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지대 교육 중심에서의 막내살이

제3지대 역사교육 Note: 다시, 초창기 #2

by 샤를마뉴

2023년,

매 순간이 땀을 흘리며 등산하는 것 같던 한 해였다.

신입 집필진 생활을 비유하는 말이다.


집필진으로서 부여받은 권리에 기뻤던 건 한순간이었다.

곧이어 권리에 상응하는 의무가 다가왔다.

의무의 크기와 무게는 필자 생각 이상으로 컸다.

그 점에서 힘들어졌다.


한때는 너무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었고,

심신이 녹아내려 무력해지는 느낌도 받았다.

힘듦이 극에 달한 순간이었다.

잃을 게 없는 사람이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듯이,

바닥을 칠 때까지 내려가면 다시 올라가게 된다.

다행히 필자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 장은

계속되는 업무에 지쳤을 때,

번아웃이 왔을 때, 특히 도움이 되는 글이었으면 한다.


집필진은 엄격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팀장님이 교육하실 때 그 부분을 특히 강조하셨다.

그래서 나름 책임감을 가져보고자 했지만,

신입 집필진 때는 그게 잘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임감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고, 결정적인 계기가 다가와야 했다.


집필진은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집필진의 직무를 알아야 한다.

제3지대 교육의 집필진은

제2지대 교육(사교육)의 수요자(학생)들이 공부할 교재를

개발하는 권한을 전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런데 집필진은 학생을 직접 볼 일이 없다.

여기서 책임감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이기심이 생겨버린다.

집필진도 교육의 책무를 다 하는 사람이다.

교육은 이타심을 요구한다.

'나 자신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를

늘 고민해야 교육자의 덕목을 갖출 수 있다.


집필진이 학생에게 영향을 주는 요소가 바로 교재이다.

교재의 개념적 오류가 있다는 걸 모르고, 학생이 잘못된 내용대로

학습했다가 시험에서 피를 보게 된다면 어떻겠는가?

집필진은 학생의 인생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꾼 중죄를 지은 것이다.

팀장님이 집필진의 책임감을 강조하기 위해 든 예시이다.


물론 집필진도 사람이니 실수를 할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실수를 했더라도, 이내 바로잡을 줄 알아야 한다.

원고를 쓰다가 실수한 흔적이 있으면, 스스로 검수를 해야 된다는 뜻이다.

그게 곧 집필진으로서 업무에 책임감을 다 했다는 증거이다.

신입 집필진 때의 필자는 그 부분이 부족했다.

태업을 한 건 아니라, 노력을 해도 정체되었던 것 같다.


팀장님이 언성을 높이지 않고, 누구도 꿈쩍 못하게

필자의 그 부족한 점을 질책한 적도 있었다.

2023년 7월 막주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때를 두고두고 반면교사로 삼았다.

왜 혼냈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검토진 시절의 필자 모습,

책임감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었으리라.


교육자의 자리는 참으로 무겁다.

스스로 이기심과 이타심의 사이에서 갈등해야 되는 점,

동시에 고된 업무를 짊어져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무거움을 아니, 교육자의 고충이 보였다.


사실 교사에 대한 관념이 좋지 않은 이미지들이 있었다.

열정 없이, 성의 없이 수업을 하는 교사의 모습,

공부 잘하는 학생만 편애하는 교사의 모습에서

그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학창 시절이 부정적으로 기억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교사들마저 나름의 고충이 있구나를 이해했다.

뜨거웠던 초심이 식어 열정과 성의가 없어진 거일 수도 있고,

수백 명의 학생을 일일이 챙기기 어려워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도 챙기자.'라는 처세가

나타난 거일 수도 있음을 이해했다.


물론 그런 교사는 절대로 참교사가 될 수 없다.

그렇지만 학생과 학부모를 상대하고, 학교 업무도 하고,

시험 기간에는 출제에 골몰해야 하는 '1인 다역' 그 자체인

제1지대 교육, 공교육에서 참교사를 자처할,

혹은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필자도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집필진으로서 부여받은 책임감을 소화하면서,

교육자가 말하지 못하는, 교육자이기에 감내해야 하는

고충들이 보였다.

