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역사교육 Note: 다시, 전환기 #2
2024년 1~2월,
더 편안한 미래를 위한 햇빛이
가까워지는 새벽이었다.
더 편안한 미래는
'신입 집필진 채용을 통한 업무 분산'이었다.
지난 장에서도 말했듯이,
2023년은 인사상의 문제로
모든 집필진을 불문하고 격무에 시달렸다.
신입 집필진 채용은 반드시 필요했다.
또 새로운 물을 들여야 활력이 도는 법이기도 하다.
다만, 이에 관한 얘기는 여기서는 하지 않고
다른 장에서 다룰 것이다.
변화의 파고는 계속되었다.
학원 본원, 팀 모두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 시기에는 팀의 변화한 정도가 훨씬 컸다.
학원 본원은 연초에 변경된 업무 프로세스를 하달한 후,
4월 무렵까지는 현상 유지의 기조를 취했다.
한편, 팀 운영 원칙은 전면적으로 변화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집단 지도 체제'로의 변화이다.
2023년은 팀장 - 부팀장을 필두로 한 위계가 존재했었다.
그 위계를 일부 허무는 작업이었다.
허문 위계만큼 남은 힘은 구성원 모두에게 분배되었다.
즉, 집필진 개개인의 능력을 키워 위계를 이루지 않더라도
중견 집필진이 팀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작용하게끔 하는
팀장의 전략이었다.
이 변화는 업무 환경의 개선으로도 이어졌다.
집필진 개개인의 능력을 '믿는다는' 전제로,
업무 프로세스도 개인주의적, 독립적으로 변화했다.
필자에겐 굉장히 좋은 변화였다.
학자적 기질이 있는 사람은 혼자 조용한 공간에서
뭔가에 몰두해야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다.
또 비공개적인 시간 때 작업물을 준비하는 집필진 업무 특성상,
온라인 환경에서의 협업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도 개인주의적, 독립적 업무 프로세스가 더 낫다.
이렇게 팀의 기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 변화가 고착되었기 때문이다.
2023년까지의 팀과 2024년부터의 팀은 성격이 달라졌다.
필자가 떠난 뒤의 팀은 또 달라졌지만,
2024년의 변화된 운영 원칙은 계승되었다.
국가로 비유하자면, 그 변화를 분수령으로
'전기 국가'와 '후기 국가'로 나뉜 것이다.
필자는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성장 그리고 안정을 도모하였다.
여기에서는
변화의 파고와 안정의 사이,
편안함을 준비하는 새벽과 더 편안한 아침 사이에 놓인
필자 그리고 팀의 여정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팀의 운영 원칙이 다시 변화하는 건
필자를 비롯한 모든 집필진이 예상하지 못했다.
팀장님이 기습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 변화가 있기 전, 2024년 1월의 첫 두 주는
2023년 11월에 수립한 운영 원칙대로
팀이 돌아가고 있었다.
사실 이 운영 원칙은 변화의 불안정한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것인지, 그렇게 좋은 방식은 아니었다.
몇 가지의 근본적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집필진은 주 2회 출근을 기본으로 했다.
월요일과 금요일은 모든 집필진이 고정적으로 출근했고,
토요일은 지도부(팀장님, 부팀장님)는 정기 출근,
선임 집필진은 업무 지원 방식으로 유동적으로 출근했다.
그래서 필자는 주 2회 출근만 했던 셈이다.
월요일은 업무를 개시하는 절차였다.
'2주치 업무'를 계획한 뒤, 간단한 회의를 거쳐 업무에 임했다.
그리고 화~목요일에는 비공개적인 업무를 했다.
각자 알아서 시험지를 만들어오거나, 교재를 편집했다.
금요일은 화~목에 만든 작업물을 검토하는 날로, '업무의 핵심'이다.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내리 작업물을 검토한다.
시험지를 만든 사람은 작업물 검토 전에 어떻게 만들었는지 발표를 한다.
이때는 소통이 많이 이루어져서, 일이 힘들어도 재미는 있다.
그런데 문제는 2주차 월요일이었다.
1주차 월요일은 업무 계획 제시,
1주차, 2주차 금요일은 작업물 검토라는 주요 프로세스가 있는데
2주차 월요일은 그런 게 없었다.
붕 뜨는 느낌이 있었고, 삭막했다.
2023년 업무를 마무리하면서,
팀장님과 개별 면담을 가질 때 그 부분을 얘기했는데
팀장님도 '그 문제는 나도 인식하고 동의한다.'라며
개선할 의지를 보이셨다.
그래서 2023년 11월에 발표된 새로운 운영 원칙에는
그 점이 반영되었다.
금요일에 검토할 작업물의 분량을,
월요일에 배분하였다.
이렇게 해서 공허한 2주차 월요일에
프로세스를 채우고자 했다.
