하신 게 있었다.
팀장님의 책임감,
학원 분원의 영주로서 가신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의식이
정말로 멋졌다.
임금협상은 집필진 계약서를 썼을 때처럼,
학원 본원에서 이루어졌다.
이전 글에도 얘기했듯이, 경제적 권한은 학원 본원이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원 본원 관계자들이 서두에 뗀 말 중
'인사와 돈이 우리에게 가장 민감하다.'라는 말이 있었다.
필자가 임금협상 전략에 활용한 요소 또한 인사였다.
필자는 우선 업무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필자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고,
다만 좋아하는 역사 교과목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교육 인프라가 지극히 부족했던 걸 문제로 느끼고,
제3지대 교육에 몸담게 됐는데
검토진 그리고 집필진을 거쳐 임금협상을 하는 자리에
올라온 것이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덤덤히 그간의 궤적을 말하니 학원 본원 관계자들이
지그시 필자에 집중했다.
2023년은 팀에서 그렇게 좋지 않은 인사상의 변화가 있었다.
그래서 업무량이 굉장히 많았다.
신입 집필진 시절이 힘들었던 이유였다.
학원 본원 관계자들이 그 부분에 대해 지적을 하자,
'그래도 배울 게 많고 경력을 쌓기 좋았습니다.'라고 답했다.
일이 힘들어도 얻을 게 많은 건 사실이었다.
그 후, 2년차 팀원으로서의 다짐을 말하고
임금협상을 위한 전략을 활용했다.
필자가 받았으면 하는 임금,
학원 측이 제시한 임금에 차이가 있었다.
필자가 받았으면 하는 임금이 당연히 높았다.
그래서 학원 측이 제시한 임금과
필자가 받았으면 하는 임금의 중간치로
절충하는 방안을 학원 관계자들이 제시했지만,
바로 수락하지는 않았다.
임금'협상'이기 때문에,
학원 관계자들이 '임금을 더 받아야 하는 근거'를
제시하면 올리겠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 점이 참 좋았다.
보통은 임금의 인상분을 '통보'하는데 '협상'을 하면,
피고용자의 권리를 더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을 보는 눈이 하나 생겨났다.
필자는 학원 관계자들이 서두에서
'인사와 돈이 가장 예민한 문제'라고 말했던 점을 떠올렸다.
'새로운 사람을 뽑아도 나가버리면,
그것이 장기적으로 손실이 아니겠는가?'를
신입 집필진, 검토진 채용의 측면에서 얘기했다.
학원 관계자 분들이 한참 고민을 하더니
필자가 받았으면 하는 임금을 제시했다.
그렇게 임금협상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시한부를 정했다.
필자는 병역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임금협상 계약서와 함께
장기휴직 계약서도 체결했다.
집필진 일도 언젠가 끝이 날 운명이었다.
'끝이 나기까지 무사히 집필진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앞섰다.
임금을 올려받는다는 건,
그만큼 책임도 커지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걱정은 조금씩 풀려나갔다.
그리고 '끝이 정해졌으니 그때까지 열심히 하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무장했다.
2023년 연말,
하지만 사교육 그리고 제3지대 교육에선
2024년 초로 취급하는 2023년 연말은
몇 가지 큰 전환이 있었던 시기였다.
앞서 본 팀 운영 원칙의 전환, 임금협상이 그것이다.
필자도 그 전환의 흐름에 맞물려 변화했다.
책임감이 높아진 게 가장 주요한 변화였다.
신입 집필진 때는 '주어진 일만 잘하자'라는 생각으로 업무를 했다.
그런데 2년차 집필진 때는 '일을 잘하는 걸 넘어,
필자가 어떻게 해야 큰 움직임, 큰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업무를 했다.
그 생각이 곧 검토진을 관리하는 일로 이어졌고,
집필진 본연의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는 작용으로도 이어졌다.
팀장님이 말씀하신 집필진으로서의 책임감이
비로소 완전히 발현한 것이다.
전환기 때 조금씩 책임감이 올라가다가,
'정말 놀라운 일'을 개인적으로 겪으며 폭증했다.
그 일은 다다음 글에서 언급하겠다.
물론 책임감이 그냥 나오는 건 아니다.
책임감만큼 대가가 따라와야 한다.
속물적인 얘기이지만, 그게 맞다.
임금협상이 가장 주요한 대가였고,
업무 환경의 변화 역시 그에 버금가는 대가였다.
필자에게는 전자의 요소도 중요했지만,
후자의 요소가 '체감하는 면'에서는 더 컸다.
돈을 많이 준다한들, 일이 너무 고되고 스트레스가 크면
'돈을 위해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고, 그 생각이 포기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사교육, 제3지대 교육의 고질적 문제점이다.
필자가 조직문화를 강조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필자에게는 한 가지 과제가 남아있었다.
'좀 경력 쌓인 게 느껴진다'라는 집필진 업무 능력을
갖추는 일이었다.
다음 장에서는
업무 환경 개선이 골자인
팀 운영 원칙의 두 번째 전환(2024년 1월~4월)이
이루어진 내막과 필자의 업무 능력이 도약한 과정을 얘기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