이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일처리 과정에서 이타심을 유지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다.


존경하는 고등학교의 한 선생님께서는 필자를 두고

'엄격하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마 학자적 성격의 엄격함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 필자에게도 교육자의 엄격함은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다.

어렵지만 배워야 할 덕목이었다.


글을 쓰는 자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글쓰기에는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영감을 받아 글이 잘 써지면, 예상보다 빨리 글쓰기를 끝낼 수도 있고

오늘따라 글 쓸 소재가 안 떠오르면, 글쓰기의 끝은 늦어진다.


교재 집필도 마찬가지이다.

교재 집필도 또 다른 형태의 글쓰기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창조력(창의력)을 요구하기도 한다.

1주일 내로 시험지 하나를 완성해오라는 지시가 내려졌다고 가정해보자.

시험지에 쓸 문제 아이디어가 넘치고, 능력도 뛰어나다면 3일 내로 완성할 수도 있다.

반면, 그렇지 않을 때에는 마감 시간에 쫓기며 완성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완성도가 떨어질 확률이 높다.

시간에 쫓기면 일을 원만히, 꼼꼼히 검토하며 처리하기 어려우니까.


사실 집필진은 늘 시간에 쫓긴다.

주어지는 일이 많다.

그것이 반복되면, 시간에 쫓기면서도 결과물은 훌륭히 내는 '마법같은 기술'을 습득한다.

필자가 집필진으로서 '안정기'에 올랐을 때 그랬다.

그 말은, 신입일 때는 그러지 못한 적도 많았다는 얘기이다.

집필진의 업무는 '끝나는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글쓰기에 '마감 시간'을 부여한다.

그러므로 '시간 관리 능력', '양질의 결과물을 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신입 집필진 때는 그 두 가지 능력이 길러지지 않았으니,

힘들 수밖에 없었다.


창조력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원인이었다.

'평가원스러운', 즉 학문과 교육의 조화가 잘 지켜진 문제를 만드려면,

학문에서 창조력의 원천을 가져오는 게 필요하다.

그러니 자연히 책도 읽어보고, 논문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동시에 여러 교과서를 꼼꼼히 대조하여 '교육과정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단순 설명문이 아니라 심미성, 창의성이 있는 형태로 제시문을 만들고 싶다면,

문서에서 꼼꼼하게 편집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집필진으로서 주어진 업무 뒤에 '주어지지 않은 업무'를 늘 해야 했다.

그래야 좋은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결국 집필진 업무의 논리는 이것이다.

'우리 학원은 당신의 업무를 위해 근무 공간도 주고,

업무에 필요한 자료도 주고, 대우도 높게 쳐준다.

지원에 있어서 부족한 부분은 없다.

이렇게 지원해주고도 못하면 당신 의지 문제이다.'인 셈이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사실 머리를 쓰는 직무라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집필진의 시계는 하루가 48시간이어도 모자라다.

사무실에 근무하는 시간 외에도,

교재 집필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사교육 루틴에서는 '비공개적인 시간'에도 일한다는

표현을 이래서 쓴 것이다.

집필진은 촉박한 시간 속에서 어떻게든 집필을 끝내야 한다.


사람은 평가받길 싫어한다.

자신의 노력과 시간이 들어가면, 더 그렇다.

집필진은 매 순간이 평가받는 자리이다.

잘했다는 칭찬도 받지만, '이건 고쳐야 한다.'라는 비판도 받는다.

애써 결과물을 만들어왔는데, 처음부터 수정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기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집필진 선발 면접 때도 이런 질문을 받았다.

'만약 다른 팀원이 피드백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질문 의도를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자존심이 세거나 성깔이 있는 사람이라면

피드백이 '폭발 버튼'으로 작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협업 능력을 키우는 과정이 피드백인데,

거기서 감정이 상해 언성이 높아지고 싸우면 업무는 망쳤다고 봐야 한다.