의도는 좋았으나, 여기서 근본적인 문제점과 충돌했다.
월요일 근무 시간이 짧아서 작업물을 검토할 여유가 부족했다.
금요일은 근무 시간이 길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필자의 경우에는 검토진을 관리하는 일도 해야 됐는데,
그 일을 다 하고 난 뒤, 작업물 검토 사항을 반영하기에는
시간이 전적으로 부족했다.
(퇴근 시간을 한참 넘긴 적도 있었다. 물론 당시의 필자가
작업물을 깔끔하게 만들지 못한 점이 크긴 했다.)
아마 공개적으로 말씀은 안 하셨지만,
팀장님도 그 문제를 인지했을 것 같다.
다만, 언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했던 적이 있다.
'주5일 출근 방식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업무 방식을
취하지 않아도 된다.'
'꼭 모든 집필진이 달라붙어서 작업물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을까?'
글을 쓰며 다시 돌아보니,
이 두 가지 말씀이 팀장님이 고민하던 지점이고,
팀 운영 방식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는 복선이었을 것 같다.
팀장님은 무언가 특별히 중요한 일이 있으면,
아무 말도 없이 회의실 문을 닫아두고 그 일에 몰두하셨다.
필자도 그런 성향이 있는 사람인지라 이해가 된다.
2024년 1월 12일이 그런 날이었다.
계속 회의실 안에 계시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모습을 드러내시고
모든 집필진을 긴급히 소집하셨다.
그때 다시 바꾼 운영 원칙을 발표하셨다.
출근을 주 1회로 줄여
교재 편집, 시험지 제작에 온전히 집중하는
여건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업무 방식도 협업을 요하는 방식에서
개개인이 특정 업무를 전담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이것으로 그간의 고생을 갈음하겠다고 하셨다.
운영 원칙이 업무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한 것도 좋았는데, 더 기억에 남는 건
그때 팀장님이 하셨던 말씀이었다.
'일반적이면 독보적일 수 없다.'
'독보적인 OOO(필자 이름)이 되기를 바란다.'
'이 방식이 안 맞으면 재미가 없거나, 재능이 없는 것이다.'
첫 번째 말씀은, 필자가 평소 생각한 삶을
살아가는 자세와 부합했다는 점에서 '마음이 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필자도 남들 따라 삶을 사는 자세를 싫어한다.
99%의 필자 대학 사학과 학생들은 '현실적이다.'
사학 전공은 적당히만 챙기고, 복수전공을 인생의 길로 삼는다.
동기들은 '복수전공 뭘로 할 거야? 내가 한 복수전공은 이러이러해'라고
많이 얘기한다.
사학 전공자가 전공을 살려 취직하기 어려운 현실을 생각할 때,
조금이라도 더 사회에 쓰일 몸값을 높이기 위해
복수전공을 하는 건 현실적인 선택이다.
그런데 필자는 '현실적인 선택을 취하면서 자신의 본 전공을
아예 버리는 게 맞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회가 그렇게 만들기도 했지만,
본 전공을 너무나 쉽게 포기하는 동기들의 태도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려면, 사학과를 오지 말았어야 했다.
복수전공으로 택한 걸 본 전공으로 삼았어야 했다.
똥고집같겠지만, 필자는 '버드나무 사이에 홀로 선 대나무'가 되었다.
홀로 선 대나무는 꺾이기 마련이다.
필자도 대학 2학년 무렵에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공허한 고민을 했다.
'정말 이대로 사학 전공만으로 나를 밀고나가도 괜찮을까?'
'졸업해서 직장은 구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복수전공은 또 하기 싫었다.
필자는 사학 공부를 하는 게 천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필자 대학 사학과는 필자의 뜻을 펼칠 공간도 아니었다.
홀로 선 대나무가 버드나무에 의해 꺾이지 않으려면,
다른 대나무 무리를 찾아 그 일원이 되는 방법밖에 없다.
필자에겐 제3지대 교육이 대나무 무리였던 셈이다.
그렇게 사학과 동기들과는 결이 다른, 어쩌면 혼자 튀는
독특한 길을 걸어가게 되었는데,
그 길을 걸어온 게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말이
'일반적이면 독보적일 수 없다.'였다.
마음으로 '그래 그거지!'하며 탄복했다.
두 번째 말씀에서는
팀장님의 '대의'를 생각하는 자세를 볼 수 있었다.
다른 집필진 분이 '독보적인'이란 수식어가 붙는 자기 이름을 듣고
'부모님도 이런 말은 안 하실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그렇다. 그런 수식어를 붙이며 자기 아들, 딸의 이름을
부르는 부모는 극히 드물 것이다.
그만큼 마음을 매료시키는, 팀장님 개인의 이익보다
집필진 공동의 이익을 생각하는 대의가 엿보인 말씀이었다.