필자도 처음엔 피드백에 심히 당황했었다.

결과물을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애써 만들었는데,

피드백을 받고 나니 결과물을 만든 시간보다

결과물을 수정하는 시간이 더 걸리는 상황이 되어버려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수많은 피드백은 도움이 되었다.

부족했던 부분이 이렇게 많았음을 성찰할 수 있었고,

피드백을 하는 사람이 자신보다 경험이 많고 능력 좋은 사람이라면,

피드백 과정에서 '자신의 노하우'를 은연 중에 녹여준다.

이걸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 자연스럽게 실력이 향상된다.

그러면 다음 피드백에서는 비판이 줄어들고, 칭찬이 늘어난다.


필자 역시 집필진으로서 안정기에 올랐을 때,

피드백의 양이나 그걸 반영하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다.

아마 신입 때 와르르 쏟아지던 피드백을 수용한 게

실력이 성장하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처럼 집필진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교재로 말하지만

교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집필진끼리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그 논쟁을 잘 보여주는 게 피드백이다.


여기까지 읽었다면,

집필진 업무를 할 때 정신적 스트레스도 크고

일과 삶의 균형을 지키기도 어렵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맞다.

일할 때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기 싫거나,

일과 삶의 균형을 확실히 지키고 싶다면

이 영역을 거들떠도 보지 않는 게 좋다.

해봤자 오래 못간다.


그래도 이 영역에 뛰어들고 싶다면,

철저한 자기 관리, 건강 관리는 필수이다.

필자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씻거나, 제어하는 방식'으로

관리를 했다.


머리를 쓰는 직무는

자나깨나 머리에서 일 생각을 해야 된다.

그러면 격한 운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몹시 피로해진다.

필자가 집필진 시기 때 봤던 국립중앙박물관의 기획 전시. 세계사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재밌게 봤다. 독자 여러분도 이것에 취미를 붙이길 개인적으로 추천한다.

그럴 때는 일 생각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취미 활동을 한다거나,

밖으로 나간다거나 하는 식으로.

필자는 독서, 박물관 전시회 관람, 덕질(?)의

방법으로 이를 극복했다.


<교육으로 가는 역사학 내비게이션> 시리즈에서 필자가 독서를 하게 된 계기를 밝힌 적이 있다. 아래 링크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23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출근하고 사무실에서 쉴새없이 밀려들어오는 일을 하다가,

식사 시간이 주어졌을 때,

사무실 인근의 식당들을 탐험하는 것도 작은 묘미였다.

그렇게 알게 된 식당들은 이 시리즈의 맨 마지막에 풀어보고자 한다.


후속 글 바로 가기

https://brunch.co.kr/@charlemagnekim/55


일을 하는 과정에서의 고됨은 때때로 힘들었지만,

스스로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

남들 없이도 스스로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

생각하고 실천하게 만듦으로써

필자의 내면이 단단해지는 데 영향을 주었다.


이 장에서는

필자가 신입 집필진 때 겪었던 고됨을 얘기하였다.


신입 집필진에서 경력 있는 집필진으로 나아가고,

집필진의 업무 프로세스, 집필진으로서 의무를

체화하는 과정은 '자신과의 싸움'을 필요로 했다.


이 얘기를 한 이유는,

어떤 일이든 힘들지 않은 일이 없고,

힘들수록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이 글을 보는 독자 중

'오늘 상사께 한소리 들어서 심란했어.'

'업무가 많고 끝이 없어서 힘들어.'라며

고민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 글을 통해 내가 일하는 이유를 되돌아보고,

일하며 겪는 고충을 정면돌파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스스로를 존중하고,

스스로에 위안과 휴식을 줘야 한다.

사교육은 인간이 기계가 되기를 요구하는 측면이 있다.

이 측면이 개선되어야, 학원은 '기업다운 면모'를 갖춘다.


다음 장에서는

신입 집필진 시기의 실제 업무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풀어보겠다.

거기까지가 '다시, 초창기'라는 부제가 붙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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