자고로 현명한 통치자는 사익에 골몰하지 않고,
'덕'이라는 큰 의지로 국가를 움직이는 법이다.
세 번째 말씀은, 변화된 운영 원칙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지침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집필진 업무는 '혼자와의 싸움'을 해야 한다.
좋은 교재, 시험지를 만들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변화된 운영 원칙에 따라 일할 때,
혼자와의 싸움이 더 격렬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에 재미가 없거나, 재능이 없으면 그 싸움을 할 수 없다.
이 일이 있고, 석 달이 지나
팀장님은 모종의 사정으로 홀연히 자취를 감추셨다.
불모지와도 같은 수능 역사의 교육 인프라에 큰 돌풍을 일으켜
불모지를 황금의 땅으로 바꾸고 떠난 것이다.
다시 돌아오시겠지만, 아직은 '기약'의 단계이다.
창업은 성공했다. 이제 수성을 해야 진정으로 성공한다.
지금 팀은 수성의 단계에 있다.
창업과 수성의 관계에 대해 잠시 짚어보겠다.
'창업이 어려운가? 수성이 어려운가?'라는 질문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난제이다.
동아시아 제왕학의 교범인 『정관정요』에도
이같은 부분을 다루고 있다.
정관 10년, 태종은 주위에 있는 신하들에게 말했다.
"제왕의 대업에 있어서 처음 창업하는 것과
그 일을 지키는 것(수성) 가운데 어느 것이 어렵소?"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 방현령이 말했다.
"천하가 혼란스러워지면 영웅들은 다투어 일어나지만,
쳐부수어야 적이 투항하고 싸워 이겨야 적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말하면, 창업이 어렵습니다."
위징이 대답했다.
"창업은 하늘이 주고 백성이 받드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천하를
얻은 뒤에는 마음이 교만하고 음란한 데로 달려가게 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말하면, 이미 세운 업적을 지키는 일이
어렵습니다(전체 내용 중 축약)."
태종이 말했다.
"현령은 과거 나를 따라 천하를 평정하면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만사일생으로 요행히 생명을 부지했기 때문에
창업의 어려움을 아는 것이오.
위징은 나와 함께 천하를 안정시키며 교만하고 음란한
병폐가 발생할 조짐을 걱정하며, 이것이 위태롭고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룩한 업적을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오.
현재 창업의 어려움은 과거가 되었고, 세워진 제왕의
사업을 유지하는 어려움은 마땅히 공들과 신중히 상의해야
할 것이오."
- 오긍, 김원중 옮김, 『정관정요』, 휴머니스트, 2016, pp.43-44.
창업은 분명히 어려운 일이다.
무(無)에서 유(有)로의 변화는 언제나 어려웠다.
수능 역사와 관련한 교육 인프라는
불과 5년 전만 해도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
그 상황에서 수능 역사를 책임지는
보증수표와 같은 팀의 출현은 놀라운 일이다.
1인 저자의 자격으로도 제3지대 교육에서 활동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한계가 존재한다.
잡다한 일부터 큰 일까지 혼자 다 해야 하며,
스스로 집필에 대한 의지를 놓아버리면 그날로 활동은 끝이다.
이 팀 말고도 수능 역사 교재를 집필하는
몇몇 1인 저자가 있었는데, 전부 자취를 감췄다.
(2022년 겨울방학 때 만난 1인 저자는 아직
근근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따라서 팀을 이루는 게 제3지대 교육에서 살아남는 전략이자,
창립 멤버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일이다.
이 팀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학생 그리고 교육 모두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수능 역사 분야에서.
창업은 확실히 어렵다.
그런데 수성도 쉽지 않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역사 속의 국가나 왕조를 보면, 세우는 것은 성공했으나
지키는 걸 실패한 경우가 매우 많다.
가령, 고대 서양에서는
알렉산드로스라는 장군이 대제국을 세웠으나
그가 죽은 직후 바로 분열되었으며,
중세 초 중국에서는
5호(胡)의 유목 민족이 화북에 수많은 나라를
세웠으나 2대만에 대가 끊긴 나라도 많았다.
수성에 실패한 것이다.
수성의 실패는 대개
창업자의 능력을 후대인들이 따라가지 못한 게
원인으로 작용한다.
선하든, 악하든 창업자는 비범하다.
창업자의 뒤를 이을 사람도 똑같이 비범할 확률은 극히 적다.
따라서 창업을 성공하면, 토대를 닦아야 한다.
토대는 곧 시스템이다.
수성하는 자의 책무는 토대를 닦아,
창업자의 유산을 지키고 어떤 사람이라도 토대에 따라
경영하면 성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2024년 초는 창업에서 수성으로 팀의 운영 방향이
변하는 기점이었다.
집필진 개개인의 역량을 키우고,
팀을 '시스템'으로서 굴러가게 하는 분수령이었다.
변화하는 상황에 변화하는 체제를 끼워맞췄다.
그리고 그 변화하는 체제가 고착되면서
운영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불어넣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한다.
어떤 국가도 세워질 당시의 모습과
몇 세기가 지난 뒤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그러면 법, 제도도 들어맞지 않는 구석이 생기고,
사회 풍토,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
전통은 지킬 건 지켜야 하지만,
시대 상황에 맞게 개혁도 해야 한다.
시대 상황에 걸맞는 개혁은
'예스러운 외관'은 유지하면서,
'내부의 동력원'은 신식으로 교체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역사에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두 가지 사례가 있다.
고대 로마 제국은 최대 영토를 확보해 전성기를 이룩했지만,
한 명의 황제가 그 드넓은 영토를 중앙집권적으로 통치하기 어려워졌고
옥타비아누스(Augustus)가 확립한
황제는 아니지만, 로마의 제1 시민(1등 시민)으로서 여러 권한을 독점하는
원수정(Principatus)은 제위 계승을 불안정케 해
군인 황제 시대(235~284)의 쇠락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당(618~907)은 절도사 세력의 반란(안사의 난, 755~763)이 일어난 뒤,
전통적 조세 제도인 조용조(租庸調)를 운영할 수 없었다.
조용조의 핵심은 농민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토지를 분배해주는 건데
그 원칙을 적용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 그리고 당은
서양 그리고 중국에서 '황금기'를 대표하는 역사 속 국가였다.
하지만 두 국가의 치세가 지속되면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
따라서 새로운 운영 원칙으로 국가의 동력원을 교체했다.
당은 자산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새로운 조세 제도인 양세법(兩稅法)을 마련했다.
로마 제국의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는 전제정을 선포하고 제국을 4개로 분할하여
각각의 황제가 통치하게 했다.
그 결과, 당은 백여 년을 더 존속할 수 있었고
로마 제국은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으로
이어져 천 년을 존속했다.
국가 내부의 동력원을 바꿔 '수성'한 것이다.
이 기나긴 역사 이야기와
2024년 초의 두 번째 팀 운영 원칙의 변화는
일맥상통한다.
집필진 개개인은 개성이 뚜렷하다.
그래서 시험지 문제나 해설지를 보면
'이 사람이 만들었구나'라고 어렴풋이 짐작이 된다.
이러한 개성은 장점이다.
그러면 당연히 단점도 있는 법이다.
2023년 11월부터 팀장님 주도 하에
집필진들은 단점을 극복하는 훈련을
개별적으로 받았다.
시험지 제작의 측면, 해설지 작성의 측면으로
나뉘어 그 훈련이 이루어졌다.
누군가 필자의 단점을 잡아주는 프로그램 따위를
진행한다는 건 인생에서 몇 없을 일이겠다.
아예 없을 수도 있다.
"네가 뭔데 단점을 잡아줘?"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면.
팀장님 스스로도 누군가의 단점을 잡아주는 건,
특히 성인을 대상으로 할 때는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좋은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필자처럼 강점은 뚜렷한데, 약점도 그못지 않게 뚜렷한
'울퉁불퉁한 바위'와 같은 사람에게는
약점을 줄여 강점을 극대화하되, 균형을 잡는 과정이었다.
단점을 극복하는 훈련 자체는 과도기적 특성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좋은 자양분이 된 셈이다.
집필진 개개인이 독립적으로
주어진 업무를 전담하는 프로세스로의 전환은
과도기적 특성이 본격적인 효과로 나타나는 교두보였다.
그래서 2024년 초부터
아직 미약한 점이 있었지만, 필자의 업무 능력은
조금씩 상승하고 있었다.
비약적 상승이 일어나는 전조 현상이었다.
팀의 변화가 훨씬 중요했고, 필자는 거기에 편승하는 과정이기에
여기에서는 필자 개인의 변화를 간략히만 다루고자 한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듯이,
제3지대 교육에 오래 몸담으면
사교육 그리고 그 밑의 집필진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 있다.
필자가 2년차 집필진이 된 2024년은
확실히 신입 집필진이었던 2023년보다
제3지대 교육을 망라하는 안목이 더 넓고 깊어졌다.
팀의 운영 원칙 변화에 대한 분석으로 이를 보여주고자 했다.
제3지대 교육은 언제나 변화의 소용돌이에 놓여 있다.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변화를 따르면서도,
안정을 이룩하는 방안을 갈구한다.
2024년은 특히 그 고민이 두드러졌던 해였다.
전환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팀 운영 원칙이 또 한 번 변하게 되고,
필자 개인적으로도 놀라운 변화가 다가왔다.
다음 장에서 전환기의 마지막 국면을 다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